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가 멀쩡하고 자유롭다는 건 행운이다. 배우들은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 것이다. 동작 하나에 감정을 표현하고 캐릭터를 만드는 배우에겐 신체는 무기이자 전력이니까. 하지만 이 영화 속에선 신체를 제대로 쓸 수 없는 인물을 연기한 배우들이 반짝인다. 휠체어에 앉아 캐릭터로 녹아든 배우들의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퍼펙트맨
:얼떨결에 만난 건달과 친구 된 로펌 회장님
설경구, 조진웅의 만남으로 기대를 받았지만 까보니 다른 영화와의 유사성 논란으로 빛을 못 본 <퍼펙트맨>. 그렇지만 두 주연 배우의 호연은 어딜 가나 호평받았다. 그동안 많은 작품에서 '육체적 도전'을 한 설경구가 전신마비 로펌 회장 장수 역을 연기한다. 그리고 그의 연기는 어김없이 영화의 중심에 안착한다. 신체를 쓸 수 없음에도 더 능청스러운 아이러니함이 설경구식 연기의 정점. 날 선 '회장님'과 허허실실한 '친구'를 오가는 연기가 영화의 색을 더욱 확실하게 한다. <해운대>에서 갈고닦은 사투리를 종종 찰지게 사용하는 것도 포인트.
돈 워리
:알코올 중독에 전신 마비까지, 풍자 전문 만화가
<조커> 아서 플렉으로 만연한 연기력을 과시한 호아킨 피닉스. 그의 연기력이야 어디서든 빛나지만, <돈 워리>처럼 신체적 한계가 명백한 작품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그가 연기한 존 캘러핸은 전신 마비, 알코올 중독 등 역경을 딛고 풍자 만화가로 성공한 실존 인물. 그동안 굴곡진 인물을 자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지만, 육체적 한계와 성공 이후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과거에 부딪힌 존 캘러핸을 연기할 때의 신중함은 이전과는 또 다르다. 특정 지어 말하자면 '존 캘러핸 그자체'라는 말 외엔 설명할 방법이 없다. 아 참, <돈 워리>를 챙겨봐야 할 이유는 또 있다. 호아킨 피닉스의 실제 연인 루니 마라가 아누 역으로 함께 출연한다. 그리고 조나 힐과 잭 블랙이란 호감형 배우들도 영화의 깊이를 더한다. 구스 반 산트 감독답게 삶을 단편적으로 그리지 않는 태도도 참 오래 남는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루게릭 병조차 막지 못한 인류 최고의 지성
뛰어난 배우들은 연기로 작품의 격을 끌어올린다.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에디 레드메인도 그렇다. 그는 루게릭병 발병 직전부터 노년까지의 스티븐 호킹을 연기한다. 단순히 '장애를 가진 인물'이 아니라 병이 서서히 심해지면서 신체가 점점 무너지는 과정을 연기해야 했다. 대상은 심지어 인류 최고의 지성 중 하나라고 칭송받는 스티븐 호킹. 감정 연기와 신체 연기 모두를 잡아야 하는 고난도 연기에도, 에디 레드메인은 모든 순간마다 스티븐 호킹 뒤에 꼭꼭 숨어 자신을 숨겼다. 그 결과 그해 미국 아카데미는 <버드맨> 마이클 키튼, <폭스캐처> 스티브 카렐 등 쟁쟁한 배우들 대신 에디 레드메인의 손을 들어줬다. 첫 노미네이트에 수상까지, '연잘알' 영국 배우 라인의 새로운 배우가 탑승한 순간이었다.
더 파이브
:자신의 목숨조차 건 복수자
<더 파이브>에서 김선아는 연쇄살인마에게 남편과 딸을 잃은 은아를 맡았다. 스토리부터 녹록지 않은데, 극중 부상으로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다. 모든 걸 잃고 삶을 포기하려는 그에게, 유일한 삶의 목표는 복수.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김선아의 열연은 감탄할 만하다. 극의 전반을 이끄는 인물답게 때때로 온몸으로 땅바닥에 던져지고 엎어지는 등 수난이 적지 않고, 응축된 복수심을 별다른 액팅 없이 쏟아내는 감정 장면까지 완벽하게 소화한다. 혹시나 다리를 쓸까 꽁꽁 묶고 휠체어 운행을 생활화했다는 김선아는 그럼에도 "육체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고통이 더 컸다"며 은아에게 완벽히 몰입했었다고.
언터처블: 1%의 우정
:아무도 모를 고통 속에 사는 대부호
이런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가 늘 무겁고 진지한 건 아니다. 한국 관객들도 사랑한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이 좋은 예시다. 지금 보기에 진짜 '선 넘는' 오마 사이의 드리스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프랑수아 클루제가 필립을 연기하면서 보여주는 섬세함도 특별하다. 필립이 전신 마비임을 고려해 다양한 제스처를 대신할 시선 처리에 더욱 힘을 준다. 사람이 대화할 때 항상 상대를 보지 않듯, 필립도 은연중에 시선을 돌리는데 그 시선이 일정해서 묘한 안타까움을 건드린다. 상대를 편견 없이 바라보는 드리스의 잠재력을 알아채고, 그와 함께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을 보면 클루제가 연기한 과거의 필립을 문득 궁금해진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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