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옐친. 이 배우의 이름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16년 6월 19일, 그는 경사로에서 뒤로 밀린 자신의 차량에 치여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망 원인도 그러했거니와, 할리우드 톱스타 유망주로 손꼽히던 배우였기에 그의 죽음은 더 황망하게 다가왔죠.

TV 드라마 <ER>, <테이큰>

안톤 옐친은 러시아의 유명 피겨 스케이터 부모님 아래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부모님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죠. 부모님에 이어 스케이팅을 가업(!)으로 물려받으려 했으나...! 스케이팅은 그의 취향도 아니었을뿐더러 타고난 실력도 없었습니다. 대신 그는 영화에 빠져들었죠. 12살의 나이에 <시계태엽 오렌지>에 사로잡히고,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온갖 영화를 섭렵했다는 그! 그해 드라마 <ER>의 한 에피소드에 출연하며 연기 데뷔를 치르고, 이후 성인이 될 때까지 매해 평균 3~4 작품에 출연했습니다. 안소니 홉킨스와 호흡을 맞춘 <하트 인 아틀란티스>, 로빈 윌리엄스와 함께 출연한 <하우스 오브 디> 등은 어린 시절부터 빛나는 그의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죠.

스크린에 새겨진 안톤 옐친의 성장기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더 맹렬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엔 무려 9편의 작품에 출연했고, 이후로도 한 해에 6~7편씩의 작업을 이어갔죠. 그가 세상을 떠났던 27살의 나이엔 무려 65건의 필모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가 남긴 가장 유명한 캐릭터는 <터미네이터> 시리즈 속 '카일 리스'와 <스타트렉> 시리즈 속 막내 항해사 '체코프'죠. 독특한 러시아 억양이 인상 깊었던 항해사 '체코프'는 누구에게나 호감인 캐릭터였습니다. 작년 <스타트렉 비욘드>의 개봉을 앞두고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팬들의 상심은 더 클 수밖에 없었죠.

늘 "연기를 하는 것이 행운"이라 언급했던 안톤 옐친. "재미있고 복잡하며 매혹적인,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던 본인의 신조처럼, 상업 영화와 인디 영화를 가리지 않고 본인의 필모를 차곡차곡 쌓아갔습니다. 대형 프랜차이즈물에서도 빛났지만, 특정 캐릭터로만 기억되기엔 아쉬운 이 배우. 국내에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의 진가가 드러났던 몇 작품을 소개합니다.


알파 독(2006)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영화! 안톤 옐친은 마약 딜러 조니(에밀 허시) 일당에게 납치된 잭을 연기합니다. 아역 배우였던 안톤 옐친이 본격 성인 배우로 넘어서기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 작품이었죠.

찰리 바틀렛(2008)

<찰리 바틀렛> 이후 안톤 옐친은 본격적으로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안톤 옐친이 연기한 찰리는 엄청난 사고뭉치지만 영민한 사고를 지닌 소년이었죠. 안톤 옐친은 어쩌면 하이틴 영화 속 전형(!)이라 볼 수 있는 찰리를 입체적인 캐릭터로 재탄생시켰습니다. 호평과 동시에 흥행도 잡아낸 작품이죠.

라이크 크레이지(2011)

이미 마니아들에겐 유명한 영화입니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한 커플의 시작과 끝을 담아냅니다. 시간이 지나고,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흐릿해질 수밖에 없는 사랑. 이미 끝난 걸 알면서도 끝낼 수 없는, 씁쓸한 사랑의 단면을 조명한 작품입니다. 수많은 감정을 담아내던 안톤 옐친의 눈빛이 인상 깊은 영화죠.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2013)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틸다 스윈튼, 톰 히들스턴의 퇴폐미 끝장나는 영화로만 기억하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만, 안톤 옐친의 매력도 눈에 띄는 영화였습니다. 그는 뱀파이어들만의 오묘한 분위기를 동경하는 인간 이안을 연기했죠. 쿨내 진동하는 뱀파이어들 사이에서 통통 튀던 그의 캐릭터는 관객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린 룸(2015)

<그린 룸>은 스릴러물입니다. 자신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네오 나치들에게서 탈출하려는 록 밴드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안톤 옐친은 네오 나치들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공연을 하게 된 록 밴드의 리더 패트릭을 연기합니다. 극중 네오 나치의 수장으로 등장하는 패트릭 스튜어트와 맞먹는 에너지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죠. 물오른 그의 연기력이 빛난 영화였습니다.


<스타트렉> 시리즈는 '체코프'의 자리를 비워놓은 상태로 그를 추모할 예정입니다. J.J. 에이브럼스 감독은 "누구도 그를 대체할 수 없으며 (체코프의) 재캐스팅은 없을 것"이라 밝혔습니다.

<포르토, 나의 사랑>
<서러브레드>

국내엔 아직 공개되지 않은 그의 작품들이 남아있습니다. 런던 국제 영화제,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었던 <포르토, 나의 사랑>, 안야 테일러 조이와 함께 출연한 스릴러 <서러브레드> 등이 있죠. 그가 목소리 연기를 맡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트롤 헌터> 시즌 2 또한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생전에 시즌 2의 목소리 녹음을 마쳐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출연진 교체 없이 그의 목소리를 그대로 만나볼 수 있다고 하네요. 우리에게 보여줄 새로운 모습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이 배우, 1주기가 돼도 그의 죽음이 제대로 실감나지 않는 이유일 겁니다.


씨네플레이 에디터 유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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