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의 FBI(연방수사국), ATF(주류·담배·화기단속국) 요원들이 빈틈 없이 무장을 한 채 외딴 건물을 향해 총을 겨눈다. 총으로도 모자랐는지 위협적인 헬기와 탱크를 동원한다. 그들의 총구가 향한 곳은 한 종교 단체의 거주지였다.

여기까지만 듣고도 '이 사건'이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면, 이미 <웨이코>가 어떤 이야기를 다룰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겠다. <웨이코>는 실화를 바탕에 둔 드라마다. 1993년, 미(美) 역사상 가장 참혹한 참사로 기억되는 '웨이코 포위전(Waco Siege)'이 텍사스에서 벌어졌다. 흔히 '다윗파'로 명명되는 종교 단체의 종말론적 믿음, 다량의 무기 소지를 이유로 정부는 섣불리 민간인을 에워쌌다. 이 사건으로 인해 대략 80명의 교인이 사망했다. 사망자 목록엔 우유도 떼지 못한 다수의 영유아도 포함돼 있었다.

올해로 '웨이코 포위전'이 일어난 지 어느덧 27년이 지났다. 무엇보다도 올해는 이 사건과 관련한 담론들이 다시금 주목을 받은 해이기도 하다. 미국 내 OTT 플랫폼에 <웨이코>가 서비스되기 시작되며 '웨이코 참사'가 다시금 수면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용자들이 많이 본 콘텐츠 목록 톱10에도 이름을 올린 <웨이코>는 미 국민에게 참사의 이면을 알리는 건 물론, OTT 서비스의 주 이용층인 Z세대에게까지도 사건을 인식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맞이했다. 이젠 국내 시청자들이 '웨이코 포위전'의 목격자가 될 차례가 왔다. 지난 18일, 웨이브(WAVVE)를 통해 <웨이코>가 서비스되기 시작했다. <웨이코>의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 알고 보면 더 좋을 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국내에선 오직 웨이브를 통해서만 <웨이코>를 감상할 수 있습니다.

'웨이코 참사' 당시 화마에 휩싸인 '마운트 카멜 센터'의 모습

'웨이코 참사'

(Waco Siege, 1993)

<웨이코>가 다루고 있는 '웨이코 포위전' 혹은 '웨이코 참사'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텍사스주에 위치한 웨이코라는 작은 도시에서 발생했다. 웨이코 내 '마운트 카멜 센터'라는 집단 생활소를 구축한 광신적 종교 단체 '다윗파'와 미국 연방정부가 51일간 대치를 이어온 사건이다. 데이비드 코레쉬를 교주로 두고 종말론을 지지하는 '다윗파'는 종말을 앞두고 전쟁을 수행한다는 이유로 대량의 무기를 수집해 왔고, 이와 관련한 수색 영장을 발부하는 과정에서 FBI와 ATF는 무자비하고 급진적으로 '다윗파'를 짓눌렀다. 한 달이 넘도록 포위는 계속됐고, 협상은 결렬됐다. 결국 정부는 무력압박을 선택해 장갑차와 탱크로 '마운트 카멜 센터'를 둘러쌌다. 그럼에도 '다윗파' 사람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자 FBI는 건물 내로 CS 가스를 주입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최후의 대치 과정에서 건물 내 큰 화재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약 80명의 교인이 사망했다.

이 이야기는 실화입니다

드라마라기보단 한 편의 다큐멘터리

<웨이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드라마의 소재가 실화라는 점에 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깊은 몰입도와 내면을 깊숙이 후비는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참혹하고 안타까운 일이니 말이다. 무려 51일이다. 미국 내 최장기 총기 난사 사건으로 기록된 '웨이코 참사'는 당시 전국에 생중계되며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왔다. 정부의 잘못을 비난하는 이들이 대다수긴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이 사건을 바라보는 의견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광신도들의 무기 수집 행태를 어찌 평화적으로 진압하냐는 입장도 있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론 개인의 종교적 자유와 총기 소지권을 묵살, 대학살을 결정한 정부의 폭정에 비난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웨이코>는 이러한 현실의 시각들을 덜어내거나 보태기보단 최대한 사실적인 정보들로 이야기를 꾸려나갔다. "우리가 그날 기억하는 사건은 탱크 대 건물이었지만, 만약 우리가 탱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면 사건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까"에 집중하고 싶었다는 <웨이코>의 감독은 51일이라는 긴 대치 시간을 순차적으로 따라가며 '웨이코 참사'를 조명한다. <웨이코>의 이름 앞에 '다큐멘터리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이기도 하다.


