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동물사전>에서 '날라크'를 연기한 배우 론 펄먼.

'해리포터 시리즈' 스핀오프이자 '뉴트 스캐맨더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비한 동물사전> 다들 재미있게 보셨나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뉴욕에 잠시 머물던 청년 마법사 뉴트 스캐맨더의 가방이 우연히 열리면서 수많은 마법 동물이 뛰쳐나와 벌어지는 모험담! 관객들은 스캐맨더의 성실하고 속 깊은 활약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었죠.

악역 없는 착한 영화일 거라는 우려와 달리, 이 영화는 엄청난 '악의 시작'을 알리는 영화였어요. 그리고 깨알같이 나쁜 조연들이 등장해서 스캐맨더의 활약을 돋보이게 해주죠. 위의 스틸컷에 등장하는 마법 동물 밀매업자 '날라크(Gnarlack)'도 꼼꼼한 조앤 롤링 마법 세계의 일원입니다. 어두운 뒷골목에서 밀매를 일삼는 고블린 갱스터 날라크의 존재 자체가 스캐맨더가 이 영화에서 활약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되어주더군요.

날라크를 모션 캡처 기술을 통해 연기한 배우가 바로 론 펄먼입니다. 배우 이름이 익숙하다고요? 그렇습니다. 얼마 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갑자기 2020년 대통령 출마 선언을 해버린 그 배우가 맞습니다.

대통령?
내가 하고 말지!
론 펄먼의 페이스북 캡처

얼마나 답답했으면 직접 출마 선언을 했을까 싶네요. 아무튼 그가 출마 선언을 하자 누군가 댓글로 <헬보이3> 제작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워달라고 소리칩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바로 <헬보이> 시리즈의 주인공 헬보이를 연기했던 배우였던 것입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분위기 깡패 헬보이는 어쩌면 지구 상에서 유일하게 론 펄먼만이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였을지 모릅니다. 과연 누가 저런 무시무시한 캐릭터의 분위기를 연기해낼 수 있을까요? 단지 특수분장만으로는 헬보이라는 캐릭터의 고유한 매력을 만들어낼 수 없었겠죠.

그럼 이 기회에 배우 론 펄먼의 매력에 대해서 조금만 더 살펴볼까요? 우리가 미처 몰랐던, 심지어 칠순의 나이가 다 되어가는 이 배우만의 놀라운 매력이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메이크-업 배우
<헬보이>

배우 론 펄먼은 출연하는 영화마다 엄청난 특수 분장을 하고 나타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특유의 외모 덕분에(?) 야성적인 역할을 주로 맡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000년대 이후 그의 인생 캐릭터라 할만한 헬보이말고도 그가 맡았던 캐릭터는 굉장히 다양하고 또 특이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쌩얼(?)로 등장하는 경우를 찾아보기가 드물답니다.

<코난: 암흑의 시대>

이런 판타지 사극에 출연하는 건 예사입니다. 왠지 잘 어울리죠? 그래서 그에겐 '메이크업 배우'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입니다. 얼굴 전체에 가면과도 같은 분장을 한다거나 몸 전체를 보철로 뒤덮어 연기하는 역할을 워낙 많이 맡아서 그렇습니다.

<퍼시픽 림>의 한니발 추

<헬보이> 시리즈를 함께 만들었던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퍼시픽 림>에서도 그는 특유의 존재감을 뽐냈었죠. 영화를 본 관객들은 그의 존재감과 '신발'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쿠키 영상까지 모두 봐야 느낄 수 있는 것!

최근 섹스 테이프를 소재로 한 인디 영화 <프랭키 고 붐>이라는 코미디 영화에서는 심지어 여장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자신의 극영화 데뷔작에서 맡았던 캐릭터입니다.

