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본 사람 없게 원 모어 타임… 〈더 폴: 디렉터스 컷〉을 사랑하는 이유

볼 사람은 다 봤다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는 그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이 마침내 OTT로 서비스 중이다. 2009년 개봉 이후 15년 만에 다시 극장에서 상영된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은 18만 관객을 동원하며 역주행에 성공했다(첫 개봉 당시를 포함하면 21만 명 돌파). 타셈 싱 감독의 대표작이자 최고작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걸까. OTT 입점을 기념하며 <더 폴: 디렉터스 컷>(이하 <더 폴>)이 관객을 사로잡은 점이 무엇인지, 이야기 측면에서 접근했다.

※ 아래 내용은 <더 폴>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다.


실패의 드라마

〈더 폴〉오프닝 장면
〈더 폴〉오프닝 장면

잔잔한 수면, 그 아래에서 한 사내가 튀어나오며 파문이 일어난다. 베토벤 7번 교향곡 2악장 알레그로가 흐르는 가운데 고속촬영으로, 무언가 분주한 움직임들이 자세하게, 전체적인 풍경이 파편적으로 묘사된다.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이 광경은 스턴트배우 로이(리 페이스)가 스턴트를 수행하던 중 실패해 부상을 입은 순간이다. ‘더 폴’(추락)이란 제목이 암시하듯 이 영화는 처음부터 실패한 광경을 담는 것으로 문을 연다.

영화는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 두 인물의 이야기지만, 로이의 시점에서 시작하므로 그의 시점을 따라가보자. 로이는 이 치명적인 부상과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을 감당하기 힘들다. 일찍이 체념한다. 우연히 자신을 찾아온 알렉산드리아에게 그 이름의 모티브인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선심을 베푸는 듯하지만, 처음부터 그의 꿍꿍이는 알렉산드리아가 자신의 숨을 끊어줄 약을 구해오도록 하는 것이다.

〈더 폴〉 로이(왼, 리 페이스)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
〈더 폴〉 로이(왼, 리 페이스)와 알렉산드리아(카틴카 언타루)

돌이켜보면 로이는 실패와 분리할 수 없는 사람이다. 스턴트배우는 ‘실패’에 따르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실패하면 위험한 일을 실패하다가 성공해내야 하는 일이다. 그는 언제나 실현될 수 있는 가정으로서 실패를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의 실패를 감당하지 못한다. 실패를 감수하는 일에 익숙한 그라도, 실패하고 싶지 않은 일에 실패하는 것(사랑)과 실패해선 안될 것을 실패하는 것(스턴트) 모두 이겨내기란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그는 실패를 이겨내기보다 자신을 내던지기로 결심한다. 우습게도 그렇기 위한 자살조차도 끊임없이 실패하지만.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에게 약을 가져오게 하는 것도 실패하고, 알렉산드리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자신이 원하는 결말로 매듭짓는 것도 실패한다. 그의 시점에서 보면 <더 폴>은 실패 그 자체이다. 실패한 업무, 실패한 사랑, 실패한 삶. 그런데도 그는 마지막에 웃게 된다. 그런 실패들이 거듭되면서 알렉산드리아와 가까워지고, 두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세계-이야기가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자신의 실패를 온전히 짊어지기 어려운 로이였지만 (비록 가상의 이야기라도) 알렉산드리아와 공통의 정서를 공유하는 과정은 책임감을 일깨우는 과정이었다. 일견 죄책감에서 그칠 뻔한 그 감정은 그러나 “우리의 이야기”라는 알렉산드리아의 일갈로 행동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수용의 태도로 변화한다.

