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드 러너 2049> 포스터

사전적인 의미에서 철학이란 인간이나 세계에 대한 지혜와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크게 보면 세상 전반의 진리를 인식하는 학문이라고 보고 따라서 모든 학문의 기원이라 봐도 무리는 없겠다. 고대 그리스 로마로부터 보통 철학이란 학문이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철학 역사에 관한 책들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바로 중세를 이어 현대까지 이어오는 철학의 흐름이라는 것이 적어도 반 이상, 보는 시점에 따라서는 90% 이상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의 해석과 시점 변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견해를 가진 철학자들이 나름 있다는 것.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그리고 그 속의 고민거리라는 것들이 예나 지금이나 딱히 달라진 것이, 또 달라질 것이 없다는 뜻도 되겠다.

이런 철학에서 다루는 것들은 무척이나 많겠지만 그중 가장 자주 등장하고 우리네 철학과 그다지 인연이 없는 사람들도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근원적인 공포는 아마도 존재 소멸’, 즉 죽음에의 공포가 아닐까 한다. 한 객체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는 누구도 느끼지 않지만 나라는 존재가 소멸한 다음의 세상으로 모르는 것에 대한 공포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뜻이다. 태어나기 전이나 죽은 뒤나 내가 없기는 매한가지일 텐데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지옥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일 텐데, 이런 존재에 대한 여러 의문들은 바로 근원적인 것이기에 여러 문학과 예술작품 속에 다양하게 인용되어 왔다.

그러다 기술이 발전되고 영화라는 장르가 생기면서 인간은 자기 존재에 대한 생각을 영화 속에서 인간을 닮은 객체에 투영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글을 썼던 <그녀>(Her)라는 영화도 그랬고, 30년도 전 80년대 초반에 제작되었던 <블레이드 러너>가 그랬고 지금 언급할 <블레이드 러너 2049> 역시 존재와 영혼, 그리고 그 속에서 고민하며 소멸해 갈 우리 인간 객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2049>1980년대 초반 발표된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작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소위 블록버스터 문법을 따르지 않는 진중함과 어두움으로 인해 극장에서 그리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하지만 90년대 이후 영화가 재조명을 받으며 속편 제작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끔씩 나오다가 2016년이 되어서야 촬영을 시작해 2017년에 발표되었다.
 
1편인 <블레이드 러너>가 제작된 지 30여 년이 지나 제작된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영화 속 시점 역시 1편의 30년 뒤를 가리킨다. 영화 분위기 역시 1편과 마찬가지로 어둡고 무겁고 뭔가 사이버펑크 분위기를 풍긴다. 근데 그런 분위기에 우리 한글이 크게 일조...

비행기라고 할지 자동차라고 해야 할지… 하여간 영화 첫 장면에서 스피너라 불리는 탈것을 타고 있는 주인공 케이(라이언 고슬링)레플리칸트(안드로이드라고 보면 정확할 것 같다)로서 자기보다 이전에 생산된, 인간의 명령을 듣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구형 레플리칸트들을 제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동족일 수도 있는 다른 레플리칸트들을 제거하면서 인간의 명령을 듣는 케이는 도입부부터 사회에 섞이지 못하고 붕 떠있는 객체로 그려진다. 생태계는 무너지고 예전의 문명과 인공지능 레플리칸트들로 이뤄진 사회 속에서 케이는 마치 영화 <그녀>의 인공지능 연인을 연상하게 하는 조이(아나 드 아르마스)하고만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후 케이는 관련된 일을 계속하다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하는 사건과 맞닥뜨리게 되고 영화 내내 관객에게 존재, 그리고 영혼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케이가 사건을 추적하다 전직 블레이드 러너인 릭(해리슨 포드)를 만난다. 릭은 케이에게 위스키 한 잔을 건네는데 그게 바로 조니 워커 블랙.

