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빠르망>은 제목이 참 매력적인 느낌이었다. 낭만의 도시, 파리가 연상되는 듯했다. 가본 적도 없으면서 그랬다. 나중에 라빠르망(L'Appartement)의 뜻이 아파트(The Apartment)라는 걸 알았을 때는 허망한 기분마저 들었다.
왓챠에 <라빠르망>이 독점 공개됐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1997년 국내 개봉한 <라빠르망>에는 모니카 벨루치, 뱅상 카셀, 로만느 보링거가 출연했다.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제 <라빠르망>은 추억의 영화가 됐다. 그래도 그 명성은 여전하다. <라빠르망>을 비롯해 그때 그 시절의 세 배우가 출연한 작품을 소개한다. 영화로 떠나는 시간여행이다.
리자(모니카 벨루치)와 막스(뱅상 카셀) 그리고 앨리스(로만느 보링거). 셋 가운데 주인공을 꼽아보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니카 벨루치나 뱅상 카셀의 캐릭터를 염두에 둘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포스터에서 빠진 로만느 보링거의 앨리스를 진짜 주인공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眞) 주인공’이라는 말은 <라빠르망>의 앨리스에 꼭 들어맞는다. 스포일러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정보만으로도 문제를 삼을지 모르겠다. 섣불리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여기까지. <라빠르망>을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해 간략한 정보만 보탠다. <라빠르망>은 파리에서 살아가는 세 젊은이의 얽히고 꼬인 사랑 이야기다. 또 눈부신 미모의 모니카 벨루치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영화다.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의 <증오>(1995)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뱅상 카셀의 젊은 시절도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이 영화를 통해 연인으로 발전했고 결혼까지 이어졌다. 2013년에 부부는 이혼했다. 로만느 보링거를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젊은 시절도 <라빠르망>에 담겨 있다. 안타까운 점은 국내 관객 대부분이 보링거의 최근 작품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어쩌면 보링거는 <라빠르망>의 앨리스로 영원히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돌이킬 수 없는>은 문제작이다. 당시 부부였던 모니카 벨루치와 뱅상 카셀이 주연이라는 점보다 더 화제가 된 것은 잔혹한 폭력의 묘사였다. 그 끔찍한 폭력을 목격한 순간, 잊기 힘들다는 의미에서 영화의 제목 ‘돌이킬 수 없는’가 묘하게 어울리는 기분이다. 다만 이건 관객에게 해당하는 해석이다. 시간을 거꾸로 편집한 영화의 내러티브가 ‘돌이킬 수 없는’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돌이킬 수 없는 폭력. 그 폭력은 또 다른 폭력에서 태어났다. <돌이킬 수 없는>은 한마디로 복수극이다. 클럽 앞.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한 남자는 들것에 실려나오고 다른 남자는 수갑을 차고 있다. 이들은 알렉스(모니카 벨루치)의 연인 마르쿠스(뱅상 카셀)와 옛 연인 피에르(알베르 두퐁텔)다. 그들에게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시계는 거꾸로 흐른다. <돌이킬 수 없는>이 2002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상영됐을 당시 많은 기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상영관을 떠났다고 한다. 칸영화제에서 상영 중 자리를 뜨는 경우는 은근히 많다고 알려져 있지만 <돌이킬 수 없는>는 극단적인 폭력 묘사로 인한 특별한 경우임에 틀림없다.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들이 자리를 뜬 이유를 알 수 있다. 다시 한번 제목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절대 돌이킬 수 없다.
