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운전사>

89편. 연극 무대를 거쳐 독립영화부터 차근차근 활동 범위를 넓혀온 배우 박혁권이 출연한 작품 수다. 그 많은 작품들 속에서도 2017년 8월은 박혁권이 가장 빛나는 시기일 것이다. 조연으로 출연한 <택시운전사>가 천만 관객을 넘겼고, 첫 스릴러물인 <장산범>으로 새로운 연기를 펼칠 수 있었으니까. "올해까지만 하고 배우 그만하자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다짐했던 박혁권은 어떻게 이 순간이 오기까지 기다렸을까. 그 시간을 돌이켜보자.

연기를 못해 울었던 시절
<장산범>

1993년, 극단 산울림에 입단. 박혁권의 공식적인 데뷔 시기다. 마음먹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지만 어느 날 신문을 봤더니 산울림 소극장 단원 모집 공고가 떴길래 입단했단다. 입단 이듬해인 1994년 서울예술대학 연극학과에 진학했다.

박혁권이라면 이때부터 두각을 드러내 '신성' 취급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상상도 하지만, 오히려 "학교에서 내가 연기를 제일 못했다"며 몇 번이고 울기도 했단다. 그런 그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건 <모스키토 2000>이란 연극이었다. 무대 뒤에서 준비하고 큐 사인 날리는 스태프로 참여했는데, 박혁권은 그때 "연기를 안 하니까, 사람들이 나를 배우같이 보더라"고 느꼈다고 한다.

한 방송에서 연극 배우였을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 공연을 김민기 연출가가 보고 마음에 들어해서 <지하철 1호선>에 합류했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도 출연하고 <밥퍼랩퍼>라는 음악극에도 출연했다. 그런데도 박혁권은 학생 때의 기억을 잊지 않았고 자신의 연기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연습 때 무조건 2시간 먼저 나가고, 끝난 뒤에도 남아서 2시간 정도 개인 연습 따로 했다. 공연할 때마다, 심지어 마지막 공연이 끝나고도 연습일지를 꼭 썼다.

이유는 간단했다. "후회할 것 같았다. 내가 할 만큼 못하고 그만두면". 박혁권은 자신이 성공한 배우가 되든, 아니면 절대로 안된다고 확실히 느끼든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실력은 안 늘어도 자신감은 좀 생기더라"고 당시를 기억하지만 박혁권의 내공은 그때부터 차곡차곡 쌓였던 게 분명하다.


어떻게 독립영화의 신이 되었나

쟁쟁한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했던 그가 영화로 눈을 돌린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단편영화는 수업료 안 내고 공부할 수 있는 기회”란 평소 생각도 한몫했지만, 뮤지컬을 빨리 포기하고 정극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가 좀 더 다양하게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화 오디션을 보러 다녔던 게 도움이 됐다.

<시실리 2km>

박혁권의 공식적인 첫 영화는 2001년 단편영화 <데자뷰>다. 이후 오디션에 합격해 <귀여워>와 <시실리 2km>에서 얼굴을 드러냈다. 나이가 이미 서른이 넘었기에 "'큰일 났다! 연기로 승부하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오로라 공주>·<음란서생> 같은 상업영화, <내 청춘에게 고함>·<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같은 독립영화,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어요>·<졸업영화> 같은 단편영화까지 가리지 않고 출연했다.

<쌍둥이들> / <은하해방전선>

2007년, 이정표를 찍는다. <쌍둥이들>로 미쟝센 단편영화제 연기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드라마 <하얀 거탑>에서 홍상일 역을,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국정원 요원 역을, 그리고 영화 <은하해방전선>에서 '혁권 더 그레이트' 박혁권 역을 맡았다. 두 편의 드라마와 한 편의 영화로 대중들에게 주목받았다. 이후 박혁권은 꾸준히 한 해에 4편 이상의 작품에 출연해 자신의 존재감을 쌓아가기 시작했다.

영화계에서 '믿고 쓰는' 조연배우로 자리매김한 후에도 독립영화나 단편 영화, 특별 출연이나 우정 출연도 가리지 않았다. 대본을 보고 내가 표현할 수 있을지, 아니면 신뢰하는 감독인지 그 기준에만 합당하면 출연했다.

<반두비> / <스물>

덕분에 지금 그는 단역부터 주연까지, 어떤 자리에 세워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배우 중 하나가 됐다. 때로는 그 아우라로 주어진 분량 이상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도 몇몇 유독 대중들에게 '미친 존재감'을 선사했던 배역을 몇 개만 짚어보겠다.


