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장르로 분류하진 않더라도, ‘버디 캅'은 1980년대 이후 할리우드에서 가장 많이 제작된 종류의 영화다. '버디 캅' 영화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두 명의 남자 형사가 연신 티격태격하면서도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한국에서는 안성기와 박중훈 주연 '투캅스', 현빈과 유해진 주연 '공조', 강하늘과 박서준 주연 '청년경찰' 등이 있다.
영화 역사상 버디 캅의 효시는 닉 놀테, 에디 머피 주연의 <48시간>(1982)이다. <48시간>은 강력사건 전담 형사 잭(닉 놀테)과 복역중인 죄수, 레지 해먼드(에디 머피 분)가 협업하여 헤먼드의 가석방 기간, 48시간 동안 탈옥범들을 잡는 이야기다.
이 작품에 앞서 제임스 칸 주연의 <프리비 앤 더 빈> (리챠드 러쉬)이라는 버디 캅 무비가 1974년에 개봉하긴 했다. 그러나 최초의 의미만 있을 뿐 <48시간> 만큼 대대적인 성공과 시리즈 제작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계보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적절치 않은 이유다.
주로 가족용, 코미디 액션 영화로 기획된 버디 캅 무비에 또 하나의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할리우드 역사에서 거의 처음으로 인종 간 – 주로 흑과 백 – 우정을 다루었다는 사실, 그리고 이것이 이 영화들을 통해 장르적 관습으로 안착했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이전 할리우드의 주류 영화에서 흑인과 백인이 공동주연으로, (비교적) 동등한 위치에서 활약하는 영화들을 찾아 보기 힘들었다는 것을 감안 할 때 <48시간>은 사회, 문화적인 의미가 있는 전환기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순 제작비의 6배 (78.9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48시간>의 흥행 이후로 다양한 흑백 혹은 인종간 버디 무비들이 기획되고 만들어졌다. <리쎌 웨폰>시리즈, <맨 인 블랙> 시리즈, <러시 아워> 시리즈 등은 모두 <48시간> 속 캐릭터 설정에 빚을 지고 있는 후손들이다. 이 영화들은 서로 다른 인종의 두 주인공들을 통해 일상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소 과정을 재현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들 속에서도 흑백간 인물의 재현이 절대적으로 동등한 양으로 이루어졌던 적은 없었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동등한 양’이란 출연 포션의 의미와 영화 속에서 캐릭터가 가지는 권력관계 둘 다 적용된다. 버디 무비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리쎌 웨폰>의 경우, 멜 깁슨의 로저와 데니 글로버의 마틴은 엄연한 공동 주연임에도 스토리의 구성 및 전개 그리고 클라이맥스는 로저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주인공 캐릭터들 중 아시안이 포함된다면 영화 속 권력관계는 더더욱 불균형 해진다.
따라서 <러시 아워>의 경우, 영화의 중추는 크리스 터커가 맡은 카터 요원이다. 유색인종의 재현에 있어 혁명을 이루어 냈던 버디 캅 무비가 동시에 인종 차별을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패턴을 고착화했다는 사실은 역설이다. 그럼에도 현재까지 수 많은 인종간 버디 무비들이 제작되었고, 장르의 전통이 40년이 넘은 만큼 주목할 만한 진보가 일어나고 있다.
몇 주 전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맨 프롬 토론토> (패트릭 휴즈) 역시 인종간 버디 무비이자 이들이 서로의 (엄청난) 다른 점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는 유능한 킬러, ‘맨 프롬 토론토 – 토론토 남자 – (우디 해럴슨)’와 유튜버이자 헬스 클럽의 세일즈 맨, ‘테디 (케빈 하트)’의 약속 장소가 뒤바뀌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다.
