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영화감독/비디오 아티스트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의 특별전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23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인디비주얼’에 맞춰 내한해 한국의 관객들을 만났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언론 매체들과 진행한 인터뷰와 특별전 관객들과 함께 한 아티스트 토크 현장에서 나온 그의 코멘트를 정리해 전한다.
Q. 큰 틀에서 감독님의 영화들과 현대미술의 연관점은 무엇인지.
원래 실험영화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시카고에서 실험영화를 하고 있었을 때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을 만든 분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당시 태국에서는 16mm나 실험영화라는 것 자체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시카고에서 작업하는 주변 상황에도 적응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반(反)내러티브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 자신을 거기에 녹여들게 됐고, 제 삶을 표현하게 됐습니다.
Q. 영화 미장센 속 회화적인 구상이나 색채감을 사전에 정하고 콘티뉴이티를 구성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색감 같은 건 미리 구상하지 않고, 대부분 로케이션에 의해서 정해집니다. 그 장소에 관한 모든 것을 활용하게 되는데 그곳의 색과 온도, 그때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 또한 어떤 요소로 작용합니다. 가끔 흑백을 채택하기도 합니다. 햇빛에 매력을 느끼는데 그때그때 변하는 빛이나 그림자, 그에 반응하는 제 감정 같은 것들 역시 중요합니다.
Q. 영화가 미술관에서 상영/전시되는 일이 많고, 영화관에서 콘서트나 오페라를 보는 경우가 빈번해졌습니다. 영화와 비디오 아트를 넘나드는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지금 세대들에게는 영화와 미술관의 형태가 통합된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했을 때는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고, 영화에 대한 개념이나 정의도 좁았습니다. 디지털 작업을 처음 했을 때도 다들 영화와 영화만 연관 지었고, 그래서 필름으로 촬영한 영화의 색채감 같은 것만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세대는 모든 사람들이 다 크리에이터이기 때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는 이유가 예전과는 달라졌습니다. 단지 무언가를 보고 수동적으로 흡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경험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크리에이터 입장으로 이런 곳에 가게 되면 단순히 테크니컬한 것만 보는 것뿐만 아니라 좀 더 실천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직접 휴대폰으로 촬영하면서 영상을 보편적인 언어로 생각하게 되고 그렇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우리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 과연 영화란 무엇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Q. 작품에서 공간이 주는 의미가 매우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정글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가 자란 곳은 정글까진 아니더라도 주변에 항상 자연이 있는 아주 작은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도시보다 자연이 훨씬 더 가깝게 느껴집니다. 정글에 가게 되면 긴장과 경계심을 풀게 돼서 가능하면 정글에서 촬영을 많이 하려 하고, 제 스태프들 또한 편하게 촬영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초록빛의 색감과 햇빛이 마치 아이들처럼 제약이나 조건이 없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원초적인 공간이기도 해서 우리의 행동에 대해서 뭐가 어떻다 판단하는 법이 없습니다. 성적인 취향이나 행위,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 종교나 신념에서도 자유로운 공간입니다.
Q. 화자나 나레이션이 중요하고, 작품을 보면 구전동화와 같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나레이션을 제 자신이나 저와 가까운 친구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주로 아는 사람들과 많이 일을 하니까 어떤 이야기를 전하기보다 제 인생에 있어서 어떤 특정한 시기를 살짝 보여주는 것과 같은 나레이션을 씁니다. 10년 전, 20년 전에 만든 작품들을 보면 당시 제 모습과 지금의 저는 현저히 다릅니다. 그래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일기를 쓰는 것이나 타임스탬프를 찍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Q. 감독님 영화를 약간 지루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보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영화를 만들어보려는 계획이 있을까요?
관객을 의식해본 적이 없습니다. 오만하게 들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영화를 만들 때는 누군가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실생활에서야 다른 이들에게 맞춰드릴 수 있겠지만 영화에서만큼은 누군가를 만족시키려고 하거나,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작품과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함께 작업하는 팀이나 편집자 같은 사람들과는 조율할 수는 있겠지만. 영화의 속도감 같은 경우도 해당 작품을 촬영할 당시 제가 감각했던 속도감에 맞춘 것입니다. 지난달에 뉴욕에서 제 영화를 상영할 때 보다가 “굉장히 빠른데 이걸 만든 사람은 누구지?” 생각했습니다. 창작할 땐 직감에 이끌려서 만들지, 누군가에 맞춰야 한다든가, 이거 지루하지 않을까? 같은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Q. 영화를 보면 인물을 중심에 놓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이유가 궁금합니다.
