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출 땐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 춤이 그냥 나이기에.
<댄서> 메인 예고편

<댄서>발레계의 제임스 딘이란 별명을 가진 댄서, 세르게이 폴루닌의 성장과 고뇌를 담은 다큐멘터리입니다삶의 목표를 모두 이뤘다면, 그 뒤의 삶은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요. <댄서>는 타고난 재능과 피나는 노력으로 채 스무살도 되기 전 영국 로열 발레단 최연소 수석 무용수 자리를 꿰찬 천재 댄서 세르게이 폴루닌이 정점을 찍고 난 뒤의 고뇌에 집중합니다. 세르게이 자신과 가족들이 찍은 홈비디오, 공연 영상, 친구와 스승들의 인터뷰로 세르게이 폴루닌의 삶이 재구성됩니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아이

이 시대 최고의 발레리노로 꼽히는 세르게이 폴루닌은 1989년 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출생했습니다. 세르게이가 태어났을 때 조산사가 아기의 관절에 이상이 없는지 여기저기 만져보는데 유독 세르게이의 다리만 넓은 각도로 벌어져서 놀라워했다고, 그의 어머니는 회고합니다. 가난한 마을에서 살았지만 남달리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세르게이의 어머니는 아들의 재능을 일찌감치 짐작하고 학교와 공부를 지겨워하던 6살 세르게이에게 체조부터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체조를 배우면서 세르게이는 올림픽을 목표로 할 정도로 뛰어난 자질을 보였습니다.

 
춤의 시작

8살의 세르게이는 발레도 배우기 시작합니다. 세르게이의 첫 무용 교사 갈리나 이바노브나는 체조 선수로 훈련된 세르게이를 발레리노로 만들기 위해 처음부터 다시 그를 훈련시킵니다. 군계일학. 학교 공연에서조차 세르게이는 독보적으로 눈에 띄었습니다. 작은 마을에 머무르기엔 지나치게 뛰어났던 세르게이의 장래를 염려한 부모는 무리해서 세르게이를 우크라이나 최고의 무용 학교인 키예프 국립 발레 학교에 입학시킵니다. 가족의 균열은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비싼 학비를 감당하기 힘들었던 세르게이의 부모와 조모들은 뿔뿔이 흩어져 돈을 벌기 시작합니다. 매일을 발레 연습에 매진하고 집에서조차 다리 찢은 상태로 TV를 봐야 했을 만큼 세르게이는 혹독히 훈련합니다. 세르게이는 가족의 유일한 희망이 됩니다.

 
영국으로 가다

넘치는 재능의 세르게이는 유학을 꿈꾸며 영국 로열 발레 학교 오디션에 지원합니다. 결과는 합격. 그러나 비자 문제로 가족들이 영국에 함께 머물 수는 없었습니다. 세르게이는 영어 한 마디조차 못하는 상태였지만 홀로 유학길에 올라 발레에 전념합니다. 자신이 가족의 희망임을 어려서부터 너무나 잘 알았던 겁니다. 1년 뒤, 세르게이의 부모는 이혼을 했고 이 일은 세르게이에게 깊은 상처로 남습니다. 세르게이는 자신이 열심히 춤을 추면 가족이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인생에선 자기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일도 종종 생긴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입학한 지 불과 2년 만에 세르게이는 수석 무용수와 솔리스트의 춤을 배웁니다. 누가 봐도 그보다 대단한 댄서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세르게이는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지만 친구들은 은연 중에 느껴지는 그의 고독을 알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를우아한 야수라고 불렀습니다.
 

