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1970년대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이런 이름이 나왔다.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치치카포… 이런 독특하고 긴 이름은 보통 장수를 기원하며 지어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제목에 따라 관객들의 기억에 오래 남기도, 반대로 쉽게 잊히지도 한다. 그동안 영화계에선 어떤 길고 길고 긴 제목들이 등장했을까.


일본
포스터 속 문구 ‘파밀리아 미스’가 제목 아니다.

일본 영화계는 제목을 참 길고 다양하게 짓는다. 최근 개봉한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오리온의 화살->도 언뜻 보기엔 무슨 말인가 싶다. 이 영화는 라이트노벨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의 애니메이션 극장판이다. 원작 팬들은 풀네임을 포기하고 ‘던만추’라고 부른다. ‘월희’, ‘공의 경계’로 유명한 타입문의 작품도 상황은 비슷하다. ‘페이트’ 시리즈의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목은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헤븐즈필 제1장 프레시지 플라워>,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헤븐즈필 제2장 로스트 버터플라이>. 해석하면 ‘페이스 스테이 나이트’의 ‘헤븐즈필’ 파트의 1장과 2장이란 말씀.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헤븐즈필 제1장 프레시지 플라워>(왼쪽), <페이트 스테이 나이트 헤븐즈필 제2장 로스트 버터플라이>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왼쪽), <만약 고교야구의 여자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는다면>

애니메이션만 그런 거 아닌가요?! 반문한다면 다음 영화를 보자. <블랙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지금 나는 한계에 도달했는지도 모른다>는 원어로도 ‘ブラック会社に勤めてるんだが、もう俺は限界かもしれない’(블랙 가이샤 니 츠토메테룬다가, 모 오레 와 젠카이카모 시레나이)다. 풀네임 부르면 숨 한 번 골라야 할 경지다. 한때 긴 제목으로 회자되던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 정도는 애교다. 원작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만약 고교야구의 여자 매니저가 드러커의 [매니지먼트]를 읽는다면> 같은 경우도 있다.


영미권
<나이트 오브 더 데이 오브 더 돈…> 시리즈 포스터. 공식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다.

일본 영화의 긴 제목이 애니메이션에서 많이 나온다면, 미국 영화의 긴 제목은 코미디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장 긴 제목은 <나이트 오브 더 데이 오브 더 돈 오브 더 손 오브 더 브라이드 오브 더 리턴 오브 더 리벤지 오브 더 테러 오브 더 어택 오브 더 이블, 뮤턴트, 헬바운드, 플레쉬 이팅 서브 휴머노이드 좀비파이드 리빙 데드> 시리즈다. 제목에서 보다시피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을 패러디한 것이다. 무려 5편까지 나온 컬트 코미디로 포스터만 봐서는 내용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원작 소설 <레드 얼럿>(왼쪽),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포스터

원작 제목을 완전히 비틀어서 길어진 제목이 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다. 이 영화의 원작 제목은 ‘레드 얼럿’, 적색경보다. 하지만 영화는 핵 전쟁을 블랙코미디로 그리면서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 혹은 : 나는 어찌하여 근심을 멈추고 폭탄을 사랑하게 되었는가’로 변경됐다.

<버드맨> 한국 포스터(왼쪽), 미국 포스터. 제목 밑에 부제 유무를 알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국내에 소개되면서 제목이 축약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버드맨>의 원제는 <버드맨: 또는 예기치 않은 무지의 미덕>이지만, 관객들이 쉽게 기억하지 못하고, 모호하게 느낄 부제를 과감하게 삭제했다. 휴 그랜트 주연의 <잉글리쉬맨>도 원제는 <언덕에 올라갔으나 산에서 내려온 잉글리쉬맨>(The Englishman Who Went Up a Hill But Came Down a Mountain)이다. <레디 플레이어 원> 주인공이 언급한 ‘버카루 반자이’가 등장한 영화 <카우보이 밴자이의 모험>는 원제 그대로 번역하면 <8차원을 가로지른 버카루 반자이의 모험>으로 꽤 장황하다.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왼쪽), <럭키 레이디> 미국 포스터

사차 바론 코헨이 연기한 캐릭터 ‘보랏’의 극장판 영화의 제목은 짧아지지 않았으나 의역을 거쳐 <보랏 - 카자흐스탄 킹카의 미국 문화 빨아들이기>로 공개됐다. 원제는 <나는 기계 위에 저 아름다운 사람들; 혹은, 어떻게 내가 런던에서 파리까지 25시간 11분 만에 날아다녔는가>(‘Those Magnificent Men in their Flying Machines; Or, How I Flew from London to Paris in 25 Hours 11 Minutes’)였으나 국내엔 <럭키 레이디>라는 간략한 이름으로 소개된 영화도 있다. <성공시대> 역시 원제는 <진짜 노력 없이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방법>이다. 

