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눈에 반한 상대가, 사실은 악마라면? 8월 13일 개봉하는 〈악마가 이사왔다〉는 낮에는 멀쩡한데 새벽 2시만 되면 사나운 악마로 깨어나는 여자와 얼떨결에 그의 안전을 책임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뤘다. 어떻게 보면 기발하고 어떻게 보면 기괴한 이 이야기, 이상근이란 이름이 붙자 오히려 호기심이 생긴다. 〈엑시트〉로 독창적인 ‘재난 코미디’를 선보였던 이상근 감독의 신작으로 윤아와 안보현이 함께한 이 영화. 독특한 이종 장르 영화가 유독 많았던 이번 여름 극장가의 4번 타자로 타석에 오른다. 8월 6일, 〈악마가 이사왔다〉 사전 시사회로 미리 본 후기를 전한다.
이상근 저 ‘윤아-안보현 사용설명서’

〈악마가 이사왔다〉는 퇴사하고 백수로 지내던 길구(안보현)가 아랫집에 이사 온 선지(윤아)에게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선지의 청초한 모습에 반한 길구는 그러나 새벽에 완전히 돌변한 선지와 마주친다. 꿈이었나 싶었던 것도 잠시, 그의 아빠 장수(성동일)와 사촌 아라(주현영)에게 선지 안에 있는 악마가 새벽마다 깨어난다는 비밀을 듣게 된다. 장수는 길구의 순한 모습에 새벽마다 선지를 감시해달라고 부탁한다.
〈악마가 이사왔다〉에서 단연 돋보이는 부분이라면 안보현과 윤아가 보여주는 케미스트리다. 낮과 밤, 전혀 다른 성격을 보여줘야 하는 선지는 윤아의 도화지 같은 매력에 힘입어 생명을 얻는다. 누구라도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는 화려한 ‘밤선지’, 마치 순정만화에서 나온 것 같은 청순함을 뽐내는 ‘낮선지’ 모두 윤아는 제 옷처럼 소화한다. 스타일링은 물론이고 말투와 제스처까지 두 캐릭터를 차별화해 〈악마가 이사왔다〉의 핵심 콘셉트를 받친다.


안보현은 변화무쌍한 선지에게 끌려다니지만, 이야기의 핵심 서사 또한 끌고 가는 길구를 우직하게 표현한다. 건장한 체격과 선 굵은 얼굴로 남성적인 캐릭터를 자주 맡은 안보현은 길구 역으로 세심하면서도 끈기 있는 내향적인 남성의 매력을 과시한다. 소심하고 남에게 휘둘리는 성격이 답답해보일 수 있는 길구가 이처럼 사랑스럽게 느끼게 하는 건 분명 안보현의 연기와 매력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윤활제 역할을 하는 것은 성동일과 주현영이다. 성동일은 딸 선지를 위해 묵묵히 새벽 산책을 보좌하고, 길구를 쥐락펴락하는 장수를 특유의 캐릭터 소화력으로 그려내 그가 겪어온 시간의 족적을 보여준다. 주현영은 이상근 감독표 언어유희를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로 아라를 표현해 영화에 안정감을 더한다. 두 사람의 연기는 영화의 테마 중 하나인 ‘가족’이란 관계를 와닿게 한다. 다만 두 배우의 출연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라 기회가 된다면 선지 가족이 길구를 만나기 전의 과거사를 풀어주길 바란다.
다시 한 번 청춘의 이야기

이상근 감독은 〈엑시트〉에 이어 이번 〈악마가 이사왔다〉에도 청년의 고충을 녹여낸다. 영화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길구가 왜 백수를 자처했는지 짧게나마 담아낸 영화 오프닝이 인상적이다. 삶의 문제는 복잡하고, 쉴 틈은 전혀 없고, 내 탓은 아니지만 어쩐지 내 탓처럼만 느끼는 사회초년생 길구의 몽타주는 길구의 성격과 현 사회 속 청년들의 고민을 동시에 그린다.
돌이켜보면 이상근 감독의 데뷔작 〈엑시트〉가 지지 받은 이유 중엔 사회에 진입 못한 청년의 고충이 녹였기 때문도 있다. 제때 취업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시당하던 용남(조정석)이 클라이밍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스스로를 인정하는 과정, 그것을 코미디에 녹여낸 것이 〈엑시트〉의 매력이었다. 〈악마가 이사왔다〉는 그와는 사뭇 다르지만, 좌절한 청년이 어떤 사건을 겪으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악마가 이사왔다〉의 이런 부분이 개봉 후 관객들에게 호평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싶다.
이상근 감독의 코미디 감각은 여전하다. 예상치 못한 대사, 캐릭터 간의 대사를 주고받는 리듬, 표정이나 상황으로 이어가는 몽타주 등은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낸다. 또 세심하게 신경 쓴 스타일링과 색감은 영화를 보는 내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선지가 악마가 되는 새벽이 영화의 주된 배경임에도 좀처럼 어둡다는 감상이 적은 건 다른 요소에서 화사한 이미지를 끊임없이 이끌어낸 덕분이다.

다만 〈악마가 이사왔다〉는 분명 아쉬운 지점이 있다. 마지막까지 특유의 재기발랄함을 밀어붙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 후반부, 악마가 선지에게 자리 잡게 된 경위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전체적인 톤이 바뀐다. 전반부부터 암시한 전개이긴 한데, 독특하고 코믹한 전반부에 비하면 안정적인 전개와 톤으로 전환하며 영화의 매력이 반감된다고 느꼈다. 악마를 돌본다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사라지고 가족 드라마가 남는다고 해야 할까. 흔히 말하는 신파급 감성은 아니지만 전반부에 비해 흥행을 겨냥한 대중적인 선택이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전작 〈엑시트〉에서 코미디를 토대로 긴장감과 성장 드라마의 쾌감을 모두 자아냈던 이상근 감독이기에 이처럼 삐걱거리는 전환점이 유독 도드라져 보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와 맞물려 전반부에 드라마에 동력을 더하는 장수, 아라가 후반에 갈수록 점점 도식적으로만 그려지는 것도 못내 아쉽다.
결국 〈악마가 이사왔다〉의 성패는 이 지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렸다. 배우들의 호연과 유쾌한 코미디 감각으로 끌고 온 이야기가 전형적인 드라마에 도착하는 이 과정이 〈악마가 이사왔다〉의 호불호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렇다고 〈악마가 이사왔다〉의 매력이 휘발되는 건 아니다. 완전 다른 매력을 보여준 윤아와 ‘외강내유’ 매력을 보여준 안보현, 매콤새콤달콤 각양각색 맛의 코미디를 제조하는 이상근 감독의 연출, 적당한 선에서 자극적이지 않게 감동을 유발하는 서사까지. 8월 13일 개봉하는 〈악마가 이사왔다〉가 남녀노소 많은 관객들의 선택지로 충분한 것은 확신하나 그들 모두에게 훌륭한 영화가 될지는 자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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