테디는 아내와의 결혼기념일을 보내기 위해 외딴 곳의 오두막을 예약하는데 그 옆집으로 잘못 찾아가고 만다. 옆 집에서는 범죄자들이 인질과 함께 최고의 고문기술자, ‘토론토 남자’를 기다리던 참이었는데 이들은 테디를 기술자로 착각한다. 테디는 순간의 위트로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하지만 사건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그와 토론토 남자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팀으로 분투하게 된다.
<맨 프롬 토론토>는 스탠딩 코미디언 출신의 케빈 하트와 그의 슬랩스틱 코미디를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는 테디가 자신의 헬스 트레이닝 홍보영상을 찍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하트의 스탠딩 코미디를 방청하는 것 같은 오프닝 10분은 이 영화의 백미로 꼽고 싶을 정도로 코믹하고 강렬하다.
오프닝 이후에도 스토리의 전개는 철저히 테디의 시점에서 이루어진다. 영화의 작은 에피소드들 역시 테디의 주변인물(와이프와 그녀의 친구 등)이 주축이 된다. 흑인배우와 백인배우로 구성된 버디 무비에서 흑인캐릭터가 서사의 중심이 되고 그의 주변인물이 서브 플롯 (sub plot)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은 앞서 언급한 <리쏄 웨폰>과 같은 과거 흑백 버디 무비들과 비교했을 때 눈에 띄는 진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동시에 케빈 하트라는 걸출한 배우의 활약이 만들어낸 결과다. 40대 초반인 케빈 하트는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데뷔해 TV 시리즈에서 주로 활동하다가 <무서운 이야기 3> (2003), <미트 페어런츠 2> (2004) 와 같은 코미디 영화로 얼굴을 알렸다.
158센티의 작은 체구에도 하트는 유독 거구의 백인 배우와 콤보를 이루는 버디 무비에 많이 출연했는데, 그 중 대표작은 <센트럴 인텔리전스> (로슨 마샬 터버, 2016)와 <겟 하드> (에단 코헨, 2015) 다. 전자에서 하트는 드웨인 존슨이 연기하는 로비와 함께 CIA의 음모를 밝히는 소시민, 캘빈으로, 후자에서는 윌 페럴의 제임스 역할을 도와 그의 누명을 벗겨주는 다넬로 출연한다.
케빈 하트가 맡아 온 역할의 공통점은 (<멘 프롬 토론토>를 포함하여) 인종간 버디 무비에서 흑인 배우가 주로 담당하던 전과자, 경찰, 갱스터 등 ‘육체 중심적’ 캐릭터가 아닌 ‘지능 중심적’ 캐릭터라는 사실이다. <센트럴 인텔리전스>의 회계사, <겟 하드>의 세차장 사장, <맨 프롬 토론토>의 유튜버/세일즈 맨은 모두 버디 무비 뿐만 아니라 주류 할리우드 영화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왔던 흑인 캐릭터의 고정관념을 깨는 캐릭터들이다.
<맨 프롬 토론토>는 그런 의미에서 할리우드의 또 다른 전환기를 환기하는 영화다. 이는 마치 시드니 포이티에가 흑인 배우로는 거의 처음으로 <초대받지 않은 손님> (스탠리 크레이머, 1967)에서 백인 여성과 로맨스를 이루는 역할로 출연했던 것, 모건 프리먼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부르스 베레스포드, 1989)에서 백인 공동주연 보다 더 눈에 띄는 역할로 영화를 리드했던 것, 그리고 에디 머피가 흑백 버디 무비, <48시간>으로 성공함으로써 첫 (백인 할리우드 제작진에 의한) 흑인 주연 시리즈물, <베벌리힐즈 캅> (마틴 브레스트, 1984)을 탄생시킨 것 만큼이나 기념비적인 사건인 것이다.
다소 예측가능한 플롯의 영화지만, <맨 프롬 토론토>는 재미있다. 러닝 타임 내내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영화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가가 케케묵은 할리우드의 인종 재현 전통을 케빈 하트라는 출중한 배우로 전복하는 순간은 꼭 목도해야 할 사건이 아니겠는가.
김효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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