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에서 한 우물만 판 집념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돌아왔다. <식스 센스>(1999)부터 <23 아이덴티티>(2017)까지. 시대를 가로지르며 독창적인 흔적들을 남기고 있는 그가 이번엔 타임 호러 스릴러로 관객들을 찾는다.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이름 없이도 오로지 30초짜리 트레일러 하나로 기대작 자리를 꿰찬 <올드>를 통해서다. 범상치는 않지만, 늘 우리의 삶과 밀접한 소재를 통해 기이한 서스펜스를 선사하던 샤말란은 이번엔 '시간'이란 소재에 귀를 기울였다. 환상적인 휴양지처럼 보이지만, 꼬마였던 여성이 순식간에 출산을 할 만큼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는 해변을 그려내며 색다른 공포를 안길 예정이다.

(왼쪽부터) 토마신 맥켄지, M.나이트 샤말란

<23 아이덴티티>가 그랬듯, <올드>는 예고편 속 짧은 장면들만으로도 영화 팬들의 숱한 추측을 불러일으켰다. 째깍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심장을 조이고, 아이였던 이들이 순식간에 어른으로 변하는 모습을 통해 궁금증을 부풀렸다. 과연 <올드>는 어떤 영화일까, 어떤 이야기일까. 운 좋게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질문에 답을 먼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M.나이트 샤말란 감독과 <올드>의 중심에 선 배우 토마신 맥켄지와 화상으로 마주 앉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 두 사람과의 만남에 앞서 관람한 <올드>는 '샤말란이 샤말란했다'는 말이 절로 나왔기에, 흥미로운 마음을 붙잡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M.나이트 샤말란 감독, 토마신 맥켄지와 <올드>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씨네플레이 독자들에게 전한다.


최초, 최초, 최초?

<올드>를 위해 샤말란 감독이

처음으로 도전한 3가지

<올드> M.나이트 샤말란 감독

<올드>는 지금까지 작업한 스릴러 영화 중 유일하게 원작이 있는 작품이다. 그래픽 노블 <샌드캐슬>을 원작으로 두고 있는데, 처음 <샌드캐슬>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처음 <샌드캐슬>을 읽었을 때의 기억은 뭐랄까 굉장히 추상적으로 저장되어있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 학교에 들어가거나, 처음 사람을 만난 순간을 마음의 느낌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샌드캐슬>을 처음 읽은 그 순간 역시 파편적으로 남아있다. 우선, 물 위에 사람이 떠 있는 표지가 상당히 도발적인 느낌이었다. 또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풀어가는 방식과 각각의 이미지들을 병치해놓은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더욱이 <샌드캐슬>은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아주 약간의 유머를 흩뿌리는데, 이 부분에서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 1959)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렇듯 전반적인 분위기와 톤에 마음이 끌렸다고 할 수 있겠다.

스릴러 작품을 각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보니, 이야기를 발전시키는데 어려운 부분도 많았을 것 같다.

원작을 각색하는 데 있어서 흥미로웠던 건 <샌드캐슬>의 스케치가 굉장히 '미니멀하다'는 거였다. 수백 가지의 사건이 일어나거나 수많은 대화로 이루어진 작품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소설 속 캐릭터가 누구인지,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하면 할수록 영화 속에 삽입할 디테일한 부분들에 대한 여지가 많이 보였다. 원작의 소재를 새로운 이야기로 발전시켜가는데 적절한 균형감을 찾아가는 과정이 힘들다기보다는 아름답게 느껴졌다.

<올드>는 당신의 시그니쳐인 필라델피아를 벗어나 촬영을 감행한 첫 번째 작품이 됐다. 지금까지 연출한 (장편) 영화 모두 당신의 자란 필라델피아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었는데, 왜 <올드>만은 필라델피아가 아닌 도미니카공화국이었나?

사실 열대 해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기 위해서는 필라델피아에서 촬영할 수가 없었다. (웃음) 근데 자세히 놓고 보면 그래서 내가 이 이야기에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안정적인 환경에 안주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또 필라델피아를 벗어나면 나에게서 어떤 영화가 탄생할지도 궁금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올드> 촬영 당시엔 최대한 정형적인 것을 피하려 했고, 스태프들 역시 새로운 사람들로 꾸려나갔다. 물론, 이런 변화는 아이들의 영향도 컸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필라델피아를 벗어난 이야기를 써 내려 갈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아마도 언젠가는 한국 도시에 관한 글을 쓰고, 한국인이 출연하는 영화를 만들지도 모르겠다. 워! 벌써부터 흥미롭다. (웃음)

각색을 하면서 촬영지를 필라델피아로 바꾸고 싶은 마음도 들었을 것 같은데.