<후 이즈 해리 켈러맨 앤 와이 이즈 히 세잉 도즈 데러블 씽 어바웃 미?>(왼쪽), <돈 비 어 메니스 투 사우스 센트럴 와일 드링킹 유어 쥬스 인 더 후드>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영화들 중 긴 제목도 상당수다. 울루 그로스바드 감독의 1971년작 <후 이즈 해리 켈러맨 앤 와이 이즈 히 세잉 도즈 데러블 씽 어바웃 미?>(Who Is Harry Kellerman and Why Is He Saying Those Terrible Things About Me?)는 번역은 둘째치고 쉽게 축약하기 힘든 제목이다. <헬리 캘러맨은 누구이며 그는 왜 나에 대해 이런 끔찍한 것을 말하는가?> 궁금증은 유발하지만 어쩐지 쉽게 티켓을 끊기는 어려워보인다. 패리스 버클레이 감독의 1996년작 <돈 비 어 메니스 투 사우스 센트럴 와일 드링킹 유어 쥬스 인 더 후드>(Don't Be a Menace to South Central While Drinking Your Juice in the Hood)도 마찬가지다.


한국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최근 한국영화는 누가 영화 제목을 더 간결하게 짓나 경쟁하듯 짧은 제목이 많다. 하지만 2000년대에는 꽤 장황한 제목들이 즐비했다. 2000년에 나온 영화지만, 아직도 ‘한국 영화 제목 길이’ 1위를 지키는 건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 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제목처럼 내용도 괴랄한 컬트 영화다. 담임 선생에게 토막 살인 당한 여고생이 사이보그가 돼 부활한다는 내용. 제목과 내용에 버금가는 배역명도 인상적이다. 학교를 밝히지 않는 여고생, 촛불없이는 밤이 혼란스러운 이 영화 제작자의 엄마, 생일때 무조건 총 선물하는 힘 꾀나 쎄 보이는 남자 등등.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

독립영화만 그런 게 아니다. 고 김주혁 주연의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도 있다. <홍반장>이 원제가 아니다. 포스터만 보면 저 긴 제목이 카피처럼 보이지만, 영화진흥위원회 데이터베이스에도 ‘어디선가…홍반장’으로 저장돼 있다. 공백 제외 총 27글자로, ‘아직 대학로에 있다’보다 한 글자 짧다.

김주혁이 든 마이크에 영화의 풀네임이 적혀 있다.
(왼쪽부터)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고 마음속 가득히 사랑은 영원히>,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 <따봉수사대-밥풀떼기 형사와 전봇대 형사>

이어진 3위는 1974년 영화 <눈으로 묻고 얼굴로 대답하고 마음속 가득히 사랑은 영원히>. 강신성일과 우연정이 주연한 멜로영화로, 제목만 봐도 감성이 넘친다. 이어 1990년대에는 <열아홉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반을 찾습니다>, <내가 성에 관해 알고 있는 몇 가지 이야기들>, <따봉수사대-밥풀떼기 형사와 전봇대 형사> 등이 영화의 긴 제목 계보를 이어갔다.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

마지막으로 길면서 인상적인 영화 제목을 소개한다. 2002년작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는 조은지, 최광일, 공효진이 출연한다. 박찬욱 감독과 <복수는 나의 것>, <공동경비구역 JSA> 등을 함께 집필한, 그러면서 <휴머니스트>와 <아나키스트> 같은 작품도 쓴 이무영 감독의 영화다. 그의 다른 시나리오처럼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도 다소 괴랄한 센스와 코미디 감각으로 무장한 영화다. 당시 독특한 제목과 공효진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관객들이 이 영화만의 센스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면서 묻힌 감이 있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