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딸을 성심성의껏 돌보는 엄마와 평생 엄마 밖에 친구가 없던 딸. 외출하길 꺼려 하는 이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보낸다. 어느 날 그들의 페이스북에 끔찍한 게시글이 업로드된다. ‘그년은 죽었어!’ 이웃들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어둡고 고요한 그들의 집에서 등을 찔린 채 엎어져있는 엄마의 시신을 발견한다. 누가 이렇게 끔찍한 일을 저지른 걸까? 바로 그의 딸, 집시다. 휠체어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집시는 어떻게 엄마를 살해한 걸까. 이 비뚤어진 모녀 관계는 어디서부터 엉키기 시작한 걸까.
소름 돋는 범죄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스토리.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이다. <디 액트>는 2015년 미국 미주리주에서 벌어진 집시 블랜처드의 살인사건을 극화한 드라마다. 주인공 집시 블랜처드를 조이 킹이, 그의 엄마 디디 블랜처드는 패트리샤 아퀘트가 연기했다.
불편한 소재지만 앉은 자리에서 '다음 화 보기'를 클릭할 수밖에 없는 흡입력을 자랑하는 드라마, <디 액트>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 블랜처드 가의 실제 이야기를 타임라인으로 정리해봤다. 드라마와 얼마나 닮아있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디 액트>는 왓챠에서 관람 가능하며, 1화는 6월 25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2008년 3월
미국 미주리주 스프링필드의 한 마을. 사회적 지원으로 집을 얻은 디디와 집시 모녀가 이곳의 새 식구가 된다. 근육 위축증, 간질, 각종 알레르기, 천식을 포함한 만성 질환을 앓는 딸 집시는 어디서든 시선을 받는 존재다. 휠체어 없인 이동하지 못하고, 식도로 음식을 넘기기 어려워 배 한 쪽엔 영양 공급 튜브를 꽂았으며, 산소마스크를 쓰고 잠든다. 아픈 딸을 성심성의껏 돌보는 싱글맘의 이야기는 미국 언론을 감동시켰다.
하지만 여기엔 둘만의 비밀이 있다. 집시는 자신이 두 다리로 설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집시는 아픈 곳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휠체어 위의 환자 연기를 이어간다. 디디의 강요 때문이다. 디디는 헌신적인 어머니로서 최선을 다하며 집시의 의료비를 위한 후원금을 지급받는다. 집시는 자신의 주변 모든 것을 쳐내는 엄마 디디의 통제로 인해 점점 숨이 막혀오기 시작한다.
2011년 2월
집시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니다. 자신의 나이마저 속이는 엄마를 향한 불신이 자라나고 있던 어느 날. 한 행사에 참석한 그는 그곳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집시는 디디 몰래 온라인에서 그와 소통하기 시작한다. 남자와의 새 삶을 꿈꾼 집시는 가출을 감행한다. 그의 일탈은 얼마 가지 않아 꼬리 잡히고 말았으니. 모녀의 비극을 조명한 HBO 다큐멘터리 <맘 데드 앤 디어리스트>에서 집시는 디디로부터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질 경우 손가락을 망치로 박살 낼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디디는 집시의 컴퓨터와 휴대전화를 부수고 그를 침대에 2주 동안 묶어두었다.
2012년
집시는 디디 몰래 자신만의 온라인 생활을 지속해갔다. 그는 기독교 데이트 사이트에서 니콜라스 고드존이라는 이름의 남성과 만났다. 두 사람은 이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관계를 유지했다.
2015년 6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디디가 죽은 후 이뤄진 집시의 인터뷰에 따르면 디디의 학대는 점점 심해졌다. 엄마에게서 탈출하기 위해, 집시는 엄마를 죽여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는 고드존에게 엄마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살인 당일 고드존은 미주리의 한 모텔에서 집시의 문자를 기다렸다. 그는 디디가 잠든 사이, 집시가 준 칼로 디디를 살해했다. 두 사람은 고드존이 거주 중인 위스콘신주 빈벤드로 떠날 계획을 세운다. 이들이 언제, 어떻게 경찰에게 덜미를 잡히게 되는지는 작품을 통해 확인해보자.