장 자크 아노 감독과 함께 한 데뷔작 <불을 찾아서>(좌)와 <장미의 이름>(우)

론 펄먼은 장 자크 아노 감독의 <불을 찾아서>라는 영화에서 네안데르탈인을 연기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합니다. 메이크업 배우로서의 운명이 이때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걸까요? 장 자크 아노 감독은 그를 눈여겨 본 다음 <장미의 이름>에서 그를 또다시 스크린으로 불러냅니다. 역시 아무나 연기할 수 없는 어려운 역할을 맡겼죠. 기억나십니까요? 그가 연기한 인물은 장애를 갖고 있는 수도사 살바토레였습니다.

그리고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는 <블레이드>, <에일리언> 시리즈에도 깨알같이 등장한 적 있었죠. <블레이드> 2탄과 <에일리언> 4탄에 각각 등장한 그는 장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감을 과시합니다.


미녀와 야수의 '야수'

장 자크 아노 감독이 <장미의 이름>에 그를 캐스팅할 당시에만 하더라도 론 펄먼은 영화배우를 포기할까 고민 중이었다고 합니다. 일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이상한 역할만 맡다 보니 아마도 '내가 이러려고 배우했나' 자괴감이 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때 마침 그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으니, 그것이 바로 TV시리즈 <미녀와 야수>의 야수 프랭크 역할이었죠. 물론 특수분장을 해야 하는 역할이지만 누가 봐도 론 펄먼이 제격이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던 캐스팅입니다. 그는 1987년부터 3년 넘게 야수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골든 글러브 티브이 부문 연기상을 수상했죠.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또 한 편의 영화는 바로 자 피에르 주네 감독의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입니다. <델리카트슨 사람들>을 만들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장 피에르 주네는 독특한 영상미와 주제를 가진 개성 강한 영화를 만들어왔습니다. 론 펄먼은 프랑스어를 한 마디도 못 하는 뉴욕 출신 배우였으나 이 영화 출연을 위해 프랑스어 대사를 달달 외워 감독으로부터 "완벽하다"는 칭찬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어를 1도 모르면서 프랑스 영화에 출연한 미국 배우의 독특한 사례를 개척하기도 했지요.


인생 파트너, 길예르모 델 토로

배우들은 종종 자신과 정말 합이 잘 맞는 감독과 인연을 맺고는 합니다. 론 펄먼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페르소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합이 잘 맞았습니다. 론 펄먼에게 '헬보이'라는 인생 캐릭터를 맡긴 것도 그였습니다. 아니 그 전에 이미 <크로노스>, <블레이드2> 등의 영화를 같이 작업하기도 했으니까요.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헬보이>를 기획할 당시에 크리에이터인 마이크 미그놀라와 각자 자기가 생각하는 헬보이의 적역을 이야기하기로 하고 만났는데 둘 다 동시에 론 펄먼을 거론해 깜짝 놀랐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스튜디오에서는 빈 디젤도 후보로 올렸는데 감독이 론 펄먼으로 밀어붙였다고 하더군요. 아무튼 델 토로 감독은 <퍼시픽 림>에서 다시 한 번 그와 요긴하게 작업합니다. 최근 <헬보이> 3탄 제작은 제작비 문제로 제작되기 어렵다는 아쉬운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이상한 걸 사랑하는 사람

실제로도 시가를 너무 좋아하는 헤비 스모커여서 론 펄먼이 맡는 많은 캐릭터에는 꼭 애연가 설정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골프와 재즈, 당구가 취미인 그는 재즈 드러머였던 헝가리계 아버지와 관공서에 다녔던 폴란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비교적 우울한 유년시절을 거쳤습니다. 그의 거친 외모 덕분에 어려서부터 자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는군요. "지독한 과체중이었으며 스스로 자존감이 낮은 상태"였던 그의 유년시절이 론 펄먼에게 남겨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스스로 기형적인 사람들을 연기하는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 한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아무리 그의 외모를 망가뜨리고 왜곡시킨다 해도 그는 그 자체로 어떤 가치가 있는 캐릭터로 승화시키곤 하지요. 그의 수많은 메이크업 뒤에는 이런 마음이 숨겨져 있었던 겁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가로등거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