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당한 폭력과 부조리를 뼈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사회인데, 왜 위에서 아래로 폭력과 부조리를 대물림하는 구조는 바뀐 게 없을까?

<D.P.>

수 년 전부터 ‘병영문화 혁신’을 추진 중인 국방부는, 기회가 될 때마다 군 내 사건사고나 자살자 수, 탈영병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 중이라고 홍보한다. 일과가 끝난 뒤엔 선후임과 함께 생활하는 게 아니라 동기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동기생활관’, 같은 달, 같은 분기, 길게는 같은 해에 입대한 사병들까지 죄다 동기로 취급하는 ‘1/3/6개월/1년 단위 동기제’, 일과가 끝난 뒤 외출을 허용하는 ‘평일 일과 후 외출’ 제도, 시험운영을 거쳐 2020년부터 전면 도입된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 등의 조치들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감소했음에도, 2020년 한 해에만 군에서 쉰 다섯 명이 죽었다. 개중 자살은 44명이었다.

물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군내 자살률이 일반 국민의 자살률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2019년 기준으로 자살률을 비교하면 군내는 10만명 당 9.73명, 비군인 20대 남성의 자살률은 10만명 당 21.6명이니, 군대가 잘 하고 있는 거라고. 글쎄, 정말 그렇게만 말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 20대 남성의 자살률이 현저하게 높다는 비극을 고작 “군이 썩 잘하고 있다”는 변명을 위해 가져다 쓰는 것도 못마땅한 일이지만, 그걸 둘째 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자살 사고의 원인은 상대적으로 다양하다. 생계 문제, 가정 내 불화, 진학이나 취업 실패 등의 사회진출 좌절, 직장 내 스트레스, 사회적 소속이 없다는 고립감 등등…. 그러나 군내에서 발생하는 자살사고의 원인을 적다 보면, 그 모든 게 한 방향을 가리킨다. 기수 열외, 구타, 욕설, 폭언, 가혹행위, 성폭력….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 어떤 불합리한 명령도 참아내야 하고, 피해자를 잘 달래 침묵시킴으로써 ‘큰 일’ 만들지 않고 조용히 수습하고 넘어가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폭압적인 군대문화의 부산물들이다.

“참으면 윤일병, 못 참으면 임병장”이란 말이 세간의 화두가 되었던 2014년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가 그리는 군대는 – 실제 사례들에 비하면 굉장히 순화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 끔찍하다. 군대에 잘 적응하지 못한 병사들을 ‘폐급’이라 부르며 따돌리고 괴롭히는 것이 일상화된 환경 속에서, 저마다의 이유로 자리를 잡지 못한 병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탈영을 선택한다. 그거라도 안 하면 정말 총기함을 따고 어디로든 총질을 할 것만 같으니 말이다. 그게 내 머리가 됐든, 저기 침상 위에 앉아서 날 때리고 욕하고 조롱하는 선임이 됐든. 그리고 그걸 추적해서 ‘무사히’ 데려와야 하는 군무이탈 체포전담조 헌병 ‘D.P.’들의 삶은 퍽퍽하다. 그들도 안다. 대부분 잘못한 놈은 따로 있다는 것도. 말도 없이 부대를 떠나 도망쳐버린 병사들에겐 저마다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는 것도. 이렇게 잡아간다고 해서 처음 탈영을 결심하게 만든 근본 원인 같은 게 바뀌는 일은 드물 것도. 그래도 한낱 ‘D.P.’가 할 수 있는 일 같은 건 없다. 그냥 탈영병이 어디 다치거나 누구를 다치게 하는 일 없이, 일 더 커지기 전에 ‘무사히’ 데려오는 게 전부다.

<D.P.>가 공개된 직후 한국어권 인터넷은 온통 자신의 군 시절을 회고하는 글들로 가득 찼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연한 일이다. 입대 시점과 입대한 부대에 따라 그 복무 형태도 기간도 저마다 다르지만, 부대 내 가혹행위와 부조리한 명령은 어딜 가든 존재하니까. 저마다 자신이 당했던 일들, 자신의 친구가 당했던 일들, 자신이 목격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쓴 입맛을 다셨다. 누군가는 “제발 <D.P.>를 보고 한국 남자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좀 알아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가 이렇게 가혹한 환경에 강제로 던져진 채 2년가량을 보냈다고. 한국 남자들이 이런 걸 감내하면서 산다고.

그런데 참 희한한 일이지. 자신이 당한 폭력과 부조리를 뼈 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은 사회인데, 왜 위에서 아래로 폭력과 부조리를 대물림하는 구조는 바뀐 게 없을까? 그건 아마, 한때 피해자였고 단순 방관자였던 사람들조차 폭력적인 구조의 사다리 위쪽으로 올라가고 나면 자연스레 구조의 문법을 따라 가해자의 롤을 수행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가 선임들한테 당한 거에 비하면 나는 정말 양반이라고, 내가 가하는 건 얼차려 축에도 못 낀다고, 너희들은 선임 복이 있는 거라고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스스로 폭력적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가는 걸 아무 저항 없이 받아들인 이들이 많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D.P.>가 던진 무거운 질문을 읽는 일은 더 없이 중요하다. 그 질문을 오독 없이 ‘제대로’ 읽으려면, 내 안에서 준호(정해인)나 호열(구교환), 석봉(조현철)의 면모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어떤 순간에는 황장수 병장(신승호)이었고 류이강 병장(홍경)이었고 헌병대장 천용덕(현봉식)이었던 게 아닐까 돌아봐야 한다. 나 자신의 비겁함과 비열함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그 비겁함과 비열함에 기대어 지탱되는 부패한 시스템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우리가 우리의 허물을 직시하고 인정할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저 시스템을 바꾸는 일도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이승한 TV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