사실 <올드> 전에는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필라델피아에서 찍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내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 촬영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야기를 매만지는 과정에 있어서 로케이션이 가장 첫 번째 요소였을 정도로 중요했다. 하지만 <올드>는 아니었다. <올드>는 그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았다. 그만큼 <올드>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는 증거인 것이, <올드>는 '2년 후에 이 영화를 어떻게 촬영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그래서 그때 가족들에게 "2년 뒤에 영화 촬영하러 함께 떠나자"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어떻게 하면 가족과 함께 이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편이 더 나았으니까.

<올드>가 특별한 이유는 또 있다. <라스트 에어벤더>(2010) 이후 처음으로 디지털 방식이 아닌 필름 방식의 촬영을 선택했다. 여러 가지 제약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 왜 35mm 필름 촬영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맞다. 필름 방식의 촬영을 선택한다는 건 재정적으로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정말이지 어리석은 선택에 가깝지만, 그건 어쩌면 '유일한' 선택이기도 했다. 만약 필름으로 촬영을 하지 않으면 이 영화를 아예 만들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니까. 우리는 해변에서 정말 모든 카메라 종류를 테스트했다. 여러분이 알고 있는 모든 카메라 포맷을 테스트했는데, 낮과 밤을 모두 찍어 본 결과 35mm 필름이 <올드>와 가장 딱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해안가와 바다의 본질적인 느낌을 정확히 포착했다고 해야 할까. 디지털카메라는 해변을 너무 차갑게 보이게 만들어서 그 '느낌'을 옮기고 싶진 않았다. 35mm 필름은 과거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감각들을 전할 거로 생각한다.

필름으로 촬영을 진행하게 되면 배우도, 스태프들도 계속해서 시간의 압박을 느낄 것 같다.

맞다, 하지만 사실 난 제한을 두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가 하는 예술의 형식을 존중할 수 있기 때문인데. 예를 들어 필름이 돌아갈 준비가 되면 모든 스태프들과 초집중을 해야 한다. 필름은 400피트에 4분밖에 되지 않으니까, 테이크 수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또 필름을 갈아 끼워 넣기 위해 길고 긴 해변을 가로질러 저 멀리서 달 오는 스태프를 보게 되면 한 컷, 한 컷의 귀중함을 자연히 알게 된다. 그렇기에 모든 스태프는 완벽하게 준비를 해야 했다.

<올드>는 연출 방식 면에서도 할 이야기가 많은 작품이 될 것 같다. 아름다우면서도 섬뜩한 분위기가 계속해서 공존할 수 있었던 건 배경과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담아냈기 때문일 거다. 혹시 <올드>를 연출하기 위해 따로 참고한 작품이 있다면?

많다. 우선 <워커바웃>(1971)을 연출한 니콜라스 로그(Nicolas Roeg) 감독들의 작품들을 많이 참고했다. 특히 앞서 말한 <워커바웃>을 가장 많이 참고했는데. 캐릭터의 움직임, 불규칙하게 출현하는 폭력성, 줌(zoom)의 움직임,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 자연이 지닌 공포를 어떻게 전달하는지 유심히 봤다. 또 구로사와 아키라 작품에선 '달리 숏(dolly shot)'을 활용하는 방법을, 피터 위어 감독의 <행잉록에서의 소풍>(1975)에선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들이 전하는 공포의 느낌을 참고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뽑는다면?

가장 마음에 든다기보다는, 머릿속에서 상상한 것과 가장 비슷하게 구현된 장면이 있다. 영화 중반부쯤 아이였던 캐릭터가 임신을 하게 되며 모두가 혼란에 빠진 시퀀스가 있다. 마치 군무 동선을 맞추는 것과 같은 리허설 과정이 필요했을 만큼 촬영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운 장면이었다. 아마 극장에서 해당 장면을 본다면 서라운드 사운드 효과와 역동적인 카메라 숏이 어우러져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올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 정말 멋진 경험이 될 거다.

곧 <올드>를 관람하게 될 한국 관객들이 어떤 메시지를 쥐고 극장 문을 나섰으면 좋겠는가.

메시지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올드>를 통해서 시간과 우리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무언가를 쫓고,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일까? 아니면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더 평화로운 삶일까? <올드>를 통해 메시지라기보다는 관객들에게 정말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21살의 신예, 토마신 맥켄지

"그냥 '미쳤다'는 말 밖엔"

<올드> 토마신 맥켄지

phobymo/Universal Pictures

M.나이트 샤말란 감독은 독보적인 세계관을 지녔기에, 그와 함께하는 작업은 배우로서 설렐 수밖에 없을 것 같다.