배우들이 장면에 들어오기도 하고 나가기도 하고, 그들이 중심인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가 줄 수 있는 개방성(openness)을 반영하는 것이고, 주인공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환경이나 근처에 있는 동물, 프레임 바깥에 있는 새소리에도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해줍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도 그런 것이, 공원에 앉아 있거나 방 안에 앉아 있어도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고가 이쪽으로 가기도 하고 또 다른 방향으로 가기도 합니다. 친구와 함께 같은 공원에 앉아 있어도 서로 생각하고 보고 느끼는 게 다르듯이. ‘mind framing’이라는 표현을 써서 얘기하고 싶습니다.
씨네플레이_ 이번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작품들 가운데 감독님이 직접 얼굴을 비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배우 크레딧에 감독님 이름이 올라 있기도 합니다.
제가 등장하는 작품이 많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카메라가 제 입장에서는 세상으로부터 저를 막아주는 방패와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 눈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또한 무언가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 해 동안 거의 같은 사람들과 작업을 계속해 오면서 느낀 건, 그동안 계속 만들어온 이 다리가 더 잘 다져지면서 방패는 갈수록 더 투명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영화를 만들고 있다, 라고 말은 하지만 실은 인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카메라와 영화라는 것이 저를 말 그대로 포착할 수 있다, 라는 생각이 조금 두려워서 아직까지도 카메라 앞에 서는 게 편하지는 않습니다.
씨네플레이_ <메모리아>는 감독님이 처음 고국인 태국을 떠나 콜롬비아에서 제작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가 공개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는데, 지금 돌아봤을 때 <메모리아>는 감독님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았나요?
한참 전에 할걸 싶었습니다. 태국에서 일하는 것이 편하고 같은 스태프와 배우와 작업하는 게 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는데, 제가 여행하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 걸 깜빡 잊고 있었습니다. <메모리아>는 제가 편하고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서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틸다 스윈튼과 작업하는 건 좋았지만, 그렇다고 틸다가 태국의 제 집에 와 있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 없어서, 저와 틸다 모두가 이방인인 곳에서 만들게 됐습니다. 제 기억에 의존해서 만드는 영화가 아닌, 제가 스펀지가 돼서 타인들의 기억을 흡수하고 동시에 그 당시 저와 틸다의 상태를 동기화 시키는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틸다의 마음엔 슬픔이 가득했고 고독함을 느꼈지만 그걸 즐길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씨네플레이_ 감독님이 사랑하는 두 배우 젠지라 퐁파스와 사크다 카에부아디가 이번 특별전 속 중단편들에도 자주 얼굴을 비춥니다. 다음에 만들 장편영화에서도 다시 그들과 작업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두 분 같은 경우 제 가족과도 같기 때문에 저에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갖고 있습니다. 제 인생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고, 그 결과 제 영화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인생을 살아오면서 보여준 태도가 저에게는 부족한 점들이었는데, 살아오면서 겪은 온갖 시련들을 주저 않고 저와 공유해줬습니다. 사크다는 집 없는 상태로 거리에 살면서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을 걸 찾는 생활도 했고, 젠지라는 학대 당하는 관계들을 연달아 맺게 되기도 했습니다. 촬영하거나 함께 생활하면서 인생을 즐긴다는 게 어떤 건지, 시련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인생은 굉장히 복잡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 분명하게 갈리는 게 아니라, 그저 시련이 있고 시련을 겪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메모리아>를 만들면서 틸다 스윈튼과 함께 했던 낯선 환경에서의 작업한 경험 때문에 젠지라와 사크다가 다시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작업하게 됐고,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서 예전처럼 같은 배를 타고 다른 일을 해보는 작품이 될 것 같습니다.