흡입력 높이는 연출력과 구성
딸에게 환자 연기를 시키며 그에게 신체적 학대를 가한 엄마. 그에게서 탈출하고자 칼을 든 딸. <디 액트>는 엄마의 손 아래 꼭두각시처럼 움직이던 집시가 세상에 눈을 뜨고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텅 빈 집에 홀로 남겨진 엄마의 시신을 발견하며 막을 여는 이 드라마는 비극의 씨앗이 자랐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사건을 재구성한다. 각본가가 이리저리 뒤섞어놓은 모녀의 관계 흐름을 따라 퍼즐을 맞춰가다 보면 거대한 비극을 마주할 수 있을 것. 제 세상의 전부인 엄마에게 평생 학대를 당했으면서도 그에 대한 연민을 놓지 못하는 집시. 약물에 의존해도 통제할 수 없는 예민함과 불안함으로 딸을 제 세상 안에 가두는 엄마 디디. 폭발 직전의 긴장을 유지하며 캐릭터의 심리를 섬세하게 짚어나간 연출은 작품의 감정적 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삭발 감행! 스타에서 배우로 성장한 조이 킹
배우들의 연기가 없었다면 이 역시 불가했을 것. <디 액트>는 주연 배우들의 필모그래피 속 최고 연기를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의의가 깊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키싱 부스> 시리즈를 통해 국내 관객에게도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눈도장을 찍은 조이 킹. 그는 집시를 연기하기 위해 삭발까지 감행하며 캐릭터에 이입했다. <디 액트>를 보고 나면 조이 킹의 앞에 스타보단 배우라는 호칭이 더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 학대받는 모습으로 시청자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던 소녀, 살인을 계획하며 시니컬한 미소를 짓던 범죄자의 모습까지 모두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순간순간 뒤바뀌는 집시의 불안정한 심리 변화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 그의 섬세한 내면 연기에 감탄하게 되는 작품. 실존 인물의 독특한 말투, 제스처를 구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을 그의 노력이 돋보인단 점도 인상 깊다.
연기 신 강림ㄷㄷ, <보이 후드> 어머니의 파격 변신
국내 관객에겐 <보이 후드>의 어머니 역으로 유명할 패트리샤 아퀘트, <디 액트>에선 그의 새로운 인생 연기를 확인할 수 있으니. 집시의 엄마, 디디를 연기한 패트리샤 아퀘트의 연기는 보는 이마저 숨 막히게 만들 정도다. 디디는 사랑, 보호란 이름으로 포장된 강박으로 집시의 삶을 재단한다. 딸의 날개를 부러뜨리는 그의 아우라는 극의 장르에 호러를 추가해도 될 정도로 공포스럽다. 나중엔 집시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질색하며 목을 움츠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 캐릭터에 완벽하게 이입한 그의 연기에 평단도 극찬을 보냈다. 패트리샤 아퀘트는 이 작품으로 제71회 에미상 TV 리미티드 시리즈/영화 부문,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TV 부문의 여우조연상을 품에 안았다.
<찰리의 초콜릿 공장>의 걔? 조연 배우마저 탄탄
집시와 디디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극에 긴장을 불어넣은 이웃들, 그들을 연기한 조연 배우들의 라인업마저 탄탄하다. 짐 자무쉬 감독의 <데드 돈 다이>, 루카 구아다니노의 드라마 <위 아 후 위 아> 등 현시대 거장들의 작품에 늘 얼굴을 비추는 클로에 세비니가 집시의 집 건너편에 사는 이웃 멜을 연기했다. 그의 딸 레이시는 집시에게 늘 따스한 관심을 건네며 또래들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준다. 안나소피아 롭이 레이시를 연기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승부욕에 눈이 먼 풍선껌 소녀, 바이올렛을 연기했던 배우가 바로 그다.
집시에게 살인을 의뢰받은 그의 연인, 닉을 연기한 배우 캘럼 워시의 등장도 반갑다. 주로 드라마를 통해 필모그래피를 쌓은 캐나다 배우라 대부분의 국내 관객에겐 낯선 얼굴일 터. 말투, 구부정한 자세, 순간순간 보이는 의뭉스러운 표정만으로도 캐릭터에 현실감을 더한 디테일한 연기가 돋보인다.
범죄 실화 바탕, 색다른 이유는?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지만, 일부 장면과 인물은 각색하였거나 사실과 다릅니다’. <디 액트>의 매 회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선 이와 멘트를 확인할 수 있지만, 집시 블랜처드가 겪은 굵직굵직한 실제 사건은 작품 곳곳에 자연스레 녹아있다. 각종 인터뷰와 기사를 모아 집시 블랜처드의 삶을 세밀하게 들여다봤을 제작진의 노고가 빛나는 부분. 인물들의 사건 위로 드라마틱 한 재해석을 더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건을 조명하며 인물의 심리를 깊숙이 파고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점 역시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MSG 없는 충격적인 실화 드라마 <디 액트>는 왓챠에서 감상 가능하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



















댓글 (0)
댓글 작성
댓글을 작성하려면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