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네루다. 자국 칠레는 물론 20세기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히는 시인이다. 열세 살때부터 신문에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던 네루다는 초현실주의와 성적 표현이 두드러지는 사랑 시를 비롯한 역사적인 서사시, 정치 선언문 등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문학적 스펙트럼을 자랑했다.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공산주의 정치가이기도 했던 그는 세태에 대한 아름답고 정확한 비판을 던지면서, 칠레 내에서 전국민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1945년 여름 브라질, 사회주의 혁명가 루이스 카를로스 프레스테스를 기념하기 위한 낭송회에선 1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들었을 만큼 그를 향한 지지는 어마어마했다. 1971년엔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토니 마네로>(2008), <더 클럽>(2015) 등을 거치며 남미권 대표 감독으로 성장한 파블로 라라인은 2016년 실존인물을 그린 두 편의 영화를 나란히 내놓았다. 작년 5월 칸 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된 <네루다>와 9월 베니스 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재키>가 바로 그것. 현대사에서 큰 존재감을 뽐내는 이들이라는 희미한 공통점을 제외하면 접점이 희박한 두 인물을 그린 영화는, 제작된 나라부터 극중에서 구사하는 언어, 영화적인 스타일까지 상당히 다르다. <재키>가 백악관에서 어떻게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남편을 잃은 뒤 어떤 표정으로 그 고통을 견뎌냈는지, 재클린 케네디의 모습을 폐소공포증적인 공기로 지켜본다면, 추격전의 서사로 진행되는 <네루다>는 네루다와 그를 쫓는 경찰이 서로 쫓고쫓기는 과정을 보여주면서도 그 안에서 민중과의 공존을 새기고자 애쓴다. 칠레의 새로운 거장 '파블로' 라라인이 그려내는 칠레의 위대한 정신 '파블로' 네루다는 어떤 모습일까.
영화는 네루다가 상원 연설에서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급되고 공산당이 불법 단체라는 판결이 내려지자 망명길에 오른 1948년을 배경으로 한다. 당당하게 걸어들어오는 네루다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네루다>는 군중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존경을 받으며 저 유명한 시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를 읊는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 모습을 설명하는 내레이션이 붙지만 그 주체는 화면에 없다. 네루다가 망명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10분간의 신들을 보여준 후에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오스카. 네루다를 잡아오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받은 경찰이다. 그렇게 <네루다>는 예술가이자 정치인 네루다와 그를 쫓는 경찰 오스카의 추격전을 펼쳐보이기 시작한다.
<네루다>는 정부의 추적을 피해다니는 고난 속에서도 그 위대한 정신을 갈고닦아 칠레 민중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는 류의 전기가 아니다. 파블로 라라인은 네루다의 망명 여정을 그를 추적하는 경찰 오스카의 독백으로 서술함으로써 한 시인의 거대한 예술혼을 무조건적으로 추앙하는 손쉬운 길을 외면한다. 대신 네루다에 대해 끊임 없이 혼잣말을 되뇌는 오스카의 시선을 겹쳐놓으면서 네루다를 특정한 면모에 가두지 않고자 애쓴다. <네루다> 속 네루다는 시를 낭독하기 위해 종이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좌중을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졌지만, 정착하지 못한 채 늘 도망다녀야 했고, 사람들이 돌아간 후에는 아내 델리아의 품에서 창작과 도주의 고통을 위로받는 사람이다. 영화는 그를 완벽한 사람으로 '보여'주지 않는다. 하지만 오스카 앞에서 네루다를 떠올리는 사람들은 "코앞에서 그를 보는 건 마술 같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흥미로운 건 네루다를 추적하고 그에 대해서 떠들어대기를 '멈출 수 없는' 오스카가 실존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때문에 영화가 그리는 '역사적 사실'은 네루다가 1948년 망명을 시작했다는 것까지만 유효하다. <네루다>는 분명 추격전의 외피를 띄고 있지만, 이 두 주인공이 언제 어디에서 쫓고 쫓겼느냐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오스카의 추적은 차라리 "네루다는 매혹적인 인물"이라는 점을 끊임 없이 상기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오스카가 네루다를 쫓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텅 빈 네루다의 집 안을 둘러보며 도주의 실마리를 잡기는커녕 경탄의 표정을 띈 채 주변을 감상할 뿐이다. "말도 다 못할 만큼 아름다운 집"이라고 회고하면서 말이다. 관객들은 머잖아 오스카의 추적이 실패할 것이고, 결국 네루다에게 더 깊게 빠져드는 길만 남았다는 걸 직감한다. 바로 그 매혹의 팽창을 지켜보는 것이야 말로 <네루다>를 즐기기 위한 최적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라라인이 세공한 격조 높은 리듬이 자연스럽게 그 길로 인도할 것이다. 그 지난한 추적의 끝에 아주 강력한 감동이 기다리고 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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