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일 때문에 라스베가스를 꽤 자주 방문했었던 것 같습니다. 일이 하도 많아서 그랬었는지 라스베가스에 10번 넘게 가면서도 거기서 가깝다고들 하는 그랜드 캐니언은 정작 한 번도 못 가본 게 지금도 살짝 아쉬운데요. 하여간 일 끝나고 스트립 거리와 다운타운을 거닐며 이런저런 구경을 했었는데, 운전을 하며 한 블록 한 블록 지나갈 때마다 거리 분위기가 천국과 지옥만큼이나 달랐던 그 광경이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도 뚜렷하게 기억이 납니다.
그런 대조적인 풍경들, 그리고 라스베가스가 상징하는 여러 가지 것들 때문인지 라스베가스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이 많이 있는데요. 엘비스 프레슬리가 주연했던 <비바 라스베가스>란 영화도 있고, 니콜라스 케이지와 엘리자베스 슈가 주연을 맡았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란 영화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영화들이 있죠. 오늘은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주인공인 니콜라스 케이지(극중 벤)는 시나리오 작가입니다. 알코올 중독으로 인해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아내에게 이혼도 당했죠. 그런 벤은 ‘열심히 뭔가 해 보려는’ 의지를 상실합니다. 자기 주변을 정리한 벤은 차를 몰고 라스베가스로 떠나죠.
그렇게 라스베가스에 도착한 벤은 창녀인 세라를 만나 동거를 시작합니다. 애초에 동거 조건은 "술 마시지 말라"고 말하지 말고, "몸 팔지 말라"는 소리 하지 말라는 거였는데 어디 사람이 그런가요, 애정이 쌓일수록 상대방에게 바라는 것도 많아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 그렇게 만남과 헤어짐을 겪은 뒤 어느 모텔에서 벤과 세라는 하룻밤을 같이 보냅니다. 그리고 벤은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죠.
저는 술을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마시기 시작하기 전에 이 영화를 처음 봤습니다. 이 영화가 개봉되었던 1996년에 저는 술이라면 진저리를 치던,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이해력이 현저히 모자라던 대학원생이었죠. 그 시절만 해도 저열하고 조악한, 어떻게든 다같이 취하는 게 목적이었던 폭력적인 술 문화가 대중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렇게 알코올 중독이 되어버린 사람에 대한 이해도 전혀 되지 않았고 ‘어쩔 수 없는’ 저런 안타까운 관계도 뭔가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죠.
그러다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접한 이 영화는 가슴에 잔잔한 울림을 전해줬습니다. 살다 보면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걸, 사람이라는 존재가 실은 매우 약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자살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렇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죽을 각오로 뭘 못하겠냐’라고들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게 그게 아니거든요. 더이상 삶을 이어나갈 힘이 없으니까, 자신이 없으니까, ‘각오’따위 이제 할 수 없으니까 그냥 도망치는 건데 말이죠. 사람은 한 가지 큰 일이 닥치면 어떻게든 어지간하면 잘 이겨내지만 여러 일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생각보다 쉽게 무너집니다. 그게 사람이에요.
그래서 벤과 세라가 같이 살기 전 서로 술과 몸 파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미 그들은 그럴 수 있는 힘을 잃었기 때문이죠. 서로 같이 살고, 그렇게 애정이 커져가고, 서로에게 원하는 게 생기고, 서로를 아끼게 되고, 그러다 보니 갈등도 커져가는데 그게 사람이지만 이미 그들은 그런 갈등을 이해하기엔 너무 지쳤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냥 영혼을 감쌀 수 있는 스킨십일 뿐이죠.
알코올 중독자가 주인공이다 보니 이 영화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술들이 등장합니다. 벤이 운전하면서 마신 보드카도 그렇고, 술 가게에서 술을 쓸어 담는 장면에서 나온 커티샥 같은 위스키도 그렇죠. 하지만 이 모든 술들은 술 하나하나가 큰 의미를 지니지는 못 합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그렇죠. 술을 취하려고 마시는 것이 아닌 맛으로 즐기고, 무엇보다 자제할 줄 아는 사람에게 술은 인류 문화의 보석이지만 그냥 취하려고 마시는 사람에게 술은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몸을 망치는 수단이죠. 그래서 이 글에는 굳이 술 하나하나에 대한 설명은 달지 않으려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양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라스베가스의 대로변 스트립 거리와 그 이면 두어 블럭 뒤의 어두침침한 뒷골목처럼 말이죠. 대부분은 다들 그 뒷골목처럼 어둡고 힘들지만 그 화려한 스트립 거리 같은 가면을 쓰고 이 사회를 살아갑니다. 그 걸음 하나 하나는 이 영화의 OST를 부른 스팅의 목소리만큼이나 까끌거리고 건조하죠. 하지만 또 살다 보면 그 목소리에 실려 있는 따뜻한 울림에 힘을 얻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술꾼으로서 오늘의 술 한잔이 삶을 살아가는 그 걸음 하나 하나를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해주는 방향으로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데렉 / 술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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