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4>

[셜록] 시즌 4가 끝났다. 영국과 단 하루 차이를 두고 방영돼 2년 동안 목을 빼고 기다리던 팬들의 갈증을 빠르게 해소시켜주었다. 그것도 더빙판과 자막판 두 번에 걸쳐 방영할 정도로 지상파는 이 인기 많은 영드에 신경을 기울였다. 과거 인기리에 방영되던 외화 시리즈들에 비한다면 다소 초라한 모양새이긴 하지만, 무수히 난립하는 케이블과 인터넷 불법 다운로드 공세 속에 늦은 시간에 방영된다는 제약에도 불구하고 선방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마틴 프리먼의 바쁜 스케줄 탓에 5시즌이 언제 나올지 기약 없지만, 그럼에도 지상파 외화 시리즈의 마지막 보루로 남아 좋은 선례를 이어가고 있다.

<닥터 후>

바야흐로 (영미권 드라마를 모두 포함하는 의미에서) 미드의 세상이다. 지상파에선 앞서 말한 [셜록]이나 [닥터 후]를 제외하곤 거의 철수 분위기지만, 눈만 돌려보면 케이블과 위성TV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엄청난 불법 다운로드 횟수를 자랑하는 게, 바로 수많은 종류의 다양한 미드들이다. 과거에도 이전에도 엄연히 존재해왔던 외화 시리즈들이긴 하지만, 높은 퀄리티의 CG, 유료채널의 활성화 그리고 넷망의 결합으로 인한 새로운 플랫폼의 대두로 미드는 할리우드 못지않은 강력한 영향력과 폭넓은 지배력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미드는 과거 외화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웨스트월드> 속 안소니홉킨스
<왕좌의 게임> 속 키트 해링턴

시간과 예산의 압박이 높은 영화보다 더 빠르고 경제적으로 제작될 수 있단 점에서, 또 긴 호흡의 스토리와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고 결합할 수 있단 점에서 TV시리즈는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을 어필한다. 이전과 다르게 잘나가는 스타급 영화배우들의 TV 외출도 잦아진 편이고, 흥행 영화감독들 역시 활발하게 파일럿 연출을 비롯해, TV시리즈 제작에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과거 TV시리즈들도 심심치 않게 영화판으로 리메이크돼 히트를 기록하는 등 미디어들이 서로의 영역을 넘어 교류하고 확대하며 다양한 시너지 효과와 놀라운 파급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후죽순 쏟아져 나오는 미드들 속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있으니, 바로 음악이다. 많은 작곡가들이 미드를 발판으로 좋은 영화음악가로 성장했고, 또 전설이 된 주제곡들을 탄생시켰다. 그 테마들은 각기 시대를 상징하고 이야기를 대표했으며 동시에 영원불멸의 아이콘이 되었다. 음악이 곧 드라마고, 또 하나의 캐릭터인 셈이다. 여기 앞으로 그런 전설에 올라설 여러 편의 최신 미드사운드트랙들을 소개하려한다. 분량상 한 번에 다 꺼내두기엔 무리일 듯 싶어, 몇 번에 걸쳐 적어본다.


웨스트월드
By 라민 자와디

마이클 크라이튼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영화 [이색지대]는 여러모로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었다.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무언가가 반란을 일으키는 테마공원이란 소재는 20년 후에 [쥬라기 공원]으로 다시 재창작돼 충격을 선사했고, 그 후 다시 20년이 지나 드라마로 새롭게 각색되어 선보인다.

떡밥의 귀재 J.J. 에이브럼스와 크리스토퍼 놀란의 동생인 조나선 놀란이 의기투합해 만든 이 작품은 10부작이란 긴 흐름을 통해 원전보다 더 성찰적이고 철학적인 화두를 던지며 명품 미드 HBO의 진가를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안소니 홉킨즈나 애드 해리스, 제임스 마스던, 제프리 라이트, 탠디 뉴턴, 에반 레이첼 우드 등과 같은 초호화 캐스팅을 자랑하는 건 물론, 현재 [왕좌의 게임]으로 주가 폭등한 영화음악가 라민 자와디를 끌어들여 놀라운 음악도 완성해냈다.

라민 자와디는 이전에 쌍제이 에이브럼스와 조나선 놀란의 미드 [퍼슨 오브 인터레스트]로 호흡을 맞춘 바 있는데, 그런 만큼 이번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물을 들려준다. 서부 테마파크라는 부분에 착안해 피아노 위주의 랙타임이 간간이 흐르며, 미래 로봇 사회를 암시하는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미묘한 심리와 긴장을 담아내는 섬세한 오케스트레이션은 물론, 롤링 스톤즈가 부른 ‘Paint it black'을 점층적인 오케스트라로 박력 있게 편곡하거나, 비타민 스트링 쿼텟의 곡을 사용하는 등 기존의 그의 스타일과는 또 다른 면모들을 드러내고 있어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충격적인 비주얼과 무거운 주제의식이 결합된, 쉽지 않은 영상에 힘과 스릴을 부여하는 건 그의 유려하고도 다채로운 스타일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페니 드레드풀
by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

19세기 싸구려 출판물을 의미하기도 하는 페니 드레드풀은 작년 세 번째 시즌을 끝으로 안타깝게 종영된 쇼타임의 드라마다. 제목이 의미하는 대로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그리고 프랑켄슈타인과 도리언 그레이 등 기존의 고딕 장르소설들 속에 등장하던 캐릭터들을 하나 둘 가져와 독특한 시너지를 일으켰는데, 뛰어난 완성도에도 컬트적 취향과 높은 수위로 인해 캐릭터들과 달리 현실에선 긴 생명력을 얻지 못했다.