씨네플레이_ 좋아하는 영화를 꼽는 설문에 여러 차례 참여하셨습니다. 리스트마다 작품이 조금씩 다른 가운데 브루스 베일리의 <퀵 빌리>(1971), 허우 샤오시엔의 <희몽인생>(1993), 차이 밍량의 <안녕, 용문객잔>(2003)은 거의 빼놓지 않고 등장합니다. 이 세 작품을 각별히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만약 외딴섬에 고립된다면 그 영화 3편을 들고 가서 영원히 볼 것 같습니다. 사실 한 달 전에도 <용문객잔>과 <희몽인생>을 보고 펑펑 울었습니다. <희몽인생>은 대만의 역사를, <안녕 용문객잔>은 영화를 보는 것과 지금은 죽어가고 있는 영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신선했고, 인물이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휴머니티를 다시 한번 보여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항해해 나가는지, 역사가 어떻게 길을 찾아 나가는지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차이 밍량, 허우 샤오시엔, 브루스 베일리 세 분 모두 인생을 최대한 살아가라고, 삶과 역사에 대해 열정을 가지라고 가르쳐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의 인생 목표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거라고 말하는 차이 밍량 감독은 열정을 갖되 이 영감을 가지고 자꾸 치고 나가려고 하지 말고, 열정을 갖되 비교는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까 방패가 투명해진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와 같은 특징이 그들의 영화에도 나타납니다.
씨네플레이_ 꿈을 꾸는 사람은 초록빛의 자연만큼이나 감독님 영화에서 중요한 피사체일 것입니다. 근래 가장 인상적인 꿈이 어떤 것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꿈 일기가 있습니다. 다 기억을 못 해서 한번 찾아봐야 될 거 같아요. (휴대폰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5월쯤 꿨던 꿈입니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왔습니다. 고향에 있는 집에 누나의 오렌지색 방문을 열었는데, 아버지가 TV를 켠 채 주무시고 계셨어요.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더니 그 소리 때문에 아버지가 깨셨죠. 젊어 보이는 모습이었고, 그 옆에 제가 쪼그리고 앉았고 아버지가 저한테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내용은 기억나질 않습니다. 아버지 이마에 뽀뽀를 하고는 젊어 보이신다는 말을 하고, 꿈속에서도 이걸 꼭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상황을 적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영화 같은 꿈이 루프하는 듯 반복됐는데, 아무래도 잊지 말고 꼭 기억하고 싶어서 자꾸 반복했던 것 같습니다.
Q. 영화에 신화가 많이 차용되고, 꿈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보통 우리는 이걸 허구적인 것이라 일컫기도 하죠. 영화를 만들 때 허구성에 대해서 어떻게 연결 지어서 작업에 임하시는지, 작업하면서 일종의 영례적 경험 같은 걸 믿고 그걸 영화에 담으려고 하시는지.
25년 전 제가 영화를 처음 만들기 시작했을 땐 그 질문이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픽션이란 무엇인가, 픽션이 아닌 것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영화가 리얼리티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는가… 지금 그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프레임이라는 것이 있고 그 자체가 굉장히 주관적이어서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서 보여줄 수는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젠 무엇이 팩트고 무엇이 픽션이냐 하는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방금 전 꿈 이야기의 경우도 픽션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게는 아닌 거죠. 실제로 저한테 일어난 일이고, 말 그대로 리얼한 것이니까요. 그리고 사람마다 현실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영매적인 걸 경험했거나 초자연적인 존재와 교감한 경험은 없지만, 제 자신과 교감한 것은 느꼈습니다. 제 자신이 우리가 지금 눈에 보이는 육체에 묶여 있긴 하지만 사실 우리 의식은 무한하고 워낙 거대하기 때문에 그 엄청난 공간과의 교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Q. <메모리아>의 주인공은 정체불명의 큰 소리를 듣고서 깨어납니다. 보통 다른 영화라면 이 소리가 어떤 사건과 연결된다는 인과관계를 통해서 흘러가는데, <메모리아>는 이해 불가능한 채로 놓은 채 대신 그 소리의 연원이 무엇인지는 해석은 각자에게 넘겨지고, 대신 관객 내면 깊이에 있는 잠들어 있는 걸 깨우는 소리라는 생각이 들어 흥미로웠습니다. 아까 감독님께서 영화가 관객을 entertain 하는 건 만들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체험하기를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걸 우주선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단정 짓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생각했는데, 아마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 소리는 제 머릿속 경험을 비춰서 보여드린 겁니다. 많은 분들이 자다가 갑자기 빵 터지는 소리와 함깨 잠에서 깨는 경우가 있는데 의사들도 그 원인을 모릅니다. 자기 안에서 나는 소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 아는 것이죠. 아주 슬픈 일을 겪었거나 시련을 당했을 때,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듯 “괜찮아질 거야” “금방 나을 거야” 이야기해주지만, 저는 이게 나아지지 않을 거란 걸 압니다. 말하자면 이런 소리가 세상과 떨어져 있던 나를 다시 동기화 시켜줍니다.
