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 혹은 충격. 관람하면 어떤 의미로든 진한 후유증을 남기는 영화 <티탄>이 12월 9일 개봉했다. 올 7월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해 궁금증을 자극한 <티탄>은 어린 시절 교통사고로 머리에 티타늄을 심은 댄서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를 그려 관객들의 머릿속을 헤집는다. 완전히 새로운 영화인 듯하면서도 의외로 다른 작품들도 함께 풍기는 이 영화 <티탄>에서 연상되는 영화들과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힌 영향 받은 영화를 전한다. 물론 이 영화들 또한 <티탄> 못지않게 멘탈을 흔드는 작품이란 점은 주의.
[ 크래쉬 ] (1996)
<티탄> 개봉으로 오랜만에 거론되는 감독이 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다. 그는 1980, 90년대 '바디 호러' 장르의 대표주자인데, 바디 호러는 기괴하게 변형된 인간의 신체를 통해 공포감을 조정하는 장르를 의미한다. 그의 대표작은 <비디오드롬>, <플라이>, <엑시스텐즈> 등이 있지만 <티탄>과 가장 가까운 작품은 1996년 영화 <크래쉬>다. <크래쉬>는 J. G. 발라드의 소설을 원작으로 자동차와 인간의 성적 욕구를 결부한 표현들로 논란을 빚었다. 교통사고에서 성적 쾌락을 맛본 주인공이 자신처럼 차량 충돌에 환상을 가진 집단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는 단순히 자극적인 소재를 넘어 현대 사회의 금속성과 강박적 쾌락을 짚어내 명작으로 인정받았다. <티탄>은 차량과 성애라는 부분에서 <크래쉬>를 닮았는데,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도 <크래쉬>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두 영화의 주목하는 인간성은 전혀 상이하기에 이런 시각에서 두 영화를 비교해보면 좋을 것이다.
[ 홀리 모터스 ] (2012)
<티탄>은 올해 오랜만에 신작을 공개한 레오 카락스 감독의 <홀리 모터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물론 두 영화의 공통점은 차량과 프랑스라는 배경 정도긴 하다. <티탄>은 (괴상할지라도)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하는 영화인 반면, <홀리 모터스>는 미스터 오스카(드니 라방)라는 인물을 제외하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설정과 장면으로 하나의 이미지에 도달하는 영화니까. 그러나 차량이란 대상을 하나의 상징으로 두고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작동시켜 메시지를 전하는 두 감독의 태도는 두 작품을 같은 선상에 두고 살펴보고 싶게 한다. 마침 레오 카락스 감독의 신작 <아네트> 또한 칸국제영화제에서 첫 공개한 인연도 있고.
[ 카운슬러 ] (2013)
한편 <티탄>의 특정 장면(?) 때문에 떠오르는 영화도 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카운슬러>는 한 변호사(마이클 패스벤더)가 큰돈을 벌려고 마약밀매에 손댔다가 나락으로 빠지는 범죄 스릴러. <티탄>에 웬 범죄 스릴러냐 싶겠지만, <카운슬러>에도 차와의 관계를 기막히게 그린 장면이 있기 때문. 라이너(하비에르 바르뎀)의 애인 말키나(카메론 디아즈)가 차 전면 유리 위에서 노골적인 행위를 하는데, 천하의 라이너마저 '말키나가 내 차와 했다'고 말할 정도로 이상한 감각을 남긴다. <티탄>에서의 그 장면이 영화의 전반적인 정서를 지배하듯, <카운슬러>의 이 장면도 말키나라는 캐릭터와 작품 속 세계의 정서를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 대 작품으로 놓고 보면 유사하다고 말하기 힘들지만, '그 장면' 같은 극단적인 이미지를 작품에서 활용한 대담함은 자연스럽게 두 영화의 교집합을 맺는다.
[ 살인자 잭의 집 ] (2018)
<티탄>은 감독의 전작 <로우>만큼은 아니지만 사람에 따라 비위가 상할 만한 장면이 더러 있다. 뒤쿠르노는 알렉시아의 살인 장면이나 몇몇 폭력적인 부분을 의도적으로 적나라하게 담는데, 이처럼 극단적인 폭력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살인자 잭의 집>을 떠올리게 한다. <살인자 잭의 집>은 잭(맷 딜런)이란 연쇄살인마의 행적을 그리는데, 극중 살인 장면을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재현해 공개 당시 엄청난 논란을 빚었다. <살인자 잭의 집>에 비하면 <티탄>은 순한맛이지만, 매우 잔인한 순간에 다소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를 유발하는 방법 등은 두 영화의 공통점. 사실 직접적인 폭력의 재현을 제외하면 두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완전 상반된 점이 더 흥미롭다. <살인자 잭의 집>은 라스 폰 트리에 본인이 일부 투영돼 자신의 항변처럼 느껴진다면, <티탄>은 극단에 있는 캐릭터를 통해 현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듯한 세계를 구현하기 때문. 작품을 위해 극한의 표현도 감수하는 두 감독의 다른 면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쥘리아 뒤쿠르노가 밝힌 참고작들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티탄>을 만들면서 참고한 영화들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크래쉬>는 감독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음을 시인했다(그러나 이 영화만으로는 <티탄>이 나올 수 없었다고 못박았다). 그가 참고한 작품 중 가장 의외의 것은 <1917>이다. 샘 멘데스 감독의 <1917>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적진으로 가는 아군 부대에 서신을 전한 두 병사를 그렸다. 공통점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뒤쿠르노는 <티탄> 중 숲이 불타는 장면에 <1917>의 조명을 참고했다고 한다. <1917>는 우수한 기술력과 영상미를 참고한 것인데, 반면 스토리텔링에선 <헨리 - 연쇄 살인범의 초상>을 참고했다고. 이 영화는 실제 연쇄살인범 헨리 리 루카스(마이클 루커)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뒤쿠르노가 참고한 부분이 바로 이것. "도덕적으로 모호한 주인공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뒤쿠르노는 <티탄>의 알렉시아를 동정심이나 공감의 대상으로 그리길 원치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관객들이 나쁜 짓을 저지른 알렉시아를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선이 중요했던 것. <헨리 - 연쇄 살인범의 초상>은 그에게 일종의 지침서였던 모양이다.
<티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건 아니지만 쥘리아 뒤쿠르노 감독이 연기 경험이 전무한 아가트 루셀에게 연기를 알려주고자 사용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에서 하워드 빌(피터 핀치)의 독백 장면("나는 머리 끝까지 화났다, 더이상은 참을 수 없다!"), <킬링 이브> 빌라넬(조디 코머)의 대사들, 그리고 <트윈 픽스>의 도나 헤이워드(라라 플린 보일)의 독백. 뒤쿠르노는 이런 독백들, 감정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거나 절제하는 캐릭터들의 언어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체득시킨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뒤쿠르노가 참고했다고 밝힌 회화 두 점으로 포스트를 마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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