호러 고전들에 대한 충실한 예우와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고어와 긴장, 섹스어필을 충실히 갖춘 이 드라마를 전체적으로 조율한 건 샘 멘더스 감독과 각본가 존 로건의 솜씨다. 에바 그린과 조쉬 하트넷, 티모시 달톤과 빌리 파이퍼 등 좋은 배우들이 쟁쟁하게 배치되었고, 음악을 담당한 아벨 코르제니오프스키 역시 환상적인 솜씨를 들려준다.

이미 [싱글맨][], [이스케이프 프롬 투모로우] 등에서 인상적인 음악을 들려주며 할리우드가 주목할 만한 영화음악가로 지목된 폴란드 출신의 아벨 코르제오프스키가 처음 담당한 TV 시리즈 음악으로, 고딕적이고 고전적인 양식미가 가득한 품격 있는 사운드로 시청자를 압도한다. 웅장한 코러스를 대동한 풀 관현악 사운드의 위용은 이 작품에서 가히 적나라할 정도로 드러나며,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오싹하면서도 애잔한 멜로드라마를 품어낸 그의 사운드는 그냥 평범한 미드 음악으로 듣고 넘기기엔 지나칠 정도로 완성도 있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제껏 미드에서 들을 수 없던 환상적인 사운드를 너무나 여유롭고 정석적으로 구사한 그의 솜씨에 감탄 또 감탄하게 될, 그야말로 명품 미드 사운드트랙. 


더 맨 인 더 하이 캐슬
By 헨리 잭맨 & 도미닉 루이스

기발한 상상력과 풍부한 아이디어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영상화되는 작가 중 하나인 필립 K. 딕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리들리 스콧의 지휘 아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처음으로 자체 제작해 더 주목받았던 시리즈다. 독일과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해 미국이 점령지가 되는 가상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이 작품은 독일과 일본의 알력 다툼 사이에 미국의 독립을 꿈꾸는 저항군의 이야기가 버무려지며 독특한 긴장과 재미를 안겨준다.

알렉사 다바로스와 루퍼트 에반스, 루크 크레인탱크 등 비교적 신예들을 기용해 전면에 내세웠지만 제 몫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루퍼스 스웰과 캐리 히로유키 타가와 등 익숙한 얼굴들도 모습을 비추며 든든히 뒷받침해준다.

음악을 매만진 건 헨리 잭맨과 도미닉 루이스. 앞서 소개한 라민 자와디처럼 그들도 한스 짐머가 꾸린 영화음악집단인 리모트 콘트롤소속의 작곡가들로, 2000년대 초반부터 짐머 휘하의 여러 작곡가들 작업에 투입되며 많은 경험을 쌓아왔다. 시즌 1에만 참여한 헨리 잭맨은 최근 마블과 디즈니 작품들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시즌 2부터 오롯이 혼자 음악을 꾸리게 된 도미닉 루이스도 이 작품을 필두로 본격적인 영화음악가 홀로서기에 나섰다. 오프닝 크레딧에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에델바이스는 자넷 올슨의 서늘한 목소리로 편곡돼 드라마의 분위기를 짐작케 해주며, 뮤지컬 [카바레]에 나온 독일 민요풍의 투모로우 빌롱 투 미도 군국주의적 군가 풍으로 편곡돼 강한 임팩트를 남긴다. 나라 잃은 애잔함과 짙은 어둠이 드리워진 사운드가 분위기를 주도하며 서늘한 심상을 건든다.


더 크라운
By 한스 짐머 &
루퍼트 글렉슨 윌리엄스

조지 6세의 서거 이후 여왕의 자리에 오른 엘리자베스 2세의 집권 초기 모습을 다룬 작품으로, 여왕의 인간적인 고뇌와 왕가의 뒷얘기 그리고 전후 영국 현대 정치외교사에 대해 디테일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미 스테판 프라이스 감독의 [더 퀸]의 각본을 맡아 여왕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그려낸 바 있는 피터 모건이 기획하고,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제작한 이 미드는 이번 골든 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과 작품상을 거머쥐며 그 작품성과 완성도를 인정받은 바 있다. 클레이 포이의 눈부신 호연 외에도 처칠로 등장하는 존 리스고의 연기도 백미이고, 맷 스미스와 제레미 노담, 바네사 커비 등의 배역도 만족스럽다. 여기에 방점을 찍는 건 메인 테마를 직접 작곡한 마에스트로 한스 짐머라는 존재감이다.

