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5일은 세계가 사랑하는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의 생일입니다. 1941년생이니 올해로 76세. 디즈니, 픽사, 드림웍스, 일루미네이션 등 수많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들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는 가운데서도, 미야자키 하야오 혹은 스튜디오 지브리의 존재는 본연의 가치를 더욱 밝게 빛내고 있습니다. 꺼지지 않는 희망을 지구에 퍼트려준 미야자키의 생일을 축하하며, 간단히 지금까지 그의 행적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PRE-GHIBLI
군수공장을 운영하는 집안에서 자란 미야자키 하야오는 어려서부터 독서와 그림을 즐겼고, 고등학생 시절 도에이 동화가 제작한 <백사전>(1958)을 보고 애니메이션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학부에서는 정치경제학과에 진학했고, 결국 대학 졸업 후에는 도에이 동화에 입사해 애니메이터의 길을 걷게 됩니다. 1964년 도에이의 첫 TV 시리즈 <늑대소년 켄> 애니메이터로 참여하면서, 오늘날까지 파트너로 남을 다카하타 이사오를 만났죠. 회사 생활을 하면서 애니메이터란 직업에 대해 회의를 느껴 만화가로의 선회도 고려했지만, 구 소련의 애니메이션 <눈의 여왕>을 보고 다시 애니메이션의 뜻을 다졌다고 합니다.
이후 미야자키는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1968), <장화 신은 고양이>(1969) 등 수많은 작품들을 작업하며 커리어를 다졌죠. 도에이와의 갈등으로 다카하타 이사오와 회사를 나온 그는 A프로덕션으로 이적해 시청률이 신통치 않던 <루팡 3세> 시리즈에 투입돼 여러 감독들과 공동연출을 맡습니다. 그리고 다시 닛폰 애니메이션으로 자리를 옮겨 다카하타가 감독한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엄마 찾아 삼만리> 등에 참여해 두각을 드러낸 결과, 감독으로 만든 첫 번째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1978)을 내놓게 됩니다. 자연과 인간문명의 관계가 그려졌다는 점에서 이미 데뷔작부터 자신의 테마를 정해놓은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죠. 그리고 이듬해 도쿄무비신사에서 제작한 연출작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1979)을 내놓습니다. 기존 '루팡 3세' 시리즈와는 결이 달라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지만, 미야자키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긴 명작으로 재평가받는 작품입니다.
#GHIBLI
잡지 아니메쥬에 연재 중이던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출판사 도쿠마 쇼텐의 지원으로 1984년 극장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이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미야자키는 도쿠마 쇼텐의 투자를 받아 다카하타와 함께 1985년 6월 15일 '스튜디오 지브리'를 설립합니다. 첫 번째 작품은 이듬해 만든 <천공의 성 라퓨타>. 하지만 이 두 작품이 성공했다고 해서, 우리가 현재 아는 것처럼 지브리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향력이 거대했던 건 아닙니다. 지브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이웃집 토토로>(1988) 기획 역시 처음엔 도쿠마 쇼텐에 대차게 거절당했죠. 또 다른 출판사 신쵸사의 지원을 받은 다카하타의 <반딧불의 묘>(1988)까지, 지브리의 두 주역은 혼신을 다해 작품을 완성시키지만 두 작품 역시 흥행 면에서 밋밋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설립 2년 만에 도산 위기에 처한 지브리. 하지만 1989년 <마녀 배달부 키키>의 성공으로 회생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반딧불의 묘>를 다 합친 수치보다 더 높은 관객을 끌어모았습니다. 이후부터는 우리가 익히 아는 지브리의 탄탄대로가 펼쳐집니다. 1992년 미야자키 연출의 <붉은 돼지>는 일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고, 이후 다카하타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1994)도 디즈니 <라이온 킹>(1994)을 제치고 25억엔 이상의 수익을 거두었습니다.
