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이브> 정주행을 망설이고 있다고? 그런 당신에게 시즌 1의 한 장면을 먼저 소개한다. 이브(샌드라 오)는 자신의 집에 찾아온 직업만족도 99.9%인 사이코패스 킬러 빌라넬(조디 코머)를 만난다. “넌 사이코패스야.” 이브가 벌벌 떨면서 말했다. 빌라넬은 “그런 말 하지 말라”며 “상처받는다”고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 둘의 관계 짐작할 수 있겠는가. <킬링 이브>는 매력은 복잡미묘한 이 두 캐릭터에서 비롯된다.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킬링 이브>의 매력 세 가지를 소개한다.


포인트 1: 흥미진진 캐릭터 드라마

<킬링 이브>에서 빌라넬을 연기한 조디 코머.

<킬링 이브>에서 이브를 연기한 산드라 오.

<킬링 이브>는 위에서 언급한 두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드라마다. 파리에 살며 유럽의 주요 국가를 돌아다니며 살인을 저지르는 킬러 빌라넬과 그를 쫓는 한국계 미국인인데 영국의 MI5 출신의 MI6 요원인 이브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서로에게 설명하기 힘든 이유로 이끌린다. 각 캐릭터에 대해 알아보자.

빌라넬의 옷장에는 자신이 맡은 임무에 맞는 다양한 의상이 가득하다. 화려한 드레스부터 웨이트리스 의상까지 준비돼 있다. 그는 마치 무대에 오르는 배우처럼 살인을 저지른다. 패션 매거진의 화보를 보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완벽한 킬러이자 사이코패스인 그는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아이러리한 순간이다. 킬러는 악(惡)인데 매력적이다. 빌라넬은 미워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의 인물이다.

아마도 세계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 MI6 요원으로 등장한 이브는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라고는 하지만 친근함이 먼저 느껴진다. 시즌 1 초반, 스파이라는 정체성보다 자상한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내이자 주변 동료들과 상사의 뒷담화를 늘어놓으며 웃을 수 있는 유쾌한 직장 동료라는 평범한 이미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빌라넬과 맞닥드렸을 때는 어땠나. 그에겐 꺼내들 총도 없었으며 몰래 감추려다 바로 들켜버린 과일칼은 바지춤에서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한 마디로 이브는 푸근함이 느껴지는 스파이다. 특히 국내 관객들에게는 더 그렇다. 시즌1에서는 볼 수 없었지만 시즌2부터 드러나기 시작하는 한국인의 정체성 때문이다. 시즌 3에서는 영국의 대형 한인마트에 장을 보고 한인식당에서 일을 하는 이브를 볼 수도 있다.

포인트 2: 첩보물의 탈을 쓴 퀴어물(?)

빌라넬과 이브가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하는가. 두 사람은 병원 화장실 거울을 마주보고 나란히 서 있었다. 빌라넬과 이브는 서로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이브는 빌라넬의 시선을 느끼고 “괜찮냐”고 물었다. 빌라넬은 머리칼을 풀어헤친 이브에게 “묶지 마요”라고 말했다. 대화 내용이 중요할까. 거울 앞 두 사람의 시선이 교환되는 과정이 중요했다. 이후 베를린에서 살인을 저지른 빌라넬은 이브의 이름을 사용했다.

빌라넬과 이브, 특히 빌라넬을 중심으로 한 동성애 코드는 <킬링 이브> 곳곳에서 포착된다. 이 정도면 <킬링 이브>는 스파이 장르의 탈을 쓴 퀴어물이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여성 관객들은 이브에게 공감하고 감정을 이입하여 빌라넬과 사랑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시즌 2에서는 좀 달라질 테지만. 빌라넬은 근래에 보기 드문 매력적인 사이코패스다. 시즌 1, 2를 지나며 이브는 빌라넬과 알 수 없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산드라 오와 조디 코머는 이 복잡미묘한 감정을 완벽하게 연기해냈다.

포인트 3: 서사의 힘

<킬링 이브>에서 캐롤린를 연기한 피오나 쇼.

<킬링 이브>에서 콘스탄틴을 연기한 킴 보드니아.

시즌이 거듭될수록 중요한 것은 서사 즉 이야기가 지닌 힘이다. 앞서 살펴본 두 가지 매력 포인트, 동성애적 요소에 기반한 캐릭터 드라마라는 장점은 <킬링 이브>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서사가 아래에서 바탕이 돼주지 않았다면 이 캐릭터들이 설 자리를 잃고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 서사의 가장 중심에 있는 게 ‘트웰브’(The Twelve)라는 아직 정체가 공개되지 않는 암살 조직이다. 참고로 이 시리즈의 주인공 이름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성경 속 인물에서 비롯된 것처럼 트웰브라는 이름 역시 성경의 12사도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이 보인다. 트웰브는 옥사나였던 빌라넬을 암살자로 길러낸 곳이기도 하다. 시즌 3에서는 이곳과 관련 있어 보이는 인물이 등장한다. 또 어떤 이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복잡하고 미스터리한 사건과 죽음을 둘러싼 모든 비밀들이 얽히고설키는 과정에서 이브와 빌라넬은 계속 만나고 헤어진다. <킬링 이브> 시즌 3 피날레까지 보고 나면 2021년에 공개될 시즌 4에서 또 다른 방향의 서사를 기대하게 될 것이다.

첩보물의 혁신

<킬링 이브>는 킬러와 스파이가 등장하는 첩보물, 에스피오나지 장르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와 비교해보라.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소설의 대가 존 르 카레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과 <킬링 이브>는 MI6와 러시아 같은 기본 소재 말고는 비슷한 점을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같은 장르로 분류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다. 이렇게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첩보물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수상의 영광도 뒤따랐다. <킬링 이브> 시즌 1이 BBC 아메리카에서 방영된 이듬해 2019년, 골든글로브에서 산드라 오는 TV 시리즈 드라마 부분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에서는 베스트 드라마에서 선정됐으며 조디 코머는 여우주연상, 이브의 상사인 MI6 러시아 부서장 캐롤린을 연기한 피오나 쇼가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왓챠플레이에서 독점 공개하고 있는 <킬링 이브> 시즌 3가 공개됐다. 아직까지 <킬링 이브>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시즌 1부터 3까지 정주행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킬링 이브>는 결코 후회하지 않을 선택이다.


씨네플레이 신두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