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탤론과 슈왈제네거, ‘머슬’들의 연대기:〈슬라이〉(2023) vs.〈아놀드〉(2023)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라이벌이자 액션영화의 양대 산맥이었던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실제로 나이(각각 77세, 76세), 데뷔 연도, 작품 편수 등 많은 부분에서 서로를 닮았다(전성기였던 1980년대에 그들은 앙숙으로 지냈지만 지금은 서로를 응원하는 좋은 동료로 남았다). 다만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두 배우의 첫 커리어인데, 스탤론은 <이탈리아 종마>(The Party at Kitty and Stud's, 1970)라는 소프트코어 포르노 영화로 데뷔했고, 슈왈제네거는 보디빌더로 커리어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두 명의 지향점이 달랐지만, 이들은 1980년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머슬’ 들로 부상했고 각각 액션 영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람보> 시리즈(1982-1988)와 <코만도>(1985)의 주인공으로 활약했다.

최근에 공개된 <슬라이>('슬라이'는 스탤론의 애칭이다)와 <아놀드>는 미국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액션 영화의 전성기와 산업, 그리고 그 두 주역, 실베스터 스탤론과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다. <슬라이>는 한편의 장편 다큐멘터리로, <아놀드>는 3부작 중편 다큐멘터리로 구성된 다큐 시리즈다.

 

 


슬라이

 <슬라이>는 올해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로 상영된 작품이다. 영화는 스탤론의 어린 시절부터 쿠엔틴 타란티노를 포함한 그의 동료들의 인터뷰들까지, 전형적인 할리우드 배우의 인물 다큐멘터리 포맷으로 구성되어 있다.

돌이켜 보면, 나 역시 그의 강건한 몸과 외모를 흠모했던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사실상 한 번도 스탤론을 ‘진정한 배우’로 인식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다큐멘터리 <슬라이>는 나와 정확히 같은 생각을 가졌던 모든 이를 부끄럽게 할 만한, 다시 말해 배우로서, 작가로서의 스탤론이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뉴욕 맨해튼 헬스 키친 출신의 스탤론은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어린 시절 그가 트러블 메이커로 살 수밖에 없었던 가장 중추적인 이유는 고문에 가까웠던 가정 폭력이었다. 수많은 학교를 전전했던 스탤론은 오랜 기간 방황하다가 결국 마이애미 대학교에서 연기 전공으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그는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하게 된다. 늘 능력을 인정받지 못했던 그에게 어느 날,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을만한 작은 만남이 생긴다. 그의 연기를 지켜보던 하버드 대학교수가 리허설을 마친 그에게 찾아와 “너에게 뭔가 대단한 것이 있다. 난 그것을 봤으니 연기를 직업으로 생각해 볼 것”을 귀띔해 주고 떠났다는 것이다. 이 작은 칭찬이, 혹은 스탤론에게는 누구도 해주지 않았던 이 거대한 찬사가 이후 그의 일생을 바꾸었다는 일화는 다큐멘터리 <슬라이>의 스탤론이 회고하는 가장 결정적이고 애잔한 대목이다.

 

이후 그는 뉴욕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연기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다. 놀라운 점은 그가 연기만 시작한 것이 아닌, 연극과 영화의 스크립트를 쓰고, 단편 영화를 연출하는 등 영화에 관련한 가장 주요한 창작활동에 도전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작가로서, 배우로서 스탤론의 대표작인 <록키>시리즈(1976-2006)는 그러한 스탤론의 노력과 재능의 취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슬라이>는 부풀려진 몸과 액션 이미지로 스탤론이 얼마나 지난하고 힘든 과정을 거쳐 ‘배우’로 인정을 받게 되는지 기록한다. 특히 20kg 이상을 증량하고 출연한 제임스 맨골드 연출의 <캅랜드>는 스탤론을 그가 발휘한 치열한 연기로, 그리고 완전한 배우로 인식하게 한 거의 첫 작품이자 터닝 포인트가 되는 영화다.

 

전반적으로 <슬라이>는 단순히 스탤론의 치열한 행보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영화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산업의 중추를 담당했던 액션 스타로서의 스탤론이 아닌, 늘 펜을 놓지 않았던 작가로서의 스탤론, 그리고 연극 무대로 시작해 평생을 연기에 대한 사랑과 집착을 실천하며 살았던 아티스트로서의 스탤론을 재발견, 혹은 재발견할 것을 종용하는 작품이다. 단언컨대, <슬라이>를 보고 나면 스탤론을 두건을 두르고 정글을 누볐던 ‘람보’로 기억하고 싶진 않게 될 것이다.

 


아놀드

 

3부작으로 이루어진 <아놀드>는 배우이자 감독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삶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그의 성장, 보디빌딩에서의 업적, 성공적인 연기 경력, 그리고 정치로의 이행을 연대순으로 기록하는 다큐 시리즈다. 앞서 언급한 <슬라이>가 아티스트로서의 스탤론을 조명하는 작품이라면 <아놀드>는 할리우드 대표 ‘머슬’로 시작해서 정치인으로까지 부상한 슈왈제네거의 다양한 업적을 나열하는 작품이다.

널리 알려진 대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어린 나이(15세)에 보디빌더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세계 유수의 콘테스트에서 수상을 이어가던 그는 1977년 <펌핑 아이언>이라는 보디빌딩 다큐멘터리에서 보디빌더로 출연하게 된다. 이후 그는 보디빌딩에서 완전히 은퇴하고 1982년 <코난 - 바바리안>에서 주연을 맡으며 할리우드에 정식 입성한다.

앞서 언급한 실베스터 스탤론이 (작은 역이나마) 연기에 중점을 두는 역할로 시작했던 반면, 슈왈제네거는 강한 동유럽 악센트와 다년간 다져온 ‘미스터 올림피아’의 몸으로 액션 캐릭터의 역할만 맡을 수밖에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그가 주연한 대부분의 액션 시리즈들이 흥행에 성공했고, 그는 명실공히 할리우드의 액션 스타로 부상했다.

슈왈제네거의 대표작,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액션 스타'로서의 슈워제네거뿐만 아니라, 그를 ‘외로운 영웅'(lone star) 이미지로 각인하게 한 중요한 작품이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슈왈제네거의 거대한 몸과 인조인간으로서의 동심(童心)을 병치함으로써 상업영화에서 가장 처연하고 기억에 남을 캐릭터와 대사("I will be back"), 그리고 전 세대가 기억할 할리우드의 아이콘을 만들어냈다.

총 러닝타임 300분에 이르는 <아놀드>는 각각 “선수(athlete),” “배우(actor),” “정치인/미국인(American)”이라는 3개의 정체성으로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추적한다. 특히 3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역임했던 그의 정치적인 행보와 연루되었던 스캔들까지 비교적 객관적인 시선으로 그의 후반 인생을 그린다. 미국 영화사에서 아마도 가장 큰 시장을 주도했던 액션 스타들이지만, 스탤론과 슈왈제네거가 영화를 해석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매우 다르다. 그런 맥락에서 이들을 비추는 다큐멘터리, <슬라이>와 <아놀드>는 할리우드의 두 아이콘을 통해 아티스트의 삶에 대한 태도와 철학을 드러내는 출중한 텍스트로서 부족함이 없다.

 


김효정 영화평론가

 

 

영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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