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조민상)는 ‘초보 장애인’이다. 심각한 교통사고로 수술한 그는 이전과 전혀 다른 세상에서 눈을 뜬다. 다리를 심하게 다쳐 휠체어가 없으면 이동이 어려운 데다, 왼팔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 이건 일시적 부상이 아니라 영구적 장애다. 현실은 가혹하지만, 재기는 어떻게든 적응하고 새 삶을 꾸려나가려는 의지의 청년이다. 새로 취직해서 돈도 벌고 싶고, 여태껏 고생한 누나의 짐도 덜어주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복지식당>은 “하루아침에 장애를 얻게 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물음에 지극히 현실적으로 답한다. 우선 장애등급 판정을 받는다. 중증에 해당하는 1~3급 판정을 받으면 활동보조서비스, 콜택시, 은행 대출 등 다양한 장애인 지원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런데 “딱 봐도 1급”인 재기는 ‘한 발짝이라도 걸을 수 있는가?’, ‘팔을 들어 올릴 수 있는가?’ 등의 모호한 기준과 담당자의 무신경으로 인해 5급 장애인이 된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꿰졌다. 여기서부터 재기의 끝없는 싸움이 시작된다.

<복지식당>은 후천적 장애인 재기의 자립기다. 그렇다고 수난과 극복의 서사를 뼈대로 삼는 휴먼드라마라는 뜻은 아니다. 장애등급에 관해 설명하거나 각종 지원제도의 면면을 보여주는 대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영화의 초점은 개인이 아닌 사회에 맞춰져 있다. <복지식당>에 따르면 우리의 국가는 장애인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만큼 명민하지 못하면서, 적절한 제도를 마련하고 제공하는 데는 소극적이다. 그 때문에 재기는 어디서나 거절당한다. 그는 전동휠체어 지급 대상자가 아니고, 중증장애인으로 우선 고용되지도 못하며, 심지어 지팡이 하나 무료로 바꿀 수 없다. 어떤 건 5급이라 안 되고, 또 어떤 건 실제 장애 정도가 중증이라 안 된다. 이러한 거절의 순간들을 영화는 너무 가까이서 담으려 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표정이 적나라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 사태가 개별적 문제로 읽힐 것을 염려해서다. 거절하는 목소리를 되도록 기계적으로 들리게 조율해둔 영화의 진단은 명확하다. 이 시스템은 분명 어딘가 고장 나 있다.

다행히 재기에게 조력자가 나타난다. 지역 장애인 사회에서 힘깨나 쓴다는 병호(임호준)다. 선천적 장애인인 그는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재기에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장애등급을 바꿀 수 있도록 행정소송 준비를 도와주고, 장애 스포츠인 론볼을 소개해주며 선수로 등록할 수 있게 해준다. 인맥이 넓을 뿐 아니라 각종 지원제도의 허점까지 꿰고 있는 병호의 도움으로 재기는 차츰 희망을 엿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야기는 나쁜 쪽으로 흐른다. “너는 운 좋은 줄 알아.”라며 거들먹거리는 병호의 존재는 장애인 사회 역시 다른 집단과 비슷하게 어느 정도의 폐쇄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곳에도 권력과 착취가 있다. 병호는 그 정점에 있는 인물이다. 복지제도의 모순을 문제의 커다란 원인으로 지목하는 <복지식당>에서 병호는 단연 눈에 띄는 악역이지만, 그는 돌출된 개인이라기보다 하나의 톱니바퀴에 가까워 보인다. 제도가 알맞게 기능하지 않고 약자의 목소리가 쉽게 묵살되는 사회에서, 병호 같은 인물이 탄생하는 건 필연적이다.

<복지식당>은 공동연출을 맡은 정재익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출발점으로 삼은 영화다. 재기처럼 후천적 장애인인 그는 “등급을 잘못 받은” 사례를 통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조명하고 싶었다. 정재익 감독이 참여한 장애인 영화제작 워크숍의 강사였던 서태수 감독은 이 프로젝트가 현실적으로 시작될 수 있게 불씨를 댕겼다. <복지식당>은 두 감독의 터전인 제주에서 제작됐고, 배우부터 스태프까지 영화 만들기에 필요한 역할을 전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맡았다. 덕분에 영화는 경험에서 비롯된 사실적이고 생생한 대사는 물론이고, 장애인의 일상을 보여주는 세밀한 디테일로 빼곡하다. 시종 “이 이야기를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해!”라는 신념으로 내달리는 직선의 드라마가 그저 한두 줄의 앙상한 줄거리로만 요약되지 않는 데에는 그러한 세부의 힘이 크다. 화면 구석구석에 아무렇지 않게 걸리는 휠체어들은 영화의 주제를 수식하는 소품이 아니라 실제 삶의 일부다. <복지식당>은 당신 옆에 장애인이 있고, 그들에게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가 있다는 걸 굳이 설득하지 않는다. 당연한 전제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종종 세상의 변화를 뒤늦게 반영한다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둘러싼 최근 기사를 읽고 있자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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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