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단 3일간의 행사를 위해, 몇 백년 세월을 버티며 자란 나무들을, 베어 버린다. 그것도 불과 몇 시간 만에 이루어지는, 자연을 향한 대규모 학살! 다큐멘터리 〈종이 울리는 순간〉은 2018년 평창 올림픽 알파인 경기장을 짓는 과정에서 조선시대부터 ‘왕의 숲’이라 불리던 가리왕산이 무참히 훼손되고 짓밟힌 시간을 환경론적인 관점에서 뒤쫓는 다큐멘터리다.
개발의 논리가 최우선인 이곳에서 정부, 공무원, 지역 주민, 관광객 모두 각자의 논리를 전개한다. 거대한 페스티벌이 불러 올 경제적 효과도, 지역 관광을 활성화할 방안도, 아름다운 산을 조망할 바램도 일견 각자 입장에서 일견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 또 하나의 소리가 있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이 선명한 입장들 사이에서 우리가 간과해 온, 가장 귀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주목한다. 바로 난개발로 인한 피해 당사자인 가리왕산의 소리다. 한국인인 우리에게 조차 생소할 정도로 원시적인 생명을 간직한 곳.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희귀생명체들의 자생지는 갑자기 들이닥친 포크레인의 굉음 속에 신음을 토해낸다. 살육의 현장과 다를 바 없는 이곳에서, 하루 아침에 터전을 잃은 동물들이 머리를 찧고, 지역 개발, 관광 창출이라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곤돌라가 안개 속에 삐그덕 거리는 모습을 보며, 우리는 가리왕산에 닥친 공포의 미래를 실감한다. 그리고 묻는다. 이 욕망의 주체는 누구인지.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사 ‘유랑필름’을 함께 운영하는 김주영과 코메일 소헤일리(이하 코메일 감독) 감독은 사드 배치로 환경 오염에 처한 제주와 이란의 심각성을 그린 중편 〈7개의 관문〉을 만드는 등, 그간 다큐멘터리로 환경 파괴를 고발해 온 다큐멘터리스트이다. 그렇게 환경에 대한 두 감독의 민감한 촉수는 그들에게 가리왕산 훼손 문제를 감지하게 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화려한 올림픽은 끝났지만 난개발로 인해 훼손된 가리왕산 문제는 심각성을 더하고 있으며, 다음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밀라노 코르티나 역시 마찬가지로 환경 파괴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하루라도 빨리” 경고를 하고자 뜻을 함께 한 환경 시민단체 ‘산과자연의친구’가 공동기획을, 가수이자 화가 솔비가 노개런티로 내레이션에 참여하였으며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인 십시일반의 관심으로 다큐멘터리를 완성할 수 있었다.
공동연출자이자, 한국과 이란인으로 맺어진 부부이기도 한 두 사람에 환경에 대한 경각심은 단순히 관념적인 메시지가 아닌, 자라는 두 아이들과 함께 살아 가는 생존이자 실천의 문제다. 부족한 예산에 인건비도 회수하지 못하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과정은 말그대로 매 순간 ‘고생’이지만, 공동의 가치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즐거움’이 더 큰 작업이기도 했다. 가족이라 육아를 병행하며 아이들과 함께 촬영지인 산을 올라 작품을 완성했고, “24시간 붙어 있어 시도 때도 없이 토론도 하고 필요하면 언쟁도 서슴없이 한다”는 두 감독에게 〈종이 울리는 순간〉은 마치 ‘운명처럼’ 다가온 작품이다. ‘고발’보다는 ‘성찰’과 ‘실천’을 촉구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지금껏 본 그 어떤 환경 문제를 다룬 작품 보다 우리를 움직이게 할 작품이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제22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부문 대상 수상작이다. 작품 공개를 앞둔 두 감독을 한 자리에서 만났다.

동계올림픽 개최를 위해 훼손된 가리왕산의 난개발 이슈에 주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김주영 감독 환경 문제에 늘 관심이 있었어요. 이전 작품인 〈7개의 관문〉도 사드배치로 인한 환경 파괴 문제를 다룬 작품이었어요. 그 작품을 보시고, 자연보전 시민단체 ‘산과자연의친구’ 의 최중기 교수님께서 가리왕산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 꼭 작업 같이 해야 된다”고 명함을 주셨어요. 이 작품을 공동기획하게 됐죠. 그 전부터 신호도 있었고요.
코메일 감독 가리왕산이 올림픽 선정지가 됐을 때 가리왕산 훼손 위기 뉴스를 보고 “이 산을 이루는 나무와 토양이 어떤 중요성을 띠고, 이게 한 번 변화하면 되돌리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지” 알게 됐는데, 정작 올림픽 때는 저희도 경기 응원을 하고 지나쳤어요. 그러다 저희가 〈7개의 관문〉때 알게 된 하상윤 기자님을 만났는데, 저희한테 “가리왕산을 찍어보는 건 어떻겠냐”라는 제안을 하셨었어요.

가리왕산에 처음 갔을 때는 어떤 인상이었나요.
김주영 감독 당시에 저희가 경남에 살고 있었고 가리왕산이 되게 멀어서 그 순간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남편은 그때 강원도를 처음 가 봤는데 정말 인상 깊었다고 했어요. 처음에는 ‘일단 이곳과 친해져야 된다’는 생각에 카메라 없이 방문했어요. 첫눈에 반했다는 느낌이었어요. 한국에서 지금까지 봤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관점으로 그릴 지가 관건이었을 텐데요. 고무적인 건 이 다큐멘터리가 어느 한쪽의 입장으로 정답을 몰아가기 보다다 가리왕산을 보존하려는 쪽과 개발하려는 쪽 모두의 입장에 귀기울인다는 점이었어요.
코메일 감독 그 말씀을 들어서 너무 기뻐요. 왜냐하면 저희도 어느 하나를 악당으로 만드는 시점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모두가 정말 정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저희한테 내주셨다는 거예요. 정선 군수님을 포함해서 마을 주민분들, 전문가분들, 환경운동하시는 분들, 심지어 관람 오셨던 분들까지도 다 진심을 내주셔서 저희가 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종이 울리는 순간〉 김주영,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 인터뷰는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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