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가상이 현실이 되는 경험이 있나요? 영화는 대체로 허구이지만 스크린이라는 막을 뚫고 나와 현실이 되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영화의 스토리가 이어지고 또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영화보다 확장된 타임라인을 가지기도 합니다. 오늘 포스트는 그런 케이스 몇 개를 모아봤습니다.
 


웨이랜드유타니 코퍼레이션
 
A.I. 월터를 아시나요? 월터는 5월 9일 개봉하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에이리언: 커버넌트>(이하 <커버넌트>)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입니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합니다. 지난 4월 5일 ‘A.I. 월터의 탄생 영상’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영화 홍보를 위한 영상이기는 하지만 꽤 근사해보였습니다.

추가
<에이리언: 커버넌트> A.I. 월터의 탄생 영상

영상에서 마이클 패스벤더는 시치미를 뚝 떼고 A.I.를 연기합니다. 영상 말미에는 ‘MeetWalter.com에서 예약하세요’라는 문구도 나옵니다. 호기심에 해당 사이트에 접속해봤습니다. 친절하게 한글도 지원합니다. 예약하기 버튼을 누르니 ‘실제 "월터"를 받지 않습니다’라는 안내와 함께 영화와 관련된 광고를 받게 된다고 하네요. 예상은 했지만 좀 허탈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마이클 패스벤더가 연기하는 A.I. 캐릭터는 <커버넌트>의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메테우스>에서는 데이빗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때도 데이빗을 소개하는 영상을 제작해서 공개했었습니다.
 

<에이리언: 커버넌트> 승무원 유니폼의 패치에 ‘웨이랜드유타니’가 보인다.

월터와 데이빗 소개 영상에서는 공통으로 등장하는 회사 이름이 있습니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가상 회사 웨이랜드(Weyland)입니다. 월터의 영상에서 나온 것처럼 웨이랜드와 유타니가 합작했기 때문에 정식 명칭은 웨이랜드유타니(Weyland-Yutani)입니다만 보통 웨이랜드라고 많이 하죠.

웨이랜드 홈페이지.

웨이랜드는 영화 속 가상의 회사이지만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도 있고, 회장 피터 웨이랜드(가이 피어스)의 2023년(!) 테드 강연 영상도 올라와 있습니다. 웨이랜드 회장은 인류의 기원을 찾겠다는 의지를 피력하십니다. 아쉬운 점은 <커버넌트>와의 연결 고리가 없어 보입니다. 아직 업데이트가 안된 걸까요.
 
이런 가상 회사의 홈페이지는 홍보용이기도 하지만 팬들을 위한 서비스이기도 합니다. <에이리언> 시리즈는 월터/데이빗의 영상, 웨이랜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영화 속 가상현실을 현실과 유사하게 체험하게 만듭니다.
 


엄브렐라 코퍼레이션

엄브렐라? 우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팬이거나 영화의 원작인 게임 <바이오하자드>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엄브렐라의 악명을 처음 들을지도 모르겠네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악덕 기업, 악의 기업 엄브렐라는 다국적 기업으로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회장은 알버트 웨스커(숀 로버츠 외)입니다.

<레지던트 이블> 속 엄브렐라 건물과 정부대전청사의 생김새가 매우 유사합니다.

지구를 좀비 지옥으로 만든 엄브렐라 역시 웨이랜드처럼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도메인 이름이 jp입니다. 일본에 본사를 두고 있다는 설정에 충실한 것 같습니다. 홈페이지상에서 엄브렐라는 영화나 게임에서의 만행과 달리 아름다운 미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자체는 웨이랜드보다 좀더 진짜처럼 만들어놨습니다. 구직 신청란도 존재합니다. 지원하는 사람은 없겠죠? 본사의 전화번호나 주소도 표기되어 있습니다. 주소 구글맵 링크가 있어서 클릭했더니 영화에서처럼 신주쿠 구청 본청사가 뜹니다.


타구루아토 코퍼레이션

타구루아토 코퍼레이션은 떡밥의 제왕 J.J. 에이브럼스(이하 쌍제이) 감독이 제작한 <클로버필드>와 연관이 있는 가상의 회사입니다. 이 회사는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회사의 홈페이지를 찾아낸 사람들은 <클로버필드>의 팬들입니다.

