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여정〉 저스틴 민 인터뷰는 1부로부터 이어집니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에서는 음악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요. 저스틴 민 배우는 이번 영화에서 지휘자로 나오시죠. 특히 엔딩의 콘서트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지휘하는 장면은 이번 작품을 통틀어 배우로서 가장 피가 마르고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지휘 연습을 하려면 무엇보다 음악이 먼저 나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촬영 내내 감독님께 “음악 좀 제발 빨리 보내주세요”라고 계속 사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촬영 막바지까지 음악을 작곡하고 계셨던 터라 곡을 받지 못했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정말 초조했죠. 그러다 마침내 곡이 완성되어, 그때부터 정말 다정한 제 매니저가 주말마다 강릉에서 서울까지 왕복 6시간을 운전해서 저를 데려다줬어요. 그렇게 고맙게도 모든 걸 가르쳐주신 전문 지휘자분을 만났고요. 그 과정을 거치면서, 지휘는 아마 10%가 테크닉이고, 90%는 곡의 감정을 이해하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의 관계를 이해하고, 음악을 통해 무엇을 전하려는지 이해하려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 곡을 지휘할 때 많이 생각한 게 그 부분이었어요. 그리고 당연히 그 곡의 많은 부분이 춘희와 연결돼 있잖아요. 그래서 감정적으로 몰입하기가 아주 쉬웠어요. 내내 춘희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촬영 당일도 정말 긴장되긴 했어요. 모두 실제 전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었고, 다들 저를 진짜 지휘자 보듯 뚫어지게 쳐다보아서 엄청 떨렸지만, 인내심 있게 친절히 대해주셨어요. 그때 감독님이 ‘춘희만 생각하면서 지휘를 하라’라는 디렉션을 주셨고, 그 말씀 덕분에 긴장감을 내려놓고 감정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함께 호흡을 맞춘 김혜옥 배우가 저스틴 민 배우를 보자마자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배우’라고 생각하셨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짐작하시나요?
주변 분들이 제게 자주 해주는 말이 있는데요.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이 짠하고 안쓰러워진다(feel sorry for me)’고 하더라고요.(웃음) 불쌍하다기보다는 다가가서 도와주고 싶게 만든대요. 김혜옥 선생님께서도 제 눈빛에서 그런 지점을 보시고 모성애적 본능을 느끼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스크린 위에서 그런 에너지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도 해요.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완벽한 인물보다 어딘가 결핍이 있는 언더독을 응원하게 마련이잖아요. 관객으로 하여금 극 중 인물의 편에 서서 그를 지켜주고 싶게 만드는 에너지, 그것이 제 외형에서 풍겨 나오는 결이라면 배우로서 참 감사한 일이죠. 민망하지만, 다 남들이 저한테 그렇게 말해준 겁니다!(웃음)
김혜옥 배우 말로는, 저스틴 민 배우에게 식사를 같이 하자고 했는데 같이 하지 않아서 서운하셨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고 싶네요!(웃음) 김혜옥 선생님은 강릉에서 매일 밤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밥을 같이 먹을 시간 자체가 물리적으로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웃음) 그리고 제가 촬영 중에는 탄수화물을 많이 섭취하지 않는 편이에요. 밥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문제입니다.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금방 졸리고 피곤해지거든요. 현장에서는 맑은 정신과 에너지를 유지해야 하니까 샐러드나 가벼운 식사를 택했던 건데, 선생님께서는 그걸 두고 내내 저를 놀리셨던 거죠. 이번 주에 선생님과 밥을 정말 원 없이 함께 먹었으니, 이제 그 서운함은 그만두셔야 합니다.(웃음)