박혁권이 대중에게 남긴 각인 7
<차우>
2010년 <차우> 신 형사 役

<시실리 2km>에서 호흡을 맞췄던 신정원 감독의 복귀작, <차우>에서 박혁권은 신 형사 역으로 출연했다. 사실 그 이름은 기억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검은 가죽 코트에 선글라스를 낀 그 모습을 보면 신 형사의 허세나 능청스러움이 절로 떠오를 것이다. <시실리 2km> 속 땡초의 진지한 코미디의 또다른 버전 같기도 하다.


<의형제>
2010년 <의형제> 고경남 役

영화로 한정하면 장훈 감독은 박혁권의 연기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의 흥행작 1·2위 <택시운전사>, <의형제>가 모두 장훈 감독의 연출작이니까. <의형제>에서 박혁권은 국정원 요원 고경남 역을 맡았는데, 능청 연기의 대가인 송강호와 최고의 찰떡 케미를 보여준다. 거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위장술을 펼치는 깨알 같은 모습까지.


<UV 신드롬>
2011년 <UV 신드롬> 기 소보르망 役

이게 뭔가 싶은 분도 있을 거다. 하지만 유튜브에서 '박혁권'을 검색하면 상단에 나올 정도로 인기가 많은 역할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 <UV신드롬>에서 박혁권은 UV 권위자 '기 소보르망 박사'로 나오는데, 능청스러운 연기가 이 프로그램의 차원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UV신드롬 비긴즈] 박혁권 vs 피디ㅋㅋㅋ

<26년>
2012년 <26년> 강 검사 역 役

박혁권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자신의 세계관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의뢰인>이나 <또 하나의 가족> 같은 영화에도 출연했을 뿐더러 <택시운전사> 이전에 <26년>에 특별출연하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박혁권은 특유의 능글맞은 말투로 카리스마를 발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밀회> / <펀치>
2014년 <밀회> & <펀치> / 강준형·조강재 역 役

어쩌면 박혁권의 '때'는 7년마다 오는지도 모르겠다. 2014년 그는 <펀치>와 <밀회>에 출연해 드라마에서도 탁월한 연기를 선사했다. 강준형 역으로 출연한 <밀회>에서는 빈약한 자존감을 허례로 채우는 상류층 남성을 탁월하게 연기해 기묘한 연민을 자아냈다.

<펀치>의 조강재 역도 비슷하다. 부족한 면을 채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다만 연민이 앞섰던 강준형과는 또 달랐다. 조강재는 더 처절했다. 자신의 약점을 알기 때문에 입지를 굳히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은 보는 이들마다 다른 감상을 느낄 만큼 풍부한 인물이 됐다. 

<펀치>

<육룡이 나르샤>
2015년 <육룡이 나르샤> 길태미·길선미 役

지금 기준으로 박혁권의 연기 인생 중 최고전성기라는 말은 이 작품에 써도 좋을 듯 싶다. 박혁권은 <육룡이 나르샤>에서 길태미·길선미 쌍둥이를 연기했다. 1인 2역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길태미란 캐릭터를 '완벽 빙의'해 박혁권이란 이름을 제대로 각인시켰다.

삼한 제일검이란 실력자이면서 도통 사극에서 만나기 힘든 나긋나긋한 남성이란 상반된 특징을 가진 길태미, 머릿속에서도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박혁권은 그 특징을 조합시키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묵직한 카리스마와 경박스러운 행동·말투를 적재적소로 활용해 길태미를 표현했다.

특히 전반부는 길태미로, 후반부는 길태미의 형이자 은둔 고수답게 시종일관 진지한 길선미까지 소화해 연극 무대와 독립영화에서부터 쌓아올린 그의 깜냥을 톡톡히 드러냈다.


이후에도 박혁권은 <특별수사: 사형수의 편지>, <나홀로 휴가>, <터널> 등으로 꾸준히 활동했다. <택시운전사>에선 최 기자로 등장,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이에 우리는 부끄러워 붓을 놓겠다"고 선언했던 지역지 신문 기자들의 심정을 그대로 투영했다.

80여 편의 작품, 24년의 연기 활동. 이제 그의 얼굴이 익숙해질 때도 됐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브라운관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이 배우는 어딘가 익숙하면서도 매번 낯설다. 그의 능청스러운 연기가 친근하면서도 유니크하듯 말이다. "셀프 안식년을 가져야 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는 그의 선언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또다시 불쑥 튀어나와 눈 뗄 수 없게 할 박혁권을 기다려보겠다.


씨네플레이 인턴 에디터 성찬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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