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독일에서 낭보가 전해졌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찾은 김민희가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녀의 수상 소식과 현장에서 홍상수-김민희 관계에 대한 온갖 추측성 기사가 영화계 뉴스를 뒤덮었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가 지난 3월23일 개봉했다. 김민희의 오랜 커리어 가운데 단연 최고의 연기를 만날 수 있는 이 영화와 함께 감상해볼 만한 김민희의 대표작 다섯 편을 소개한다. 리스트 속 영화는 모두 N스토어에서 5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되고 있으니 기회를 놓치지 말자.


뜨거운 것이 좋아


감독 권칠인

출연 김민희, 이미숙, 안소희

상영시간 114/ 제작연도 2007

패션지 모델 출신의 김민희에게는 늘 연기력 논란이 따라붙었다.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2000), <순수의 시대>(2002) 등 화제작에 주연으로 출연했지만, '발연기'라는 평을 받기 일쑤였다. 한동안 연예계 활동을 쉰 김민희는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굿바이 싱글>에서 그야말로 일취월장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단숨에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했다. <굿바이 싱글> 바로 다음 출연한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역시 호연은 계속됐다.

40대, 20대, 10대의 여성의 사랑을 그린 영화에서 20대 아미의 사연이 가장 현실적으로 보인다. 아미(김민희)는 일도 사랑도 모두 꼬인 27살의 시나리오 작가다. 무능력한 남자친구가 바람피고, 꽤 근사한 남자가 대쉬해오는 상황이 동시에 벌어졌는데 마음은 허할 뿐이다. 아직은 단정하지 않은 발성으로 '멘붕'의 심경을 내뱉고 감정에 못이겨 몸서리치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럽다. 상대적으로 감정이 덜 도드라져 보이는 얼굴을 뚫고 전달되는 에너지가 선명하다. ▷ <뜨거운 것이 좋아> 바로 보기



여배우들


감독 이재용

출연 김민희, 이미숙, 윤여정, 고현정

상영시간 104/ 제작연도 2009

요즘 세대의 연애영화 바이블로 손꼽히는 <연애의 온도>(2013)와 <여배우들> 중 어떤 걸 리스트에 넣을지 고민했다. 이미 씨네플레이의 여러 콘텐츠에서 <연애의 온도>를 다룬 바 있어, 에디터의 취향까지 보태, <여배우들>을 뽑았다. 이미숙, 고현정, 윤여정, 최지우, 김옥빈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여성 배우들이 모인 영화에서 김민희는 단연 가장 밝게 빛난다. 한국 대표 여성 배우들의 화보 현장을 스케치한다는 설정 아래, 그녀는 모델 출신답게 능숙하게 포토제닉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여배우들>은 화보 현장을 다큐멘터리처럼 담은 극영화이기에 보다 사실적인 연기가 요구되는 작품이다. 다양한 세대의 배우들이 모인 자리지만, 자기가 가장 돋보이고 싶은 마음만큼은 다를 바 없는 법. 한곳에 모인 배우들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의 고민으로 그 자리를 불편해하고, 소품이 오지 않아 촬영이 연착되자 분위기는 점점 싸늘해진다. 그 중 유일하게 즐겁기만 한 배우가 김민희다. 이런저런 가치에 목매지 않은 채 화보 촬영과 선후배와의 동석을 그저 즐기는 듯한 태도가 <여배우들> 속 빽빽한 공기에 환기로서 작동한다. ▷ <여배우들> 바로 보기 



화차


감독 변영주

출연 김민희, 이선균, 조성하

상영시간 117/ 제작연도 2012

배우의 가능성을 어필한 게 <뜨거운 것이 좋아>부터였다면, 변영주 감독과 작업한 <화차>는 김민희가 비로소 당대를 대표하는 여성 배우로 올라섰음을 만방에 알린 작품이다. 이전까지는 아무리 연기가 괜찮았더라도 김민희라는 배우가 먼저 보였던 것과 달리, <모비딕>(2011)과 같은 일련의 장르영화를 작업하면서부터 비로소 배우가 아닌 캐릭터를 전달하는 연기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모비딕> 바로 다음 작업한 <화차>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스터리한 여인 차경선이 극을 이끌어간다.

<화차>는 전적으로 차경선이라는 여자에 대한 영화다. 문호(이선균)가 사라진 그녀를 동분서주 추적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만, 경선에 대한 비밀이 점점 밝혀질수록 그녀가 이야기를 장악하는 비중은 점층적으로 불어난다. 자신의 흔적을 모두 지우고 전혀 다른 사람의 존재로 살아가는 여자의 기행은 처음엔 경악스럽게만 보인다. 그러나 경선이 그런 삶을 택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목도하면서 관객은 점차 그녀에게 애착을 품게 된다. 처참한 환경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김민희라는 좀체 상상하기 힘든 이미지가 <화차>에 절절히 새겨져 있다. ▷ <화차> 바로 보기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감독 홍상수

출연 김민희, 정재영, 윤여정

상영시간 121/ 제작연도 2015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바로 그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가 처음 함께 작업한 작품이다. 경기도 수원을 배경으로,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가 화가 윤희정(김민희)을 만나 순간순간 변화하는 관계에 집중한 영화다. 왜 이제서야 김민희가 홍상수 영화에 나오게 된 걸까, 아쉬울 만큼 김민희는 홍상수 월드에 더없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윤희정은 꽤나 익숙하면서도 전혀 새로운 홍상수 영화의 여성상이다.

<우는 남자>(2014) 속 부자연스러운 모경에게 실망한 이들이라면, 윤희정은 김민희가 제 집을 찾은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덜고 다분히 캐릭터를 돋보이게 하면서 배우로서 도약을 이룬 한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평소 배우의 특징을 캐릭터에 반영시키는 홍상수의 연출법에 따라 다시금 인간 김민희가 더욱 많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성행궁 내에서의 옅은 경계심, 춘수의 무례한 지적에 대한 따끔한 일침, 스시집에서 술을 마시고 한껏 풀어진 모습 등 펄떡이는 생동감으로 가득한 김민희를 만날 수 있다. ▷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바로 보기



아가씨


감독 박찬욱

출연 김민희, 김태리, 하정우

상영시144/ 제작연도 2016

<아가씨>의 히데코 역에 김민희를 대체할 수 있는 배우가 과연 있기나 할까?아무리 떠올려봐도 없다. 일본에서 자란 히데코는 절대적인 아름다움은 물론 온실의 화초처럼 자란 듯한 연약하고 어리숙한 면까지 동시에 품고 있어야 가능한 캐릭터다. 김민희는 부르주아 특유의 화려한 복식을 소화할 뿐만 아니라, "천지간에 아무도 없는" 외로움에 가득한 눈망울까지 완벽하게 구현했다. 천진난만한 얼굴로 도발적인 말과 행동을 던질 때의 묘한 느낌마저 김민희 그 자체다.

<아가씨>가 흥미로운 건 히데코를 도통 무슨 속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인물처럼 그렸다는 점이다. 김민희의 연기도 바로 이런 설정에서 눈부신 역할을 해낸다. 이렇다 확정할 수 없는 히데코의 다양한 모습이 모두 설득력을 지닌다. <아가씨>는 그렇게 켜켜이 쌓인 다양함을 하나씩 벗겨내, 그렇게 각자 다른 층위를 샅샅이 살펴보는 재미를 제공한다. 때마다 히데코가 시침 뚝떼고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지켜보는 것만으로 140분의 러닝타임은 흐르듯 지나간다. 거듭 볼수록 더욱 재미있는 작품이란 뜻이다. ▷ <아가씨> 바로 보기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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