〈흐르는 여정〉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야기인 동시에 삶의 끝을 생각하게 하는 작품인데요. 작품을 만나기 전과 후로 ‘좋은 삶’과 ‘좋은 죽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셨나요?
촬영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린 건,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는 거였어요. 영화에도 나오듯, 먼지에서 와서 먼지로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우리에게 남는 건 서로 맺은 관계, 그리고 우리가 줄 수 있는 사랑 정도인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번 촬영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건, ‘어떻게 하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보탬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모두가 저마다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어떻게 정말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영화를 찍은 건 정말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었어요. 엄마를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됐거든요. 이런 관계에 관한 영화는 찍어본 적이 없었어요. 춘희가 민준의 엄마는 아니지만, 둘은 엄마와 아들 같은 관계잖아요. 김혜옥 선생님과 촬영하면서 계속 엄마 생각이 났어요. 엄마가 살아온 삶, 미국에 오기까지 겪어야 했던 일들, 그리고 엄마가 한 희생들이요. 흥미로운 건, 제 머릿속 어머니는 늘 마흔 살 즈음의 모습으로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어머니를 바라보면 어느덧 환갑을 훌쩍 넘긴 60대 중반의 나이 든 여성이 되어 계세요. 부모님이 우리 곁에 영원히 계시지 않는다는 건 정신이 번쩍 드는 깨달음이에요. 함께할 수 있는 짧은 시간 동안 부모님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기자간담회에서 이 영화를 ‘누군가를 상실한 사람들이 다시 연결성을 찾는 영화’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저스틴 민 배우의 전작 〈애프터 양〉과도 이어지는 주제 같습니다. 저스틴 민 배우는 〈엄브렐러 아카데미〉 같은 장르물도 하셨지만, 안드로이드임에도 인간적이었던 〈애프터 양〉의 양을 비롯해, 〈완벽하지 않아〉에서는 인간에 내재한 찌질함을 표현하셨죠. 〈흐르는 여정〉의 민준 역시 인간다운 진심이 존재하는 인물인데요. 이렇게 인간적인 인물을 연기하는 데 가장 관심이 있으신가요?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그렇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항상 찾아온 배역들이 바로 그런 인물들이었어요. 결코 완벽하지 않고, 결점투성이에 실수를 저지르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발버둥 치는 입체적인 3차원의 인간들 말이죠. 저는 인간 경험의 전체 숨결을 반영하는 이야기를 사랑합니다.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냐는 질문은 참 답하기 어려워요. 이번 〈흐르는 여정〉처럼, 대본을 읽었을 때 제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다면 장르를 불문하고 그것이 제가 하고 싶어 하는 작품이 되니까요. 그래도 굳이 하나 꼽자면, 고통받는 천재 캐릭터를 탐구해보고 싶어요. 〈퀸스 갬빗〉이 미국에서는 정말 인기가 많았거든요. 천재 체스 선수지만 굉장히 고뇌하고, 내면적으로 몸부림치는 그런 캐릭터요.

*아래 문단에는 〈흐르는 여정〉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실 〈흐르는 여정〉은 조력 사망이라는 소재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운 영화인데요. 최근 한국에서도 조력 사망을 다룬 작품이 조금씩 나오고, 이를 둘러싼 논의도 여러 갈래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배우 개인으로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셨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그 주제에 대해 확고한 의견을 가질 만큼 깊이 생각해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이런 질문을 직접 마주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저 자신이 실제로 그런 처지에 놓여보지 않는 이상 확고한 답을 내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영화의 아름다운 점 중 하나는, 어느 쪽으로도 말하거나 설득하려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저 한 여성의 여정과, 그녀가 스스로 내린 결정을 담담히 따라갈 뿐이죠. 그리고 우리에게 반문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가?’ 미국도 그렇고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겠지만,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본능적으로 피하려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영화와 이야기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일이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지 않기에, 삶의 유한함을 응시할 때 비로소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되니까요.

제목처럼 우리 모두가 지금 각자의 ‘흐르는 여정’을 보내고 있잖아요. 영화에 기쁨도 슬픔도 있듯이, 배우가 아닌 자연인 저스틴 민으로서 요즘 가장 행복할 때와 슬플 때는 언제인가요?
흥미로운 게, 저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이기도 해요. 무슨 말이냐면, 올해 저는 일 때문에 거의 전 세계를 돌아다녔어요. 집은 LA에 있는데, 올해 LA에 있었던 건 다 합쳐서 이틀이에요. 처음 넉 달은 뉴욕에서 연극을 했고, 그다음엔 뉴욕에서 영화를 찍었고, 런던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했고, 한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찍고, 호주에 갔다가, 지금은 영화 개봉 때문에 다시 한국에 와 있어요. 새로운 도시를 탐험하고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제게 엄청난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올해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정말 기뻤고요. 그런데 동시에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해요. 가끔은 정말 외롭고, 이제는 집이 어디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가족도 당연히 그립고요. 삶의 대부분이 그런 것 같아요. 우리에게 엄청난 기쁨을 주는 것들이, 엄청난 슬픔과 상실의 지점이 되기도 하죠.

배우로서의 삶을 하나의 ‘흐르는 여정’이라고 한다면, 한국 장편 영화로 관객을 만나고 계신 지금은 어느 챕터쯤일까요?
바라건대, 딱 중간 챕터쯤이 아닐까요. 내일 죽지 않는다면요.(웃음) 저는 늘 한국에서 더 많이 작업하기를 꿈꿔왔어요. 그래서 이곳에서 새로운 챕터를 시작하고, 더 많은 작품을 하게 된 게 정말 기쁘고 영광이에요. 그리고 커리어를 더 이어가면서, 아마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이상적인 세상이라면 미국과 한국에서 반반씩 작업하고 싶어요.
한국 팬들이 굉장히 많아지셨어요. 한국 팬들은 저스틴 민 배우가 한국에 있었으면 해서, 돌아가지 말라고 하는데요.(웃음)
100% 다시 돌아올 겁니다!(웃음) 얼마 전에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를 찍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어요. 내년에 보여드릴 수 있어서 설레요. 앞으로도 점점 더 자주 돌아오길 정말 바라고, 그럴 거라는 걸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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