〈더 폴〉
〈더 폴〉

<더 폴>은 실패를 말한다. 그러나 실패만 말하지 않는다. 실패가 결과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결과를 불러오는 원인이 돼 우리 발아래 지평을 넓히는 것을 (로이와 알렉산드리아가 이야기로 이어졌듯) 이야기로 보여준다. 영화는 둘의 관계가 이후에도 지속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영원한 우정, 영원한 사랑, 새로운 삶을 이어갈 유사 부녀 관계가 목표라면 이조차도 실패다. 대신 마지막 시퀀스를 통해 말한다. 실패할 용기를 낸 로이는 언제나 알렉산드리아 곁에 있다고. 실패할 결심을 한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와 관객들)에겐 최고의 즐거움을 안겨준다고. 그러므로 <더 폴>은 우리에게 실패를 외면하라 하지 않는다. 실패하고, 나아가라고 말한다. 그것이 언제나 성공을 외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관객들에게 꽤 깊은 잔상을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낙관의 소통

〈더 폴〉
〈더 폴〉

물론 <더 폴>이 이렇게 삭막하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현실의 실패를 절절하게 조명하는 로이의 시점 건너편엔 알렉산드리아의 낙관성이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순수함과 낙관은 일견 알렉산드리아가 아닌 ‘아이’의 속성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또한 지독한 사건(아버지의 사망과 도둑의 습격)을 겪은 바 있다. 하물며 그 어린 나이에 오렌지를 따다 떨어져 입원한 것이다. 비록 그 높이는 다를지라도, 알렉산드리아 역시 ‘추락’을 경험한 것이다. 그럼에도 알렉산드리아는 주눅 들지 않는다. 부상의 심각성이나 심리적 상흔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알렉산드리아의 낙관적인 태도는 그 자신의 성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호기심을 원동력 삼아 끊임없이 외부 세계와의 소통한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았든 이 소통은 로이의 관심을 끌게 되고, 로이는 자신만의 목적을 위해 기꺼이 알렉산드리아와 소통(을 위장한 조종)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내면에서 확고한 답을 내린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와 이야기로 소통하는 만큼 그의 낙관성에 조금씩 전이된다. 반대로 알렉산드리아는 그의 절망에 전이되고, 자신이 경험했었지만 덮어두었던 감정을 떠올린다. 그렇기에 이야기를 듣고 싶은 호기심을 넘어 로이를 위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약을 구하려고 한다.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알렉산드리아가 크게 다치는 부상을 입게 되며 로이는 관계를 완전히 닫는(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결정을 내리려 한다.

〈더 폴〉
〈더 폴〉
〈더 폴〉
〈더 폴〉

그러나 이야기 형태로 소통해왔던 알렉산드리아는 그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끊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당신의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도 하다는 말 아래엔, 우리가 해왔던 ‘소통’은 결코 직선적인 형태가 아니었다는 의미가 새겨져 있다. 결국 로이 역시 자신 때문에 다친 알렉산드리아에게, 그가 지금도 품고 있을 꿈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에게 돌아오’는 모습으로 이야기의 끝을 맺어준다. 알렉산드리아의 호기심이 없었다면, 혹은 특유의 낙천성이 없었다면 이 영화는 막을 올리지조차 못했을 것이다. 로이의 행적 또한 결코 이렇게 다다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아름다운 소통은 알렉산드리아-로이를 넘어 이야기의 외면, 영화 제작진과도 이어진다. <더 폴>은 익히 알려진 대로 CG나 세트가 아닌 현실의 명소들을 풍경으로 삼는다. 타셈 싱 감독은 ‘CG보다 실제 현장이 오래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그 저변엔 이 아름다운 ‘소통’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로 채우고 싶은 소망이 있었으리라. 거짓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두 인물의 삶을 뒤바꾸는 교류로 거듭나듯, 제아무리 거짓인 영화라도 실제의 아름다움으로 그것을 채우면 관객과의 교류로 거듭날 것이란 믿음이 아녔을까. 그렇기에 4년이란 시간을 이곳에 부었던 것 아닐까. 이것이 영화가 완성된 지 20년이 다 돼가는 지금, <더 폴>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映画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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