비록 짐머가 메인 테마 한곡에만 참여했지만 전체적으로 짐머의 색채가 강하게 풍겨오며, 최근 그의 스코어를 듣듯 미니멀한 사운드가 주를 이룬다. 주로 애니메이션과 코미디에 강점을 보여 온 루퍼스 글렉슨 윌리엄스(어디선가 이름을 들어본 것 같다면, 맞다. 역시 영화음악가인 해리 글렉슨 윌리엄스의 동생이다!)는 그간의 장기에서 벗어나 왕가에 어울릴 법한 장중한 스케일과 디테일하고도 감성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으며, 주된 선율이 영상을 이끌기 보단 점층적으로 쌓아올린 두터운 소리들의 변화와 오스티나토로 드라마의 고조를 이끌어낸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드라마답게 과장되지 않은 소리들과 섬세한 터치가 인상적이고, 피아노와 스트링의 활용은 리모트 콘트롤만의 사운드라 할 만큼 전형적이지만 그만큼 매력 있게 다가온다.


더 나이트 오브
By 제프 루소

2008년 영국에서 방영된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리메이크한 작품. [더 나이트 오브]는 억울한 누명에 빠진 채 허우적거리는 피해자에게서 법조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원작에 없던 인종 문제까지 건드리며 더 다층적인 의미와 시의적인 주제를 담아냈다. 시즌제 드라마가 아닌 9부작 미니시리즈에 불과했지만, 작년 한 해 방영됐던 미드들 중에서 단연 첫 손가락에 뽑힐 만큼 높은 완성도와 풍부한 재미를 보장한 작품이었다.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작가 스티브 자일리안과 역시 오스카 각본상 후보에 오른 작가 리차드 프라이스가 같이 기획하고, 타이틀 롤을 맡은 파키스탄계 영국 배우 리즈 아메드와 존 터투로가 각각 인생 연기를 펼쳤다. 여기에 묵직한 중압감을 던져주는 건 제프 루소의 음악이다. 

2인조 록밴드 토닉의 멤버이기도 한 제프 루소는 2009년부터 분야를 넓혀 꾸준히 미드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기 시작하는데, 그를 단연 주목하게 만든 건 영화 [파고]의 드라마 버전 음악을 맡으면서부터다. 에미상 후보에도 오른 이 작품 외에도 그는 [아메리칸 고딕][파워], [CSI: 사이버] 등 최근 다양한 작품에도 이름을 올렸다.

[더 나이트 오브]는 그런 제프 루소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수작으로 서늘한 피아노와 묵직한 현악이 메인으로 나서며 자꾸만 꼬여가는 주인공의 상황을 암울하고 답답하게 그려내는데, 잿빛이라고 할 만큼 꿈도 희망도 없는 절망적인 분위기를 기가 막히게 자아내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 앰비언트 사운드가 결합하며 공허하면서도 씁쓸한 뒷맛을 풍긴다. 드라마만큼이나 짙은 잔향이 오래 남는 스코어다.


셜록
By 데이빗 아놀드 &
마이클 프라이스

7년이란 세월에 걸쳐 이제 간신히 4시즌에 도달하며 BBC의 초특급 간판 드라마가 된 [셜록]. 이번에도 감히 예상할 수 없는 전개와 독특한 패러디를 유감없이 보여주며 유쾌하면서도 기발한 현대판 셜록 홈즈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처음과 달리 너무 확장되고 거대해진 이야기에 초심으로 돌아가란 비판도 제기되지만, 아무래도 시리즈가 거듭되며 만들어낸 특유의 세계관과 시니컬하면서도 자조적인 유머, 현란한 비주얼이 도입돼 설명되어지는 추리 요소 등 그 스타일에 경도된 열성팬들이 더 많은 듯하다. 너무 떠버린 두 주연 배우의 바쁜 스케줄 탓에 다음 시즌이 언제나 방영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게 된 건 이 드라마의 단점이자 약점. 드라마만큼이나 유명해진 음악을 작곡한 건 데이빗 아놀드와 마이클 프라이스의 솜씨다.

1시즌부터 줄곧 협업을 유지한 그들은 해머드 덜시머의 낭창낭창하면서도 위트 있는 테마를 바탕으로 고전적인 색채와 현대적이고 세련된 편곡을 결합시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번에도 그 스타일은 여전하다. 다만 한 장의 앨범에 3개의 에피소드 스코어를 선별해 담아내었던 1-3시즌과 달리, 4시즌에선 각 에피소드별 사운드트랙을 하나씩 배정해 총 3장의 앨범이 한꺼번에 발표되며 상업성과 완성도를 모두 잡으려 하고 있다.

워낙 각 에피소드 당 변곡점이 크고, 반전에 반전이 거듭되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소개되는 터라 그들이 매만진 스코어는 전작에 비해 유기적이고 더 드라마틱하며 어둡고 강렬해졌다. 데이빗 아놀드와 마이클 프라이스의 노련하고 풍부한 경험과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이 집약된 영드 스코어의 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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