<말레나>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은 <시네마 천국>의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두 영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소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성장영화라는 점이다. <시네마 천국>의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는 <말레나>의 레나토(주세페 술파로)다. 토토는 영화를 사랑하고, 레나토는 말레나(모니카 벨루치)를 사랑한다는 건 다른 점이다. 정리하면 <시네마 천국>이 영화에 대한 추억을 보여주고, <말레나>는 말레나에 대한 추억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말레나가 누구냐는 거다. 말레나는 기구한 운명을 살아가는 아름다운 여인이다. 2차 세계대전으로 말레나의 남편은 전장으로 떠났다. 빵 하나 구하기 힘들어진 그는 창녀가 된다. 전쟁이 끝난 뒤 말레나는 나치 부역자로 몰리고 고향 마을을 떠난다. 토르나토레 감독은 이 모든 과정을 사춘기 소년에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레나토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말레나>의 초반부는 몽정기 소년을 중심으로 한 왁자지껄한 소란과 코믹한 분위기가 주도한다. 후반부로 갈수록 비극적인 말레나의 삶이 도드라지며 주제 의식을 선명히 드러낸다. <말레나>가 레나토의 시선으로 이뤄진 영화이긴 하지만 결국 말레나 즉 모니카 벨루치에게 시선을 뺐길 수밖에 없다. 특히 영화의 초반, 파시스트의 상징인 검은 옷을 입고 무솔리니 만세를 외치던 마을 사람들 앞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말레나는 그야말로 (<라빠르망>에 이어 다시 한번) 눈이 부시다.
<크림슨 리버>는 프랑스판 <세븐>인가. 만약 그렇다면 뱅상 카셀이 연기한 젊은(!) 경찰 막스는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신참 형사 데이빗 밀스에 해당한다. 뱅상 카셀 대 브래드 피트의 매력 대결 혹은 연기 대결이라고 해도 될까. <레옹>으로 잘 알려진 장 르노가 연기한 베테랑 니먼 형사는 모건 프리먼이 연기한 은퇴를 일주일 앞둔 소머셋과 대비될 것이다. 그렇다. <크림슨 리버>는 <세븐>과 비슷한 구도와 분위기를 풍기는 장르 영화다. 개봉 당시 감독의 이름에서 이 영화에 대한 의구심을 품은 이들이 있었다. 마티유 카소비츠 감독은 파리 외곽 빈민가 이민자 청년들의 삶을 그린 <증오>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았다. 그런 그가 <세븐>과 비슷한 범죄 스릴러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카소비츠 감독은 자신의 영화적 뿌리가 프랑스가 아닌 할리우드에 있다고 말하며 프랑스 영화계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크림슨 리버>를 <세븐>과 비교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고 아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점은 분명 있다. 알프스의 산악 지대에서 벌어지는 영화의 후반부는 프랑스 감성의 액션 스릴러 미학을 담았다. 한 가지 더. <크림슨 리버>를 소개한 이유. 젊은 시절 뱅상 카셀의 액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크림슨 리버>는 기억할 만한 작품이다.
<라빠르망>의 앨리스는 <토탈 이클립스>에서 마틸드(로만느 보링거)였다. 리자와 막스의 사이에 있던 앨리스와 <토탈 이클립스>에서 천재 시인 랭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베를렌느(데이빗 듈리스) 사이에 있던 마틸드는 어쩐지 처지가 비슷해 보인다. 보링거는 베를렌느의 아내 마틸드를 연기했다. <토탈 이클립스>는 두 천재 시인의 사랑을 담은 영화다. 개봉 당시에는 동성애를 다룬 점 때문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압생트라는 술로 대표되는 19세기 말 예술의 도시 프랑스 파리의 모습을 담은 것도 볼거리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다. <토탈 이클립스>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세계적인 청춘 스타로 만들어준 작품 가운데 하나다. <길버트 그레이프>(1993), <바스켓볼 다이어리>(1995)와 함께 <토탈 이클립스>가 그의 필모그래피에 놓일 것이다. 즉, <로미오와 줄리엣>(1996), <타이타닉>(1997)이 나오기 전 풋풋한 모습의 디카프리오를 볼 수 있는 영화다. 단, <라빠르망>을 본 관객들의 눈에는 마틸드 역의 보링거도 눈에 콕 박힐 것이다. 그는 대단한 배우임에 틀림 없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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