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중요한 키워드로 다루는 영화가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을 몇 개 꼽자면 그중 하나는 <엔젤스 셰어:천사를 위한 위스키>(이하 <엔젤스 셰어>)일 것 같다. 당장 제목인 <엔젤스 셰어>도 술과 관련된 단어인데, 천사의 몫이란 뜻으로 원래 위스키 등의 증류주를 나무로 만든 통에서 숙성시킬 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술통 속에서 자연히 증발되어 없어지는 분량을 일컫는 말이다. 얼마나 증발되는지, 숙성 온도와 습도는 어땠는지 등등에 따라 통 속 술의 품질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도 하거니와 증발되는 술이 많을수록 팔 수 있는 술의 양은 줄어들기 때문에 증류소에서는 술에 풍미를 더하면서도 증발되는 술의 양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숙성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다른 제목을 붙일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엔젤스 셰어란 제목을 붙인 이유는 뭐였을까 궁금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알 수 있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영화의 주인공인 로비는 직업도 없고 폭행 가해자로 법원으로부터 사회봉사명령까지 받는다. 그러던 중 그의 여자친구가 아들을 낳으면서 아빠가 된 그는 사회봉사 감독관이 데려간 위스키 시음회에서 처음 몰트 위스키를 접하게 되고 곧 자기 자신이 선천적으로 섬세한 후각과 미각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다른 위스키 시음회에서 오래 숙성된 매우 비싼 위스키의 경매가 열릴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 몰래 숙성 창고에 침입해 서너 병 분량의 위스키를 빼돌리고 그 통에 싼 위스키를 섞어 넣는다. 그리고 빼돌린 위스키를 팔아 재기의 수단으로 삼으면서 영화가 끝난다.
 
주인공을 보면 알겠지만 영화는 두 시간 내내 스코틀랜드의 하류 노동자 계층에 주목한다. 교육 수준도 낮고 가정환경도 좋지 않아 자연히 마약과 폭력에 길들여져가는 그런 사람들, 소위 루저들을 비춰준다.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고유의 문화이고 재산이지만 그런 문화를 향유하는 사람들은 잉글랜드와 미국의 부유층일 뿐 정작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제대로 된 싱글 몰트 위스키를 맛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해도 누구든 어느 정도 루저 정서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 영화의 해피엔딩은 다소 불편하면서도 한편으론 통쾌하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스코틀랜드에는 애정을, 잉글랜드 인과 미국인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에는 냉소의 눈길을 보낸다.
 
술은 근본적으로 농산품이다. 재료가 되는 곡식의 품질도 해마다 다르고, 숙성되는 통의 나무 재질도 조금씩 다르고, 숙성되는 장소의 온도 및 습도 변화도 항상 일정할 수 없다. 따라서 같은 증류소에서 만드는 위스키들도 해마다, 심지어 같은 해에 생산된 위스키라도 숙성되는 통마다 그 맛이 다 다르다.

하지만 상품으로서의 위스키는 어느 정도 일정한 맛과 향을 가져야만 하기 때문에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드는 마스터 블렌더는 다양한 술들의 향을 기준으로 섞는 술의 종류와 분량을 조금씩 바꿔가면서 생산되는 술들의 품질을 항상 일정하게 한다. 싱글 몰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증류소의 술만을 사용한다 뿐이지 그 증류소의 마스터 디스틸러가 숙성년도가 같은, 혹은 다른 다종다양한 술들을 그때그때 조합해가면서 항상 일정한 품질의 술을 생산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농산물을, 그 지역의 특산물을 정작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은 한 번도 맛보지 못하는 현실을 이 영화는 비틀어서 보여준다.
 
증류소에서 증발되는 분량은 천사의 몫이다. 그러나 그 부분을 천사만 가져간다는 건 아쉽다. 이 영화의 감독인 켄 로치는 셰어라는 단어를 통해 좀더 나누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주인공들은 엄밀히 말해 절도범들이고, 잉글랜드인이건 돈만 많고 술맛을 모르는 미국인이건 누구건 간에 사기를 당해 마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심정적인 면에서 영화를 본 사람들은 누구든 주인공들에게 어느 정도는 감정을 이입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그 지역의 특산품을 입에 대보지도 못하고 자란 사람들이 겨우 천사의 몫 정도의 기회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면, Why Not? 못할 건 뭐람.
 
만약 아직도 마음속에 불편함이 조금이나마 남아 있다면 예전 조커의 유명했던 이 대사로 털어냈으면 싶다(게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오버워치 정크랫의 대사로 기억할 수도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하하.)
 
Why so Serious?

P.S. 혹여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에 나왔던 증류소의 위스키를 구해서 맛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굳이 안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화에 등장했던 여러 증류소들의 위스키들은 적어도 내 입맛에는 뭐, 그저 그랬다. 주인공들이 투어를 했던 딘스톤은 특히나. :)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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