타구루아토는 위의 사진에 등장하는 가상의 음료 슬러쇼(slusho)를 만듭니다. <클로버필드>는 롭(마이클 스탈 데이빗)이라는 등장인물이 슬러쇼의 일본지부 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파티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됩니다. 쌍제이 감독이 제작한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이 음료를 판매하는 홈페이지 역시 실제로 존재합니다. 이 홈페이지를 통해 팬들은 타구루아토 코퍼레이션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클로버필드>

여기서부터 <클로버필드>의 거대한 떡밥이 시작됩니다. 위에 소개한 웨이랜드와 엄브렐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스케일입니다. 타구루아토는 영화 속 가상의 설정을 현실에서 경험하게 만듭니다. 영화 바깥의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타구루아토와 <클로버필드>의 아주 단편적인 관계는 이렇습니다. 타구루아토는 일본 회사로 슬러쇼 판매 이외에도 시추 산업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합니다. 인공위성 사업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인공위성의 추락이 <클로버필드>에 등장하는 괴물의 출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타구루아토와 관련된 떡밥은 너무 방대합니다. 아래 블로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타구루아토와 관련된 떡밥은 <클로버필드>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형제 영화 <클로버필드 10번지>에도 등장합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

<클로버필드 10번지> 역시 엄청난 떡밥이 숨어 있습니다. 역시 시작은 타구루아토 홈페이지입니다. 한 팬이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이메일 주소로 “슬러쇼를 사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는데 놀랍게도 답이 왔습니다. 그 메일 말미에는 ‘이달의 직원: 2016년 1월’을 알리는 문구가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그 팬은 시간이 지난 뒤, 혹시 이달의 직원이 바뀌지 않을까 해서 확인해봤더니 ‘2월의 직원’으로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주인공 하워드(존 굿맨)가 등장했습니다. <클로버필드 10번지>의 떡밥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클로버필드>와 마찬가지로 너무 길어서 다 언급하기 어렵습니다. 아래 블로그를 참고해주세요.

타구루아토의 계열사 볼드 푸투라(Bold Futura)에서 근무했던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주인공 하워드.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이런 떡밥은 대체 현실 게임(ARG, Alternate Reality Game)이라고 부릅니다. 모니터와 연결된 화면 속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게임을 진행하는 겁니다. 타구루아토에 메일을 보내고 받는 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니까요.


ARG 마케팅
 

ARG(대체 현실 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유명한 ARG 마케팅을 소개합니다. 이미 아는 사람도 많을 걸로 생각됩니다. 42엔터테인먼트가 기획한 ARG는 <다크나이트> 개봉 때 한번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나는 하비 덴트를 믿는다’라는 사이트를 해킹한 조커가 자신의 범행에 가담할 실제 팬들, 플레이어를 와이소시리어스닷컴(whysoserious.com)을 통해 모집하고 지령을 내렸습니다. 특정 시간에 플레이어들을 한 장소에 모이라고 하고는 하늘에서 비행기 제트 구름으로 전화번호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플레이어들은 이 전화번호로 실제로 전화를 합니다. 조커가 음성메시지를 남겨놓았습니다. 또 다른 지령에 따라 케이크 가게에서 케이크를 받은 플레이어는 케이크 안에 든 조커의 휴대전화를 받기도 했죠.

비행기가 나타나 제트 구름으로 전화번호를 남겼습니다.

조커의 지령에 따라 움직인 플레이어들은 나중에 알고 보니 <다크나이트>의 초반 조커가 은행을 터는 과정에 협조한 셈이 됐습니다.
 
ARG는 <다크나이트> 이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 때도 홍보용으로 이뤄졌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기획한 ‘더 비스트’라는 이름의 ARG였습니다. 예고편이 등장한 엉뚱한 크레딧 하나가 이 게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습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페이크 다큐멘터리 <블레어 윗치>.

진짜처럼 꾸민 홈페이지나 ARG라는 홍보 기법 이전,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습니다. <블레어 윗치>입니다. 이 영화는 대놓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홈페이지를 통해 세 명의 영화학도가 다큐멘터리를 찍다가 실종됐고, 1년 후 그들의 필름이 발견됐다고 했지만 그건 모두 영화의 홍보를 위한 거짓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홈페이지에 혹해서 낚였습니다. 진짜 그런 다큐멘터리 필름이 있는 걸로 믿었던 거죠.  
 

영화 자체도 연출되지 않은 것처럼 촬영됐습니다. 흔들리는 화면은 더 실감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블레어 윗치>는 파운드 푸티지 장르와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창시자가 됐습니다.
 


영화 속 가상 회사에서 시작해 ARG 마케팅을 거쳐 페이크 다큐멘터리까지, 수박 겉핥기 식이지만 대략 알아봤습니다. 다양한 매체 특히 인터넷, SNS 등이 일반화되면 영화와 관련된 부가적인 스토리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영국 BBC 드라마 <셜록>의 경우에도 왓슨(마틴 프리먼)과 셜록(베네딕트 컴버배치)의 블로그를 운영한 적이 있습니다. 블로그에 먼저 업데이트된 내용이 드라마에서 반영되기도 했죠. 팬들은 각 캐릭터별 트위터 계정을 만들기도 합니다.

한줄 요약,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극장 바깥에도 있습니다. 덕질의 끝은 없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신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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