미야자키의 신작에 대한 기대치는 점점 불어났습니다. 그리고 5년 만에 발표한 대작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를 발표합니다. 전작들의 낭만적인 무드를 상당 부분 덜어낸 잔혹하고 어두운 이야기였지만, 190억엔, 총 1450만명을 동원해 일본 박스오피스를 통틀어 최다 관객을 기록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 기록은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발표한) 신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뛰어넘습니다. 일본 내에서만 흥행수입 300억엔, 관객수 2350만명을 기록하며 그때까지 존재했던 일본 극장개봉 영화 순위를 모두 갈아치워버렸습니다. <타이타닉>(1997), <겨울왕국>(2013),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 등 일본에서 어마어마한 흥행을 기록했다고 알려진 외화들 역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기록 아래에 놓여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1055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고, 평론가들은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며 디즈니의 매너리즘을 비판하기도 했죠.
#후계자의_부재
미야자키 하야오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가 은퇴 번복입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이런저런 자리에서 은퇴를 암시해왔고, 1997년 <모노노케 히메>를 발표하고 은퇴를 공식화했으나 4년 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여러 차례 은퇴를 번복했죠. 미야자키의 진짜 의중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결정들의 배경에는 결국 그의 뒤를 따를 만한 후계자가 지브리에 없다는 사실 정도가 가장 신빙성 있게 들리는 지적입니다. <모노노키 히메>를 내놓고 공식적으로 첫 은퇴를 발표한 것이 미야자키가 <귀를 기울이면>의 콘도 요시후미를 후계자로 삼았던 시기와 닿아 있고, 콘도가 안타깝게 요절하면서 그가 다시 현역으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고 하죠. 다카하타의 <이웃집 야마다군>(1999)이 흥행에 실패했다는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테고요.
이후로도 그의 은퇴 계획은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현재 미야자키의 뒤를 이은 감독으로 손꼽히는 호소다 마모루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2004)을 만들던 중에 도쿠마 쇼텐의 입김으로 엎어지고, 그걸 미야자키가 끌어 안아야 했습니다. 빠듯한 일정에 만들어진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걸작 <모노노케 히메>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만들어버린 미야자키의 흔적에 비하면 실망스럽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모노노케 히메>를 조금 웃도는 흥행을 기록했습니다.
지브리의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의 기획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게드전기>(2006)를 만들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를 보던 도중 시사실을 나왔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1973년생의 신인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만든 작품 <마루 밑 아리에티>(2010)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장에서 <게드전기>는 실패, <마루 밑 아리에티>는 성공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뜻이 옳았던 셈이지요. 요네바야시는 이후 <추억의 마니>(2015)를 내놓고, 올해 <메아리와 마녀의 꽃>을 개봉시킬 예정입니다. 나름 지브리의 적자가 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만, 미야자키는 신작 <애벌레 보로>를 제작 중에 있다는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를 이을 만한 지브리의 후계자가 없다는 점이 안타까운 한편, 앞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애벌레 보로>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가 남긴 말들을 돌이켜보면서 그의 새 영화를 조용히 기다려볼 수밖에요.
"자신들이 태어난 이 세계를
태어나서 좋다고 따뜻하게 맞아주지 않고
너희들은 위험한 시대에 태어났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세계는 위험한 곳이라 생각하며 태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의 아이들 안에 가장 크게 심어져 있는 건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더더욱, 그래도 좋은 곳이 있을 거라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이나 관점을 음미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게
어른들이 가장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세상은 속이 깊고 다양성이 많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가 사는 세계엔 무수한 가능성이 있고
그 속에 네가 있고,
이 세계는 풍족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습니다.
너 자신도 그 세계를 갖고 있다고,
괜찮아 너는 잘해나갈 수 있어
라고 진심으로 전하고 싶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반환점 1997-2008> 중에서
"애니메이션이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정말 그랬던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다 그저 자기 말에 흥겨워 하는 말이죠.
그럼 왜 계속 저는 애니메이션을 하느냐고요?
... 아이들을 위해서입니다.
그 아이들도 자라면 다 나처럼
별볼일 없는 어른이 될 것입니다.
어렸을 때는 뭐든지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어른이 되면 다 별볼일 없어지는 것입니다.
다만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아, 그래도 내가 살아오면서
근사한 것이 있었던 시절이 있긴 있었어,
라는 생각을 떠올릴수 있는 것 중
하나로 남고 싶기 때문입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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