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빌보드> 메인 예고편

밀드레드(프랜시스 맥도먼드)는 일곱 달 전 딸 안젤라를 잃었다. 아주 잔인하게 살해당했고, 수사는 지지부진할 뿐이다. 여전히 딸의 죽음에 매달리는 밀드레드는 집에 가는 길가에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광고판 세 개를 보고 시뻘건 배경에 까만 글씨로 큼직하게 “죽어가며 강간당했다” “근데 아직도 범인을 못 잡았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윌러비 서장?”이라고 쓴 광고를 내건다. 경찰을 비롯한 에빙 사람들 대부분이 그걸 달가워하지 않는다. 에빙에서 꽤나 신임이 두터운 경찰서장 윌러비(우디 해럴슨)를 저격하는 문구에 대한 불만이 특히 크다. 심지어 무뚝뚝하지만 듬직한 아들(루카스 헤지스)조차 매일 저 문구를 보고 상처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겠느냐고 따진다. 흑인,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에게 폭력을 일삼는 경찰 딕슨(샘 록웰)은 광고판을 보자마자 노발대발하고 그걸 내리라며 협박한다. 하지만 밀드레드는 그걸 포기할 마음이 절대 없다.

마틴 맥도나와 프랜시스 맥도먼드

마틴 맥도나 감독은 20년 전 버스로 미국 남부를 여행하다가 두 광고판을 봤다. 영화 속 그것처럼 분노와 고통이 가득한 말로 경찰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 광경이 너무 강력한 나머지 좀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지만, 당시엔 이게 이야기나 영화가 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진 못했다. 훗날 어머니인 주인공을 떠올린 후 하나하나 어귀가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저렇게 용감하게 광고판을 내걸 정도로 강인한 여자여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유머와 서늘함이 공존하는 범죄물인 두 전작 <킬러들의 도시>(2008)와 <세븐 싸이코패스>(2012) 속 거의 모든 중심인물들을 남자로 채웠던 마틴 맥도나는, 데뷔 이래 처음으로 여자가 중심에 선 영화를 연출하게 됐다. 물론,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결정이었을 것이다.

정말, 밀드레드는 강해 보인다. 물빠진 점프 슈트를 입고 머리에 반다나를 꽉 둘러매서가 아니다. 딸을 죽인 범인을 찾겠다는 일념을 매일 매순간 되뇌는 그녀는 제 의지를 방해하려 들면 언제든지 상대를 들이받을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폭력과 외도를 일삼던 전남편이 두고 간 트레일러를 팔아 광고판을 세웠을 때, 하필 그것이 저격하는 윌러비 서장이 암 투병중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밀드레드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세진다. 그리고 그녀의 생활은 구체적으로 위협당한다. 영화는 밀드레드가 그런 악다구니를 다지기 위해 슬픔을 짓누르면서 마음을 가다듬는 순간들을 잊지 않고 보여준다.

<쓰리 빌보드>에 탄복할 수밖에 없는 건, 사람 마음의 여러 양상을 보여주는 데에 있어 그다지 긴 호흡을 할애하지 않고도 그 변화를 민첩하게 설득해낸다는 점 때문이다. 금방이라도 눈앞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태도의 밀드레드가 어떤 존재를 마주하고 눈물을 흘릴 때 정서의 전환은 분명 갑작스럽지만, 관객은 속절없이 억장이 무너질 듯한 심정에 공감하게 된다. 대사로만 언급되는 안젤라의 죽음이 러닝타임 내내 영화를 떠돌고 있으니까.

한편, <쓰리 빌보드>는 반전이 많은 영화다. 안젤라의 죽음에 대한 수사는 여전히 묘연한 가운데,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주장하며 점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밀드레드와 그걸 대하는 주변 인물들의 태도와 처지의 변화가 끊임없이 서사의 구간들을 만든다. 그게 아주 촘촘해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이들에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소개해야 할지 몰라 최대한 설명을 아끼지만, 밀드레드와 에빙 사람들의 이야기는 많은 순간 예상을 빗나가면서 용서와 구원에 관한 묵직한 깨달음을 던진다. 지독히 현실적이어서 더 웃긴 상황과 대사에 폭소를 터트리다가도 어느새 자세를 고쳐잡고 인간의 삶에 대한 진중한 시선을 곱씹게 된다. 

<쓰리 빌보드>는 배우들의 연기 격전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딸의 죽음에 관한 슬픔, 미안함, 분노 등 수많은 감정이 엉켜 있는 밀드레드의 심정은 심드렁한 얼굴만으로도 온갖 감정을 드러낼 줄 아는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표정을 통해 완전히 전달된다. 행동의 명도를 뚜렷하게 조정하지 않고 밀드레드가 품은 마음의 거센 진폭이 영화 전체를 뒤흔든다.

윌러비 서장 역의 우디 해럴슨 역시 짧지만 뚜렷한 인상을 남긴다. 독특한 억양과 제스처로 인물의 독특한 성격을 드러내오던 해럴슨은 힘을 쫙 던 채 죽음을 앞둔 경찰서장의 딜레마를 표현한다. 지지부진한 수사 결과에 무력하기만 한 상황을 보며 암 투병 중인 걸 뻔히 알고서도 자신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밀드레드
를 헤아려야 하는 복잡다단한 심경이 퇴장 이후에도 영화를 맴도는 것 같다.

샘 록웰이 다소 낯선 관객들은 폭력과 차별주의로 똘똘 뭉친 경찰 딕슨을 보면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기억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늘 공격적인 표정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죄책감 없이 에빙의 사람들을 위협하는 록웰의 모습은 비호감 그 자체다. 밀드레드와 윌러비 서장의 갈등처럼 보이던 영화는, 저 멀리서 겉돌던 딕슨을 점차 이야기의 중심으로 끌고 오면서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아간다. 그 드라마틱한 변화의 일등공신은 단연 록웰의 연기다.

쓰리 빌보드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우디 해럴슨, 샘 록웰

개봉 2017 영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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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에디터 문동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