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나 화제작에서 불쑥 출연한 신인 배우들이 스타가 되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이 스타들 중 배우로 거듭나는 사람은 그렇게 썩 많지 않다. 그래서 로버트 패틴슨을 볼 때면 이 배우의 진귀한 행보에 감탄하곤 한다. 스타가 된 후 수많은 입방아가 이어질 때, 그는 묵묵히 자신이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했고, 이제는 연기와 작품성 모두 잡은 안타형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영화계의 아이돌에서 믿고 보는 배우까지, 그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
2005|감독 마이크 뉴웰|156분|12세 관람가
<해리 포터> 시리즈는 캐스팅에 이견이 없을 만큼 원작과 배우들의 싱크로율이 좋은 편이었는데 유독 4편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때는 새로운 배우들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지금도 회자되는 '초 챙'이 이 영화에서 첫 등장 했다). 그중에서 배역에 잘 녹아들어 별다른 거부감 없이 팬들의 마음에 안착한 배우가 세드릭 디고리 역의 로버트 패틴슨이었다. 작중 언급처럼 '미남'인 건 물론이고 남자다우면서도 소년스러운 얼굴, 똘망똘망한 눈을 빛내는 로버트 패틴슨과 친절한 성격으로 모두에게 호감을 얻는 세드릭 디고리는 서로의 매력을 빛낼 최고의 조합이었다. 원작을 먼저 본 관객이라면 패틴슨이 하필 세드릭 역을 맡은 게 아쉬웠을 수도. 당시 거의 무명이었던 로버트 패틴슨에게 전 세계 영화인들의 시선을 모아준 영화이자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
2008|감독 캐서린 하드윅|121분|12세 관람가
로버트 패틴슨을 스타로 만들어준 동시에 한동안 '뱀파이어' 틀에 가둬버린 영화 <트와일라잇>. 10대들의 사랑을 받은 로맨스에서 그는 뱀파이어 에드워드 컬렌 역을 맡았다. 한층 더 창백해진 얼굴에 진한 눈썹과 퇴폐적인 눈빛으로 이사벨라 스완(크리스틴 스튜어트)에게 사랑을 읊조리는 모습은 누구라도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덕분에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싫어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히는 패틴슨 본인의 마음과 달리 많은 관객들은 에드워드라는 캐릭터로 그를 기억하게 됐다. 아무래도 <트와일라잇> 시리즈에 애정이 없다 보니 속편으로 가면 갈수록 연기도 점점 평범해졌고, 한동안 '발연기하는 배우'라는 불명예를 얻기도 했다.
리멤버 미
2010|감독 엘런 콜터|112분|15세 관람가
<리멤버 미>는 로버트 패틴슨이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맡은 도중 촬영한 로맨스 영화. 로맨스 영화 시리즈를 찍는 중에 또 로맨스를? 원래는 <트와일라잇>보다 <리멤버 미>가 먼저 캐스팅된 상태였다. 이 영화를 준비하다 <트와일라잇>에 출연하게 됐고, 그래서 <리멤버 미>를 촬영할 때 파파라치와 극성팬에 시달렸다고. 그가 연기한 타일러 호킨스는 변변한 직장도 없고 대학도 다니지 않은 20대 청년.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와 동생과는 잘 지내고 있지만 가정은 등에 진 채 일에만 몰두하는 아버지와의 관계는 불만스럽기만 하다. 이렇게 보면 둘도 없는 풍운아 같지만 앨리(에밀리 드 라빈)를 만날 때의 다정함과 능청스러움은 '로며들게' 한다. 영화 전체가 로버트 패틴슨의 단짠단짠으로 구성됐다고 해도 좋을 지경. 그럼에도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 로버트 패틴슨이 확실히 '팔리는 영화만 할 배우'는 아닌 걸 알 수 있다. 멜로 영화라고 보기엔 감정적 소모가 있는 편이니 그것만 주의할 것.
잃어버린 도시 Z
2016|감독 제임스 그레이|141분|12세 관람가
<트와일라잇> 시리즈가 완결되고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 <맵 투 더 스타>로 연기의 영역을 넓혀가던 로버트 패틴슨이 꺼낸 회심의 카드.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잃어버린 도시 Z>는 완성도로 상당한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에서 만장일치 찬사를 받았다. 제시 포젯(찰리 허냄)과 함께 사라진 문명을 찾아 아마존으로 향한 헨리 코스틴처럼 로버트 패틴슨도 정글에 몸을 맡겼다. 찰리 허냄과 로버트 패틴슨은 정글에서 촬영하는 동안 음식 섭취량을 줄이며 감량을 했고, 덕분에 제시와 헨리가 겪는 고행길이 영화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투 러버스>를 보고 언젠가 제임스 그레이와 일하길 꿈꿨던 로버트 패틴슨은 이 작품으로 자신의 꿈도 이루고 <배트맨> 캐스팅까지 성공했으니 일거양득, 일석이조.
하이 라이프
2018|감독 클레어 드니|112분|청소년 관람불가
배우들의 인터뷰를 보면 이런 말이 있다. "가만히 있는 것이 가장 힘들다". 화면 안에서 그냥 존재해야만 하는 순간은 계산이나 연습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대사가 있거나 감정을 표출할 때의 연기보다 더 힘들단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이 라이프>의 로버트 패틴슨은 존재만으로도 영화를 압도하는 장악력을 보여준다.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받은 범죄자 무리는 우주를 탐사하는 실험체가 된다. 로버트 패틴슨의 몬테는 그 범죄자 무리에서 '수도승'이라 불리는 무미건조하게 일상을 이어가는 인물. 각자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딥스(줄리엣 비노쉬)나 다른 인물에 비하면 서사에 미치는 영향력은 낮지만, 그렇기에 영화의 가장 주요한 테마를 쥐고 있는 몬테를 연기하며 로버트 패틴슨은 <하이 라이프>를 상징하는 얼굴이 된다.
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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