M.나이트 샤말란 감독과의 작업은 정말 정말 흥미로웠다. <올드>가 시간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만큼, 샤말란은 시간에 관해 거시적이면서도 흥미로운 생각들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팬데믹 상황을 맞이하면서 고립감을 느끼는 건 물론, 때론 시간이 너무 천천히 때론 너무 빠르게 흘러간다는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지 않나. 그렇기에 나 역시도 샤말란 감독이 시간에 관한 철학적인 생각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했고, 그 과정에 함께 할 수 있어 흥미로웠다.

<올드>는 러닝타임 내내 해변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대부분의 장면들을 바닷가 근처에서 촬영해야 했을 텐데, 배우로선 굉장히 고된 경험이었을 것 같다. 특히, 수영복만 입고 연기를 해야 했으니 육체적으로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겠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

아, 정말 좋은 포인트다. 해변만을 배경으로 한 영화는 거의 없지 않나. 그렇기에 <올드>는 굉장히 독특한 현장일 수밖에 없었다. 해변에서만 촬영을 진행하다 보니 가장 큰 문제는 계속해서 태양과 바람, 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거였다. 어느 날은 눈물을 펑펑 흘려야 하는 감정신을 소화했는데, 당시 얼굴에 바른 자외선 차단제가 눈에 다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땀과 비, 선크림이 뒤엉켜 마치 눈이 불타는 느낌이었다. (웃음) 그날이 신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날인 것 같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 실제 가족처럼 지냈다고 들었다. 특히, 당신의 엄마로 출연한 빅키 크리엡스와는 현장에서 실제로 엄마와 딸처럼 살가웠다고 하던데, 다소 고립된 촬영 현장에서 커다란 의지가 됐을 것 같다.

<올드>는 팬데믹 기간에 촬영이 진행됐기 때문에, 제작이 성공적으로 완성되기 위해선 모두가 안전하게 함께 격리되어 있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배우들이 정말 끈끈한 관계를 형성했는데, 빅키 크리엡스는 정말 실제 엄마처럼 대해줬다. 가족과 떨어져서 해외에서 홀로 지낸 적은 처음이어서 빅키에게 굉장히 의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웃음) 진짜 엄마처럼 보살펴줘서 빅키에게 정말 감사하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 자체로도 정말 멋진 일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지지를 받고, 보살핌을 받고, 함께 한다는 것 자체로도 나에겐 환상적인 경험이었다.

<조조래빗> 토마신 맥켄지

It's been crazy!

이번 작품을 통해 연을 맺은 샤말란 감독뿐 아니라, 지난 2년 동안 할리우드 대형 감독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누구보다 바쁘게 지내왔다. <더 킹: 헨리 5세> <조조래빗> 그리고 곧 개봉을 앞둔 <라스트 나잇 인 소호>까지. 굵직한 작품들에 이름을 올리며 전 세계에 당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새기고 있다. 스스로도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그냥 '미쳤다'는 말 밖에는 (웃음). 사실 개인적으론 팬데믹 시기를 보내면서 내가 겪은 모든 일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내가 놓인 이 '미친' 상황 속에 있을 때는 내 모습을 제대로 되돌아볼 수 없었는데, 작년 가족들과 함께 산책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 그리고 정말 멋진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을 하게 됐다.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이 얼마나 흥미로운 경험인지 스스로에게 상기시켰고, 그 기쁨을 오롯이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다시 현장으로 돌아오게 돼서 너무 기쁘고, 좋은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 그 자체로 여전히 너무 좋다.

<올드>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제한된' 시간, 그 한계를 들여다보며 인간 삶에 관한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샤말란 감독답게 장르적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인간 내면 깊숙한 곳과 연결된 묵직한 메시지가 녹아있다. <올드>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을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만약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단 하루뿐이라면, 당신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겠는가.

좋은 질문 고맙다. 사실 내 개인적인 고충 중 하나가 나는 시간을 굉장히 의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거다. 항상 시간을 확인하고, 정해진 일정대로 모든 것이 흘러가길 바라며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어 한다. 만약 단 하루가 주어진다면, 내가 존재하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다. 주어진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내가 어딘가에 소속되어야겠다는 생각이나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과 의무감을 벗어던지고 그저 그 하루를 즐기고 싶다. 내게 주어진 따분함과 지루함마저 즐기며 보내고 싶다.


씨네플레이 유정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