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JIFF]분량은 입문용인데 내실은 고봉밥! 라두 주데식 세상 들여다보기… 개막작 〈콘티넨탈 '25〉 리뷰

〈콘티넨탈 '25〉
〈콘티넨탈 '25〉

 

이번 26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선택한 개막작은 <콘티넨탈 '25>. 루마니아 영화감독 라두 주데의 신작으로 제75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베를린영화제에서 이번 각본상뿐만 아니라 감독상(<아페림!>), 황금곰상(<배드 럭 뱅잉>)을 수상한 라두 주데는 새 시대의 거장으로 촉망받는 감독이지만, 국내는 여전히 낯선 감독이다. 그동안 정식 개봉한 영화가 <배드 럭 뱅잉> 단 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배드 럭 뱅잉〉
〈배드 럭 뱅잉〉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

 

 

이는 라두 주데의 작품을 관통하는 동시대성, 지역성, 광범위한 지식을 요하는 현학성 때문이다. 그의 작품은 파격적인 설정이나 캐릭터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그로 인한 이야기의 변곡점보다 이어지는 상황 속 인물들의 모습이나 대사로 많은 것을 전한다. <배드 럭 뱅잉>은 섹스 비디오 유출에서 시작하지만, 선형적인 전개로 사건이 해결되거나 인물이 파멸에 치닫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통상 관념 사전」 형식을 인용해 다수가 저지르는 폭력을 지적하고 수많은 가능성을 제시하는 구성으로 이야기 전체를 하나의 알레고리로 변형시키기도 한다. 2023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지구 종말이 오더라도 너무 큰 기대는 말라>는 반대로 그저 평범한 노동자의 이야기인데, 이 노동자가 디지털 필터와 SNS를 사용해 마초적이고 폭력적인 발언도 거침없이 하는 가상의 인물 ‘보비타’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평범하지 않다. 여기서 라두 주데는 노동자의 반복적이고 다소 무의미한 시간을 체험시키면서 동시에 SNS 시대의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이처럼 라두 주데의 작품은 평범하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지지도, 쉽지도, 이해 불가하지도 않은, 정의 불가능한 기묘한 위치에 서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동시대성을 활용해 과거-현재로 이어지는 특정한 지점을 관객들 눈앞에 들이미는 방식의 날카로움은 라두 주데의 인장이 확실하다.

 

 

〈콘티넨탈 '25〉
〈콘티넨탈 '25〉

 

<콘티넨탈 '25>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는 철거집행관 오르솔리아(에스테르 톰파)가 노숙자의 자살을 목격한 후 겪는 방황기라고 봐도 무방하다.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는 상사의 말에도 오르솔리아는 자신의 업무 중 스스로 세상을 떠난 노숙자에게 죄책감을 갖는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이 집행관이 사람의 온정을 통해 다시 회복하거나, 아니면 그 트라우마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하는 전개로 드라마를 전개하리라. 그러나 라두 주데는 이 이야기에도 수많은 렌즈를 들이민다. 직접적으로 챕터 형식을 차용하지 않으나, 가족 휴가를 포기한 오르솔리아가 여러 사람을 만나는 과정에서 대화의 소재나 방식 등을 변화시켜 계속 새로운 시선으로 환기한다.

 

다양한 건축물과 동상, 현 루마니아 정권,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헝가리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선불교, 기부, 정교회… 영화가 제시하는 수많은 텍스트와 이미지는 (라두 주데의 다른 영화들처럼) 단번에 읽어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영화 속 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직접적으로 드러낸 것만 해도 이처럼 다양하다. 노숙자가 루마니아인이고 철거집행관이 (루마니아에서 거주하나) 헝가리인이란 점을 이용해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매체를 비롯해 루마니아-헝가리의 지난한 역사성이 제시되는가 하면, 러-우전쟁의 실제 영상을 제시해 현재 전 세계의 위기를 지목하고, 오르솔리아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각 개개인이 취하는 다소 위선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콘티넨탈 '25〉
〈콘티넨탈 '25〉

 

라두 주데는 어김없이 <콘티넨탈 '25>에서도 자신이 보는 세상을 통째로 담아내려는 과감한 시도를 이어간다. 오르솔리아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관객은 축적된 시간의 연대에서 역사를 읽을 수도, 현시대를 관통하는 매우 극단적이고 극렬한 정치 태세를 느낄 수도, 관객 본인도 알지 못한 개인 심연의 복합성을 간파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세계가 비루한 인생을 담보로 삼아 얼마나 추잡하게 세워졌는지 그 비극을 절감할지도 모르겠다.

 

이렇듯 <콘티넨탈 '25>는 라두 주데 영화 중 짧은 편(109분)에 속해 입문에 적합하지만 그 내실만큼은 전작들 못지않다. ‘모든 생명은 공평한가’라는 아주 고전적인 질문부터 현 사회의 미래지향적이나 온정 없는 개발 정책까지, 보편적인 물음부터 국부적인 물음을 아우르는 <콘티넨탈 '25>는 구체적인 엔딩의 순간을 제시하는 대신, 수많은 건축물의 나열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노숙자가 머무르던 곳은 철거되고 콘티넨탈 호텔이 세워질 예정이었다. 마치 다이렉트 시네마를 연상시키는 엔딩 몽타주는 영화의 도화선이 된 노숙자의 죽음과 연결하면 그 의미가 또렷해진다. 그렇다고 거기서 세상을 향한 맹렬한 힐난은 느껴지지 않는다. 라두 주데 감독이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이, 우리 세상의 복합성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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