영화 속에서 조니 워커 블랙이 나오는 장면

조니 워커는 스카치위스키의 상표다. 조니 워커의 상표를 달고 나오는 위스키는 그린라벨을 제외하면 전부 블렌디드 스카치위스키(싱글 몰트와 그레인위스키를 섞어 만드는 위스키)이며 스코틀랜드 킬마녹(Kilmarnock)에 본사와 양조장을 두고 있다.
 
블렌디드 위스키를 처음 만들었던 존 워커는 14살이던 해(1819)에 아버지를 여의었다고 한다. 가족농장을 혼자 지탱할 수 없었던 존 워커는 농장을 팔고 킬마녹에 가게(grocer’s shop)를 열었다.

킬마녹 가게

당시 킬마녹의 가게들은 가게들마다 싱글 몰트 몇 가지씩을 구비하고 판매를 하고 있었는데 존 역시 처음엔 그렇게 위스키를 팔다가 차를 블렌딩하는 기법을 생각해내고 이를 응용해 위스키를 섞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존이 죽은 뒤 존의 아들인 알렉산더가 이 비즈니스를 대형화시키기 시작했다. 1867년에 알렉산더가 처음으로 위스키를 상업적으로 섞어 ‘Old Highland Whisky’란 이름으로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조니 워커 블렌디드 위스키의 기원이 되었다. 참고로 조니 워커 특유의 4각형 보틀 역시 장거리 운송을 쉽게 하기 위해 알렉산더가 디자인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발렌타인, 시바스브라더스와 더불어 세계 3대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불릴 정도로 다종다양한 위스키들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으며 대표적으로 레드, 블랙, 더블블랙, 블루의 4개 제품이 유명하다.

조니 워커 그린 블랙

실제로 맛을 보면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최대공약수적인 맛을 기가 막힐 정도로 잘 찾은 맛이라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주위에 싱글 몰트를 꽤 오래 마셔온 지인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들에게 블루는 말할 것도 없고 가끔 조니 워커 블랙을 권하면 떨떠름한 표정으로 마신 후 이게 이렇게 좋은 술이었냐며 놀라는 경우가 많다. 그럴 정도로 잘 만들어진 술이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요새 나오는 블랙도 맛있지만 이전, 특히 1980년대쯤에 생산된 조니 워커 블랙은 요새 생산되는 어떤 위스키들보다도 기가 막힌 맛을 자랑한다. 혹시 집에 오래된 조니 워커가 있다면 괜히 동네에 술 산다는 팻말 매달고 있는 차에 가서 헐값에 팔지 말고 주위의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를. 선물 받은 사람은 당신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필자에게 주신다면 당연히 쌩유베리감… 쿠허험.

보통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 현재 개봉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보통은 스토리를 다 적는 편이다. 그게 술을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이 작품은 굳이 그러지 않으려 한다. 결말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 보는 사람에 따라 이 작품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천차만별로 다를 테니까. 마치 영혼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모두 다른 것처럼.

우리는 누구나 세상을 살아간다.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새롭지만 또 그리스 로마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그다지 변하지 않은, 새롭지 않은 생각을 하며 그런 삶을 살아간다. 결국 먼지처럼 떠돌다 먼지로 사라지는 게 삶일 텐데, 그 삶 속 하나하나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 괜찮은 자세가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삶을 행복하게 해주는 작은 요소 중 하나는 맛있는 술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해본다. 혹시 집 술장에 오래된 위스키가 있다면 한번 맛을 보는 건 어떨까. 독하고 쓴 줄만 알았던 위스키에 이런 복잡한 맛이 숨겨져 있었구나 하고 놀라게 될 수도 있으니까. 마치 삶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이왕이면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하면 더 좋을 듯. 오늘 저녁, 위스키와 함께 좋은 저녁 시간 보내시기를.
 
Sláinte!

블레이드 러너 2049

감독 드니 빌뇌브

출연 라이언 고슬링, 해리슨 포드

개봉 2017 영국, 캐나다,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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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 술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