아직도 해리 포터라고 불러야 하는 걸까?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신작 <프리즌 이스케이프>로 돌아왔다. 이번에 그가 맡은 배역은 인권 운동을 하다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투옥된 팀 젠킨. 래드클리프는 촬영 현장에서 영화의 실제 모델인 탈옥수 팀 젠킨과 긴밀하게 소통하며 연기에 현실감을 높였다. 탈옥 시도가 발각되면 종신형으로 이어진다는 설정과 몰입도 있는 연출이 어우러져 긴장감을 더했다는 후문. 배우와 연출진이 공들인 덕분일까? <프리즌 이스케이프>는 지난 5월 6일 개봉한 뒤 벌써 3주 가까이 지났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2위를 지키며(2020.5.24. KOBIS 기준)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탈출한 것은 감옥만이 아니다. 해리 포터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해 오랜 기간 피나는 노력을 했다. 과거의 강렬했던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번 같은 역할만 하는 배우들이 부지기수다. 래드클리프는 해리 포터를 무려 10년이나 연기했기 때문에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 더욱 힘들었을 터. 하지만 요즘 그를 떠올릴 때면, 귀여운 꼬마 마법사 대신 덥수룩한 수염과 신비로운 표정이 머릿속에 먼저 스친다. 지금부터 래드클리프의 주목할 만한 작품 다섯 개를 따라가며 이미지 변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아보자.
1. 에쿠우스(2007)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전라 연기로 화제를 모았던 연극 <에쿠우스>. 6마리 말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른 마구간 소년 알런을 연기했다. <에쿠우스>는 원작인 희곡에도 전라 연기가 명시돼있을 만큼 수위가 높은 작품. 이를 부담스러워하는 배우들은 속옷을 입은 상태로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작품에 충실하고자 했던 래드클리프는 공연에서 전신 노출 연기를 감행했고, 상대 여배우와 정사신도 가졌다. 충격적인 점은 공연 당시 그의 나이가 만 17세였다는 것. 해리포터 신드롬이 한창이던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이 개봉되던 해에 막이 오른 작품이라는 사실도 놀라움을 더한다. 아니나 다를까, 래드클리프의 출연 사실을 알게 된 영국의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반발했다. 그러나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알몸으로 무대에 서지 않는다면 작품은 쓰레기가 될 것"이라며 논란을 일축하고 노출 연기를 강행했다.
※연극 <에쿠우스>는 국내에서도 1975년 초연 이후 꾸준히 상연되고 있다.
2. 우먼 인 블랙(2012)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해리 포터> 시리즈 완결 이후 처음으로 선택한 영화 <우먼 인 블랙>. 공포 스릴러물인 이 작품은 1983년 수잔 힐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연극과 TV 시리즈로도 각색된 바 있다. 영화에서 래드클리프가 연기하는 인물은 중년의 변호사 아서 킵스. 그는 어느 여인의 유서를 정리하기 위해 외딴 마을에 들어간다. 그러자 '검은 옷의 여자'에 의해 마을 아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고, 아서가 그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래드클리프는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난 지 불과 1년 만에 애 딸린 유부남 연기를 선보였지만, 성숙한 비주얼 때문인지 위화감이 전혀 들지 않았다는 슬픈 후문이 전해진다.
3. 혼스(2014)
<킬 유어 달링>, <젊은 의사의 수기>를 거쳐 래드클리프가 다음으로 선택한 작품 <혼스>. 래드클리프가 맡은 역할은 연인의 살인 용의자로 의심받고 절망 속에 살아가는 이그 페리쉬. 절망에 가득 찬 채 괴로운 날들을 보내던 어느 날, 이그의 머리에 갑자기 뿔이 돋아난다. 이그는 악마와도 같은 자신의 모습에 경악했지만, 뿔을 본 사람들이 본성을 숨김없이 드러낸다는 점을 이용해 연인을 죽인 진범을 찾아 나선다. 넷플릭스 드라마 <루시퍼>의 설정과 비슷한 이 영화는 부족한 개연성을 래드클리프의 연기로 채워나가며 진행된다. 특히 절망에 빠진 연기가 자연스러웠는데, 실제로 그가 알코올중독을 앓은 경력이 있기 때문. 래드클리프는 과거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에 큰 인기를 끌면서 너무 부담됐다. 어디를 가도 사람들이 날 알아봤고, 겁이 날 지경이었다"며 해리 포터로 얻은 대중의 관심을 견디지 못해 알코올에 의존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4. 나우 유 씨 미 2(2016)
마술사들의 사기행각을 담은 영화 <나우 유 씨 미>. 이 영화의 속편에서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인생 최초로 악역을 맡았다. 그가 맡은 역할 월터는 마술광이지만 마술에는 재능이 없는 인물. 마술사기단에게 전 세계 컴퓨터를 컨트롤할 수 있는 카드를 훔쳐 오라는 미션을 주며 주인공들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래드클리프는 영화 인터뷰에서 "해리 포터와는 정반대의 역할이다"라면서 "악역을 연기하면서 심술궂고 정신병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도록 애썼다. 영화를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며 새로운 캐릭터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실제로 영화에서 그는 특유의 개구쟁이 같은 표정과 성격으로 미워할 수 없는 악역 연기를 선보여 극에 활력을 높였다는 평을 들었다.
5. 스위스 아미 맨(2016)
많은 사람에게 '병맛'이라는 평가를 받는 <스위스 아미 맨>. 코미디, 판타지 장르의 영화로, 2016년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한 작품이다. 래드클리프는 이 영화에서 방귀를 뀌고 말도 하는 시체인 '매니'를 연기했다. 아무리 판타지라지만 정도가 너무 지나쳤던 탓일까. <스위스 아미 맨>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한바탕 곤욕을 치렀다. 관객 수백 명이 이 영화를 보다가 자리를 박차고 나온 것. 특히 폴 다노와 래드클리프의 키스 장면에서 수많은 사람이 역겨움을 느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작품은 무리한 설정으로 관객을 자극하기만 하는 영화는 아니다. 감독의 독특한 표현방식을 참아낸 관객들은 영화 이면에 담긴 철학적인 메시지가 인상적이었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이후에도 다니엘 래드클리프는 <정글>, <건즈 아킴보> 등의 영화로 국내 팬들을 찾았다. 그러나 <나우 유 씨 미 2>를 제외한 작품들은 국내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세계적인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연기 커리어는 무르익어가고 있다. 신작 <프리즌 이스케이프>와 관련해 외신과 인터뷰하는 중 래드클리프는 이렇게 말한다.
실존 인물을 연기할 때면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그 인물이 실제로 겪었을 고통을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 배우의 의무니까요.
'Smooth Radio'와 인터뷰 중에서
작품을 고르고 연기를 대하는 그의 진지한 태도, 다니엘 래드클리프를 해리 포터라는 수식어에 가둬두기에 아까운 이유다.
씨네플레이 이태헌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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