비상과 추락

2007년엔 영국 로열 발레단에 입단합니다. 첫 무대, 세르게이는 구석에서 작은 역을 연기했지만 관객은 수석 무용수가 아닌 단역 세르게이를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2009, 세르게이는 19살의 나이로 로열 발레단의 최연소 수석 무용수가 됩니다. 물론 솔리스트였죠. 이 시기의 세르게이는 온 영국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눈부신 재능의 천재 발레리노는 아름답게 날았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올랐음에도 세르게이는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가족의 분열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의 공연에 단 한 번도 가족을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목표가 있는데 그걸 이뤄야 할 이유가 사라지면 누구라도 힘들 수밖에 없어요.” 세르게이는 엇나가기 시작합니다. 문신과 마약, 태만으로 점철된 짧은 시간을 보내다 급기야 2012년 일방적으로 탈단 선언을 합니다. 영국에서 최고의 무용수로 융숭히 대접받던 그는 모든 영광을 버리고 러시아로 가 TV쇼에 출연하며 바닥을 헤맸습니다. 미국으로 가고자 했지만 미국은 문제아로 낙인 찍힌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이때의 그는 발레계의 배드 보이라고 불렸습니다.
 

재기의 발판을 딛다

러시아 스타니슬랍스키 극장의 예술감독 이고르 젤렌스키는 세르게이에겐 친구이자 스승, 아버지였습니다. 그는 보호자의 부재로 인한 세르게이의 상처를 부드럽게 보듬었습니다. 세르게이는 자신의 춤이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것인지 고민하며 방황하다 그의 제안으로 스타니슬랍스키 발레단의 초청 단원이 되어 다시 발레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고르와 협연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하지만 러시아도 그가 원하는 것을 총족해주진 못했습니다. 무대 위에선 눈부시게 빛났지만 현실의 그는 여전히 방황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제발 어디든 다쳐서 다시는 춤을 출 수 없게 되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세르게이는 다시 고향 키예프로 돌아갑니다. 어머니, 어린 시절의 스승과 만난 세르게이는 조금 기운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은퇴를 다짐하며 안무가 친구와 자신의 마지막 공연을 구상합니다.

아일랜드 뮤지션 호지어(Hozier)‘Take Me to Church'를 배경음악으로, 데이비드 라샤펠이 카메라에 담은 그의 마지막 춤은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에 공개됩니다. 놀랍게도 그의 춤에 감복한 데이비드 라샤펠이 누구의 동의도 없이 독단으로 유튜브에 올렸다고 합니다.


잠시 감상하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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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gei Polunin, "Take Me to Church" by Hozier, Directed by David LaChapelle

세르게이와 제작진은 라샤펠의 독단에 당황했지만, 뜻밖에도 이 영상은 전세계 수많은 대중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발레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세르게이 폴루닌이란 이름을 알게 되었고, 숱한 어린이들이 그의 춤을 보며 발레 무용수를 꿈꾸게 됩니다.

세르게이는 일평생 처음으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춤을 추며 스스로가 얼마나 춤을 사랑했는지 깨닫습니다. 자신만이 가족의 희망이어서, 가족의 재결합을 위해 춤추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세르게이 자신이 춤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으리란 것을 세르게이는 마침내 알게 됩니다. 대중은 세르게이가 다시 무대에 올라주길 염원했고, 세르게이는 이에 응답합니다. 세르게이는 처음으로 자신의 공연에 가족을 초대합니다. 무대를 마친 뒤 가족의 축하 속에서 웃는 그의 얼굴에선 새로운 열정이 보입니다. 그는 비로소 진짜 춤을 추게 된 것 같습니다.

<댄서><지젤> <돈 키호테> <호두까기 인형> <스파르타쿠스> 등 세르게이 폴루닌이 주역을 맡았던 영국과 러시아의 발레 공연 영상이 종종 삽입돼 있습니다.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은 무척 감동스럽습니다. 마치 지금을 예견하고 찍은 듯한 정성스러운 홈비디오 영상도 흥미롭습니다. 아무리 배드 보이’, ‘반항아라고 불리며 비행을 일삼았어도 세르게이의 가족과 지인들이 그의 면면을 회상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세르게이가 얼마나 사랑받고 싶어했는지, 평화로운 삶을 바랐는지 짐작이 됩니다. (잘 자라줘서 에디터가 다 고마울 정도. ㅠㅠ) 삶의 궤적은 무척 다르지만 세르게이가 누구보다 빠르고 가볍고 아름답게 움직인다는 점에서 에디터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시절의 김연아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아마 관객도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발레 공연 티켓을 예매하고 싶어질 겁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윤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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