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루 발렌타인>에서 딘(라이언 고슬링)은 신디(미셸 윌리엄스)를 우연히 만났는데 첫눈에 반하게 됩니다. 신디는 의대생이고, 딘은 고교 중퇴로 추측되는데 이삿짐센터 직원입니다. 신디는 처음에 딘한테 뜨뜻미지근하다가, 딘의 어딘가 대책 없고 무조건적으로 느껴지는 사랑에 마음이 흔들리고, 둘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이가 됩니다.
그러나 신디가 전 남자 친구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첫 갈등이 시작됩니다. 신디는 병원에 가지만 차마 낙태를 하지 못하고, 그런 신디를 딘은 꼭 안아주면서 우리 셋이 가족이 되자고 말하죠. 그렇게 해서 결혼하게 된 두 사람. 영화에 관한 많은 후기에서 말하는 것처럼 둘의 시작은 사랑이었고 그 사랑은 진심으로 보였습니다. 그렇다면 딘의 약속처럼 신디가 임신한 전 남자 친구의 아기까지 세 사람은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 민법은 '남편의 친생자 추정'이라는 제목의 규정(민법 제844조)을 두고 있습니다. 이 규정의 목적은 과거 과학적 친자감정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불확실한 개연성을 근거로 부와 자녀의 친생자 관계를 추정함으로써 부자관계의 불명확한 상태를 빨리 해소하기 위한 것입니다. 법에서 말하는 부(夫)의 친생자로 추정하기 위한 요건은, 1) 아내가 혼인 중에 임신한 자녀는 남편의 자녀로 추정하고, 2) 혼인이 성립한 날부터 200일 후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 임신한 것으로 추정하며, 3) 혼인관계가 종료된 날부터 300일 이내에 출생한 자녀는 혼인 중 임신한 것으로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혼인 성립 후 200일 ~ 혼인관계 종료 후 300일 이내에 출생하면 그 혼인관계에서 임신한 것으로 추정하여 결과적으로 남편의 자녀로 추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규정은 친자 여부를 과학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과거에 일반적으로 임신기간이 10개월인 것을 고려한 나름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할 수 있지만, 머리카락만 있으면 친자 감정이 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이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합니다.
영화에서 신디는 일단 딘과의 혼인 중에 아이를 임신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임신 사실을 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결혼했기 때문에 결혼 후 200일 후, 즉 약 6~7개월 후에 출산을 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아이는 딘과 신디의 혼인 중 임신한 것으로 추정되어, 결과적으로 딘의 자녀로 친생자 추정이 됩니다(이하 딘의 친생자 추정을 받는다는 전제에서 글을 전개함).
그러나 그 아이가 딘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딘도 알고 신디도 알고 친자감정만 해도 나옵니다. 딘과 신디가 계속 혼인 중이라면 딘이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이 되려고 결혼했기 때문에 딘의 친생자로 추정하는 것이 타당할 수 있지만, 이제 이혼을 하는 마당에 유전적으로 딘의 아이가 아님이 분명한데도 그 친생자 관계는 유지되어야 할까요. 우리 민법은 친생자 추정을 받는 경우에 그 관계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친생부인의 소’에 의해서만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친생부인의 소는 부 또는 모 일방만 제기할 수 있고,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2년 내에 제기해야 합니다. 따라서 기간이 도과하면 친생자 관계를 부인하여 가족관계등록부를 수정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게 됩니다. 친생자 추정을 받지 않는 부자관계(위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 상태에서 출산한 경우)는 요건이 엄격한 친생부인의 소가 아닌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을 통해서 확인의 이익이 존재하면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친생자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딘과 신디는 결혼 후 2년 이상 흐른 후 결국 이혼을 합니다. 따라서 딘이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은 친생자가 아님을 안 날로부터 2년이므로 딘은 기간이 도과하여 친생부인의 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딘은 결혼 전에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아님을 알면서도 신디한테 가족이 되자고 하면서 결혼했기 때문에 현재 우리나라 판례 입장에 따른다면 친자 감정을 통해 친자가 아님을 입증하더라도 친생자 부인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결론을 놓고 보면 민법의 친생자 추정 규정이 굉장히 불합리하게 느껴지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이 규정은 1958년 2월 22일 구 민법 제정 당시부터 도입된 규정입니다. 이 규정의 불합리성을 지적한 판결이유가 있습니다.
“친생자 추정과 친생부인의 소에 관한 규정은 당시 부성의 정확한 감별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고 처의 부정행위가 드물었던 시대적 배경에서 불확실한 개연성에 기반을 둔 것인데, 과학적 친자감정 기술의 발달로 혈액형 또는 유전자형의 배치에 대한 감정을 통해 친생자 추정이 혈연에 반하는지 여부를 명확하게 판별할 수 있게 된 현재에 이르러도 이와 같은 친생자 추정의 법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따라서 대법원 판례는 이러한 불합리를 해소하기 위하여 해석으로서 친생부인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 두고 있는데, ‘부부의 한쪽이 장기간에 걸쳐 해외에 나가 있거나 사실상의 이혼으로 부부가 별거하고 있는 경우 등 동거의 결여로 아내가 남편의 자녀를 임신할 수 없는 것이 외관상 명백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친생추정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친생추정은 부인한 최근 판례를 살펴보면 2019년에 무정자증 진단을 받은 남편의 동의 하에 제3자로부터 정자를 제공받아 시험관 시술로 임신하였는데 그 후 부부가 이혼한 사안에서, 시험관 시술로 태어난 자녀에 대한 남편의 친생부인을 인정하지 않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가 있었고, 이 사건은 당시 그 결론을 두고 갑론을박 꽤 논란이 되었습니다. 결국 위 규정이 존재하는 한 과학적으로 친자관계가 아님이 밝혀진 경우에도 친자관계를 진실에 부합되게 수정할 수 없는 경우는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글 | 고봉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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