Q. 영화가 점점 투명해진다, 자신의 삶과 더 가까워진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게 자연스러운 흐름일 테지만, 오히려 반대로 다시 불투명하게 돌리려는 뜻은 없으신지. 저는 감독님이 예전에 만든 작품이 더 힘이 느껴졌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막 시작할 땐 영화를 마치 종교처럼 맹신하는 마인드를 갖고 있었습니다. 시카고 예술대학을 다닐 때도 실험영화를 공부했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걸 다르게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했습니다. 결과물을 놓고 보면 미학적인 면에 있어선 초기에 만든 영화들이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할 수 있긴 한데, 지금은 제 자신에게 “어떻게 하면 더 투명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이제는 영화를 만들면서 결과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과정 하나하나를 스스로 얼마나 즐겼느냐가 저에게는 더 중요합니다. 만드는 과정이 너무 좋았으나 결과물은 그렇게 훌륭하지 않은 것,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었는데 결과물이 훌륭한 것 중에서 저는 전자를 선택할 겁니다.
"본능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매체가 있고, 연대기 순도 아닙니다. 배우들이 계속 등장하는데 젊었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의 시간대를 점핑 합니다. 음악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그렇게 다이얼로그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모두 동일한 세상이라는 걸 여러분께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2023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인디비주얼> 프로그램 구성에 대해
"근래 10년 동안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꿈을 꾸는데 영화를 볼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꿈은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꿈의 구조는 너무나 환상적입니다. 액트 1,2 같은 식이 아니라 어디서나 펼쳐질 수 있고 아무렇지 않게 장면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내러티브가 안 맞을 때도 있는데, 그야말로 인생과 같습니다. 꿈은 저에게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기보다 꿈을 꿉니다. 영화관에 간다는 건 꿈을 꾸는 것과 같습니다. 같이 꿈을 꾸는 것입니다."
- 영화와 꿈의 연관성
"저는 영화 제작자로서 투명하게 만들고 아이디어와 기억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건 여러분의 몫입니다. 과거의 액션이란 건 모두 연결돼 있습니다. 개인적인 삶을 들여다보고 그걸 복사해서 영화에 붙입니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지만, 그냥 그렇게 합니다. 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프로세스에 집중할 뿐입니다. 제 단편 작업은 결말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로 만드는데, 촬영한 걸 20%만 사용하기도 합니다. 마스터피스가 아니어도 됩니다. 만드는 기쁨, 그 여정이 더 중요합니다."
-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연에 중독돼 있다고 해도 좋습니다. 제가 사는 곳만 하더라도 집보다 나무가 더 중요합니다. 매년 나무를 새로 한 그루씩 심습니다. 어릴 때부터 작지만 나무가 많은 도시, 개방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자연에 있으면 아이가 되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식으로 해야만 해” 같은 규칙에 갇혀 있지 않은 상태. 영화 제작에 대해서도 어떠한 규칙도 없고, 주변 바람과 온기 등 모든 것이 영향을 미칩니다. 자연 속에서는 그렇게 아이처럼 활동적이게 됩니다. 햇빛이나 초록을 바라볼 때 영감을 받고, 그게 시작이란 생각도 듭니다."
-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 자연의 영향
"소리는 저에게 있어서 안식이자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개 이미지에만 집중하게 되는데, 이미지는 고정되지만, 소리는 다양하기에 잘 들어보면 해석할 수 있고 그 원천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보는 게 아니기에 상상할 수 있죠. 프레임 밖의 열린 세상이랄까요. 들을 때는 주인공뿐만 아니라 주변 세상에 대해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특정한 공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환상적인 일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픈 프레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초창기엔 사실적인 상황을 기록할 때 나오는 실제 소리가 중요했습니다. 이제는 컷 앤 페이스트를 시도하고, 아예 소리가 없이 진행하기도 합니다. 이미지와 소리가 매치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소재가 로케이션과 주제와 맞는지 시도해봐야 합니다. 공식은 없습니다. 영화는 현실이나 진실이 아닌, 여러분 자신을 만드는 것입니다."