존 에릭 도들 감독

공포 영화감독이 만든 다큐 드라마?

생존자도 인정하는 실제 현장과 세트장의 싱크로율

<웨이코>라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6부작 TV 드라마로 만들어 낸 이는 존 에릭 도들 감독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쿼런틴>(2008), <데블>(2010), <이스케이프>(2015) 등을 통해 호러물의 거장 반열에 오른 그는 <웨이코>라는 뜻밖의 선택을 했다. 공포 영화 전문 감독답게 서스펜스 넘치는 연출법을 <웨이코>에도 적용한 그는 FBI 협상 요원인 게리 누즈너(마이클 섀넌)와 데이비드 코레쉬(테일러 키취)의 전화 통화 협상 장면을 쫄깃하게 그려내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실상 <웨이코>를 준비하면서 그가 가장 고심하던 부분은 세트와 소품의 복원(싱크로율)이었다. 다큐 드라마라는 제 장르답게 실제 사건과 최대한 유사하게 현장을 구현하고 싶었을 터. 이와 관련해 존 에릭 도들 감독은 최고의 칭찬을 들었다. '웨이코 포위전'의 생존자인 데이비드 티보도가 <웨이코>의 세트장을 방문해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존 에릭 도들이 구현해낸 예배당의 모습은 27년 전 '다윗파'가 성경 공부를 했던 '마운트 카멜 센터' 예배당과 거의 동일했다고 한다.

실제로 '다윗파'가 예배를 드렸던 예배당의 모습 (출처: 내셔널 지오그래픽 유튜브)

드라마 <웨이코> 속 예배당의 모습

디테일을 사수하다

실제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의 놀라운 싱크로율

세트장 못지않게 존 에릭 도들 감독은 실제 인물이 지닌 소품과 외모적 특성을 배우들에게 입히는 디테일 역시 놓치지 않았다. <웨이코>가 방영될 당시 실존 인물과 드라마 속 배우들의 모습을 나란히 한 사진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안경부터 의상, 헤어스타일까지 실존 인물의 외형적 특성을 최대한 살려 싱크로율을 높였다. '다윗파'의 교주를 연기한 테일러 키취는 데이비드 코레쉬가 되기 위해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노력을 했을 정도. 그는 촬영 내내 600~800kcal만 섭취하며 51일간 점점 말라가는 데이비드 코레쉬의 변화를 형형하게 담아냈다. 이에 더해 존 에릭 도들 감독은 1993년 당시 취재를 위해 참사 현장을 방문했던 카메라맨들이 촬영한 영상들을 드라마 곳곳에 사용하기도 했는데, 실제 현장 촬영본을 적절히 섞어내며 생동감을 배가했다. '웨이코 포위전' 당시의 모습을 최대치로 복원하려는 그의 진정성 덕분일까. <웨이코>는 파라마운트 네트워크에 방영된 2018년 당시 TV 미니시리즈 부문을 포함해 에미상 3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며 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왼쪽부터) 드라마 <웨이코> 속 데이비드 코레쉬 / 실제 데이비드 코레쉬

(왼쪽부터) 드라마 <웨이코> 속 레이첼 코레쉬 / 실제 레이첼 코레쉬

(왼쪽부터) 드라마 <웨이코> 속 데이비드 티보도 / 실제 데이비드 티보도


<웨이코>를 시청하는 이들만의 특권

균형감 있는 서사의 완성도

<웨이코>는 두 권의 책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다. 하나는 '웨이코 포위사건'의 생존자인 데이비드 티보도가 쓴 책 「WACO」이고, 다른 한 권은 마이클 섀넌이 연기한 FBI 인질 협상가 게리 누즈너가 쓴 「Stalling for Time: My Life」이다. <웨이코>가 흥미로운 지점 역시 이 부분에서 기인한다. <웨이코>는 특정한 집단의 시각으로 '웨이코 포위사건'을 다루기보단 FBI와 '다윗파'의 관점을 혼재해가며 스토리의 균형감을 완성했다. 자칫 흑백논리에 치우쳐 보일 수도 있는 데이비드 코레쉬나 여타 FBI, ATF 요원들의 시각이 아닌 모호한 정체성을 지닌 티보도와 누즈너의 관점에서 사건을 줄타기해 도덕적 판단을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둔 것. 스토리의 균형감은 서사의 완성도와 긴장감을 고조시키기도 했지만, 시청자로 하여금 사건보다는 사람, 개인의 내면 갈등에 집중하도록 만들며 감정적 치우침을 최소화했다. 누군가를 비난할 상황을 제시하기보단 <웨이코>는 최악의 대치 상황 속 각자의 관점에서 받았을 개인적 스트레스를 조명하며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덕분에 시청자는 '웨이코 참사'를 여러 시각에서 평가할 수 있는 특권을 얻었다. <웨이코>를 본 이들만의 혜택이라 할 수 있겠다.


