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얼의 만화책] 나라를 망치는 ‘요괴’ 미녀를 잡고 새 왕조를 열어라 「봉신연의」

나는 서브컬처라면 환장한다. 영화뿐만 아니라 웹툰,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 참신한 이야기나 소재, 캐릭터를 다루는 건 일단 살펴본다. 만화책으로 '덕'의 세계를 연 나는 e북으로 만화책을 보고 스마트폰으로 웹툰을 읽는 ‘애어른’이 됐다. 그치만 혼자 보면 재미가 덜하다. 같이 보면 더 재밌을 것들을 잡덕인의 시선으로 담아 [성찬얼의 만화책]을 그린다.

※ 아래 내용에 포함한 이미지는 모두 후지사키 류 작가와 각국의 출판사에 저작권이 있음을 명시한다.

근래 일본으로 여행을 갔다 왔다. 방문 목적부터가 애니메이션 〈룩백〉의 원화전이었으니, 여행 기간 내내 뭘 했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덕질’ 하려고 가게들을 구경하던 도중, 적어도 7번 이상 읽었는데도 까맣게 잊고 있던 작품의 굿즈를 발견했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연재한 「봉신연의」였다.

「봉신연의」
「봉신연의」
연재 당시 발간한 「봉신연의」(왼), 2018년 발간한 「봉신연의」 애장판

후지사키 류 작가의 「봉신연의」는 동명의 중국 고전 소설을 바탕으로 한다. 정확히는 그것을 옮긴 일본 번역판이 바탕이다. 비유를 하자면 ‘삼국지’ 하면 삼국지 정사보다 ‘삼국지연의’를 떠올리는 것처럼, 일본에선 아노 츠토무가 새로 쓴 버전이 유명하고 이 작품 역시 이것을 토대로 출발한다.

「봉신연의」의 내용은 이렇다.(중국 고전 소설 포함) 은나라가 주왕의 폭정으로 망조를 보이자 선계에서 직접 태공망을 파견한다. 주왕을 홀린 선녀 달기를 무너뜨리고 인간계를 혼란스럽게 한 요괴들의 혼을 거둘 것. 그리고 은나라의 빈자리를 이어갈 왕조를 세울 것. 태공망은 당시 최고의 충신이자 올곧기로 유명한 희창을 돕게 된다.

「봉신연의」
「봉신연의」
미소녀 달기는 주왕을 홀려 각종 패악질을 한다.
충신 희창조차 끝내 태공망의 설득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
충신 희창조차 끝내 태공망의 설득에 넘어갈 수밖에 없는 당시의 상황.

고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니 무협물을 떠올리기 쉽지만, 「봉신연의」는 그보다 판타지나 SF물에 가깝다. 각 선인들은 자신만의 무기 ‘보패’를 가지고 있는데 이것들은 강력한 무기 이상으로 인간이나 날씨를 조종하는 등 당대 기술을 초월하는 오버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다. 어떻게 보면 배틀물의 정석으로 보이나 이것이 「봉신연의」의 차별점이다. 수많은 과학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봉신연의」는 보패를 이용한 기상천외한 전략이나 전투 장면을 펼치는 것을 넘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복선을 구성한다. 재미를 위해 구체적인 설명은 피하지만, 이런 이유로 배틀물에거 자주 맞닥뜨리는 이른바 ‘파워 인플레’ 문제를 그럴싸하게 피해가는 편이다.

또 「봉신연의」는 고전 소설을 토대로 한 만큼,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가 구구절절 강렬하다. 이 이야기엔 거의 모든 인간관계가 등장한다. 왕과 신하, 스승과 제자, 가족, 사랑하는 연인, 창조자와 피조물 등등. 그리고 그들의 관계는 ‘망조의 왕조와 혁명의 집단’이란 대의적인 움직임 속에서 변화한다. 모험물처럼 유쾌하게 막을 올린 「봉신연의」는 회차를 거듭할수록 끝내 모두가 살아남을 순 없는 전쟁과 정세의 잔학함을 인물들의 서사로 녹여낸다. 최근 소년만화에서 일종의 클리셰 비틀기에 치중한 나머지 캐릭터성을 붕괴시키는 것과 달리, 「봉신연의」는 캐릭터 성격에 기반해서 플롯 비틀기를 적절하게 끄집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하여 전개의 완성도와 캐릭터의 매력 모두 챙긴다.

「봉신연의」
「봉신연의」
주인공 태공망의 서사만큼 독자들이 사랑하는 황비호-문중의 서사. 친우였던 두 사람은 세계의 변화에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게 된다.

꽤 오랜만에 「봉신연의」를 마주하게 되면서 드는 생각은 작품마다 그 생명력은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단언컨대 「봉신연의」는 지금 나오는 웬만한 만화들과 비교해도 우위다. 정말 개인적인 의견을 보탠다면, 「강철의 연금술사」 못지않게 모험극의 형식을 바탕으로 철학적이면서도 수려한 작화, 인상적인 캐릭터성, 인간 군상의 묘사를 모두 갖춘 작품이라 평하고 싶다.

이 악랄해보이는 인간이 놀랍게도 주인공 태공망이다.
이 악랄해보이는 인간이 놀랍게도 주인공 태공망이다.

그러나 지금의 「봉신연의」 인기를 생각해보면 연재 전후로 누린 것에 비해 아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현재 대중적이라고 말하기엔 파는 사람만 파는, 아는 사람만 아는 작품인 것처럼 느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최소 7번은 본 나조차도 ‘맞아, 이런 걸작이 있었지’라며 추억 속에서 더듬어볼 뿐이니까. 아마도 그것은 이 만화가 그만큼 잘 닫혔기에 그런 걸지도, 연재 기간이 인기에 비해 짧았기에 그런 걸지도, 후지사키 류의 작화가 이제는 시대와 맞지 않아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문득 굿즈화하기 참 어려운 복식과 화풍 때문인가 싶다).

인기가 여전하지 않는다 해도, 「봉신연의」는 꼭 한 번쯤 읽어주었으면 한다. ‘여기 중 하나는 네 취향이겠지’ 급인 각양각색의 캐릭터, 충과 민심의 대립, 섬세하면서도 대담한 광기의 묘사, 무엇보다 왕조의 교체로부터 시작해 상상도 못한 스케일까지 뻗어나가는 전개 등 작품의 매력은 시간을 뛰어넘어 여전히 숨 쉬고 있다. 후지사키 류의 개그 센스는 덤이다. 연재 당시 23권으로 완결됐으나 현재는 대원씨아이에서 18권짜리 애장판을 발간했다. 쭉 늘어놓으면 하나의 일러스트로 완성되는 표지를 감상하며 인간계, 선계를 오가는 서사시를 만나보시라.

※ 참고로 두 차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으나, 추천하진 않는다. 두 편 모두 급전개로 원작의 전개를 담는 데 실패했다.

영화 속 물건들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주성철의 사물함’을 시작으로 떡상을 기대하는 배우 사용 설명서 ‘김지연의 보석함’, 내 마음을 움직인 영화음악 감상실 ‘추아영의 오르골’, 서브컬처 잡상인의 구매일지 ‘성찬얼의 만화책’까지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저마다의 취향과 시선으로 격주 연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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