- 영화 속 사운드에 대한 견해
"기억과 사운드를 다른 데서 이곳으로 붙인다고 생각합니다. 뭔가 할 때는 실험과 연습을 해야 하는데, 어떤 건 이치에 맞으려면 생각을 하지 않고 해야 합니다. <메콩 호텔>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제작하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큰 프로덕션으로 영화를 만드는 건 힘들 때가 많습니다. 저는 영화 만들면서도 늦게 일어나서 얘기만 하고 맛있는 거나 먹고 싶은데, <메콩 호텔>도 메콩강 근처에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출연한 배우들한테 개인적인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어떤 기억들을 전하기도 하고요. 메콩강은 제 아버지의 재가 흩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저의 개인성이 있는 공간이라 영화에 음악이 흐르게 했습니다."
- 중편 <메콩 호텔>에 대하여
"사실 저에게 공간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공간을 좋아하고, 호텔을 좋아합니다. 항상 호텔 침대 사진을 찍습니다. 그 침대에서 꾼 꿈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에메랄드>의 호텔도 이전에 방문했던 곳이었습니다. 그 호텔은 경제가 호황이었을 때 지어졌고 당시엔 이미 망해버린 곳이라 경제 붕괴 후 해골 같은 게 남아 있었습니다. 워낙 외로워 보이는 곳이라 놀라기도 했죠. 제가 뭘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단순히 촬영을 먼저 했고, 배우에게 "첫사랑에 대해서 들려주세요"라고 청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유럽 작가가 100년 전 불교와 로맨스를 그린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다시 태어나고, 결국 별로 환생해 우주에서 소통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우주를 떠다니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 단편 <에메랄드>에 대하여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자랐고, 사카모토 류이치 역시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그분의 음악은 형태로 구분 지을 수 없습니다. 소리는 확장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그분의 음악을 들으면서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10년 전 도쿄에서 진행한 전시 중에 큐레이터를 통해 사카모토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앨범이 나오기 전에 선물을 주셔서 그중에서 두 개의 트랙을 선택해서 이미지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분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점심식사할 때 그 분은 포크를 부딪히는 소리에 매력을 느끼시더군요. 그 모습이 아이 같았습니다."
- 사카모토 류이치와의 인연
"그 영화의 에너지를 생각해보세요. 저에겐 그 영화가 제작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예술인 것 같습니다. 영화가 느려야 하는 원칙은 없습니다. 기술적인 건 물론이고, 어떤 언어를 밀어붙이면서 그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 작년 「사이트 앤 사운드」 최고의 영화 설문에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2015)를 꼽은 이유
"사실 태국의 학교에서는 신화나 전설은 많이 안 가르치고, 텔레비전 만화책 라디오드라마를 통해 자라면서 알게 됩니다. 태국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 신화적인 동물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여러 신을 모십니다. 신은 아니지만, 신화적인 존재 중에서 좋아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시바신입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이마에서 광선을 쓰고 나무와 도시를 부수고, 멈춰달라고 얘기하지만 분노로 인해 도시 전체를 먹고 자기의 몸까지 먹어서 얼굴만 남아 있습니다."
- 신화에 대하여
"VR은 우연히 만들게 됐습니다. 연극을 만드는 어떤 감독이 VR 헤드셋을 보여줬고, 그전까진 관심 없었는데 써보니 이게 미래구나 싶었습니다. 뭘 원하는지 모르고 별생각도 없이, 여러 가지 형태의 VR 실험을 시도해봤습니다. VR이 영화의 미래일까요? 제 답은 ‘아니다’입니다만 한 가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방된 내러티브나 참여형 내러티브랄까, 시네마를 조작하는 기술 중 하나라고 봅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주관적입니다. 보통 영화는 감독이 "여길 보세요" 하지만, VR은 무대를 깔고 놀아보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 VR 제작 경험
"비서가 없고 제 스스로 하는 걸 좋아합니다. 이메일을 보내다가 잠이 들기도 하죠. 개를 키우는데 많이 노력이 필요합니다. 잠드는 게 힘들어서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요즘은 잘 자는 편입니다. 팟캐스트를 자주 듣습니다. 생각은 많이 하는데 뭔가를 들을 때는 제가 침묵을 지키게 됩니다. 자기 전에 명상도 하려고 합니다."
- 쉬는 시간에 하는 것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많이 보면 안 좋은 거 같습니다. 자신에 대한 방향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기가 어떤 시간대에 살고 있는지 찾아내는 건 어렵지만 기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카피 하는 게 나쁘진 않지만 카피만 하다가 말 수도 있습니다. 느린 장르의 영화를 만드는 게 좋냐 나쁘냐가 아니라, 그게 여러분을 반영하는지 생각해보기를 권합니다."
- 감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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