데이비드 코레쉬를 연기한 배우 테일러 키취

데이비드 코레쉬를 연기한 배우 테일러 키취

우리가 놓치고 있었던 배우들의 재발견

실제 인물을 복제하려는 노력으로 시청자를 흡입하다

너무 늦게 언급했지만 <웨이코>의 가장 큰 매력을 단연 배우들의 호연이다. <웨이코>가 한 편의 다큐멘터리로 느껴질 수 있었던 데에는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큰 몫을 했다. <웨이코>에서 단연 눈에 띄는 배우는 테일러 키취이다. 테일러 키취는 <웨이코>의 심장이 되는 '다윗파'의 교주 데이비드 코레쉬를 연기했다. 테일러 키취는 데이비드 코레쉬의 말투, 몸짓, 작은 습관마저 복제해 매회마다 코레쉬에 빙의한 듯한 성경 연설을 펼쳤다. <프라이 데잇 나잇츠> <배틀쉽> <존 카터: 바숨 전쟁의 서막>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알려진 그는 <웨이코>를 통해 제 연기 인생의 평가 판도를 뒤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광신도가 되었는지, 데이비드 코레쉬란 사람이 어떻게 수많은 신도들을 흡입할 수 있었는지를 그는 제 연기력을 통해 설득하기에 이른다. 테일러 키취를 캐스팅하게 된 순간 "복권에 당첨"된 것 같았다는 감독의 말이 절실히 이해가 간다.

게리 누즈너를 연기한 배우 마이클 섀넌

테일러 키취가 극의 활기를 더했다면, FBI 협상 요원 게리 누즈너를 연기한 마이클 섀넌은 <웨이코>의 무게감을 담당했다. 무력과 협박을 가하려는 동료와 상관의 압박 속에서도 '다윗파'를 폭력없이 항복하도록 만들려는 게리 누즈너의 심적 부담감을 마이클 섀넌은 온전히 표현해냈다. 얼굴을 맞대는 방식도 아닌 오로지 유선 전화를 통한 협상 장면들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마이클 섀넌의 초조함에 빨려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유의 낮은 목소리와 침착한 모습으로 전화 통화를 이어가는 게리 누즈너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포착한 이들이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거다.

(왼쪽부터) 멜리사 베노이스트, 로리 컬킨, 줄리아 가너

<슈퍼걸> <글리>로 잘 알려진 멜리사 베노이스트, 맥컬리 컬킨의 친동생이자 <유 캔 카운트 온 미>로 제 이름을 알린 로리 컬킨은 물론, <오자크>의 줄리아 가너까지. <웨이코>는 핵심축을 이루는 마이클 섀넌과 테일러 키취 외에도 '다윗파' 교도들의 캐스팅에도 신중을 가했다. 실제 교도들을 섭외한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세 배우는 매 순간 놀라운 연기를 선보인다. 특히 데이비드 티보도를 연기한 로리 컬킨의 흔들리는 얼굴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이제껏 그를 향한 평가가 너무 박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


'웨이코 참사'를 다룸으로써 <웨이코>가 결국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14살의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고, 모든 남성들에게 독신 서약을 강요했던 데이비드 코레쉬를 향한 비난? 혹은 무자비한 무력 대응을 일삼은 정부를 향한 분노? 드라마 속 이 대사 한 줄은 어쩌면 <웨이코>가 말하려는 바를 압축해 놓은 듯 보인다. 그들은 묻는다. "정부가 공격을 할 땐 어디다 전화를 해야 할까요?" 이젠 여러분들이 미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켜보며 판단할 일만이 남았다. 판단은 오로지 여러분의 몫이다. <웨이코>는 오직 웨이브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