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지, 뭐. 이 오전에 일도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고등학교 동창을 마주친 거면, 둘 다 따로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망한 거다. 동네 백수건달 마사루(카네코 켄)와, 한때 복싱 유망주였으나 유망주인 채로 끝나버린 신지(안도 마사노부)는 그렇게 몇 년 만에 재회한다. 오래전에 복싱을 그만두고 이제는 배달 일을 하고 있는 신지와, 일자리 구하러 나가는 길이라면서 세상 불량한 옷차림으로 건들거리는 마사루는 재회조차 어색하기 짝이 없다. 오랜만에 한 자전거에 올라탄 두 사람은 곱씹는다. 어디서부터 망가진 걸까, 우린?
두 사람이 탄 자전거를 따라 영화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보지만, 그때라고 둘의 인생이 온전했던 건 아니었다. 마사루와 신지는 그때에도 별다른 계획 없이 인생을 멋대로 낭비하는 인간들이었다. 수업 시간은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옥상에서 땡땡이를 치면서 보냈고, 쉬는 시간에는 같은 학교 애들 삥을 뜯었으며, 하교 후에는 스낵바에서 어른들한테 담배나 얻어 태우던, 전형적인 불량학생들.
어느 날 자신에게 삥을 뜯긴 학생이 복수하겠다며 데려온 복서에게 두들겨 맞은 마사루는, 자신도 강해지겠다며 복싱을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의 훈련을 돕던 ‘친한 동생’ 신지와의 스파링에서 처참하게 지자, 마사루는 그 길로 복싱을 그만둔다. 남은 신지라고 멀리 가진 못한다. 기껏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낸 신지는, 언제부터인가 질 나쁜 선배와 어울리며 술과 담배로 훈련을 망친다. 그리고는 정해진 수순처럼 제 페이스를 잃고 링 위에서 곤죽이 되도록 맞다가 패배하고 내려온다. 복싱을 그만둔 마사루는 야쿠자가 되려 하지만, 그것조차 실패한다. 조직의 말단 병정으로 실컷 이용당한 마사루는 선배 야쿠자들에게 배신당하고 버림받는다. 삭막한 세상에서 지저분한 어른들과 어울리던 어리석은 아이들은 순조롭게 인생을 망쳤다. 그래, 꼼짝없이 망했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키즈 리턴>(1996)은 누가 보더라도 인생이 심각하게 망가진 자리에서 출발하는 작품이다. 아마 기타노 다케시 자신의 삶이 반영된 것이었으리라. 1994년 8월, 회식이 끝난 뒤 만취한 채로 오토바이를 타고 당시 불륜 상대였던 파트너의 집으로 가던 기타노 다케시는 가드레일을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내고 의식을 잃었다. 맞은편 차선에서 오던 택시기사가 그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기긴 했지만, 이미 우측 머리 두개골 함몰, 뇌 좌상, 우측 광대 복합 골절을 당한 상태였다. 수술을 통해 기적적으로 생명을 건진 대신, 그는 얼굴 오른쪽이 마비됐고 후각을 잃었으며 끊이지 않는 끔찍한 두통을 얻었다. 사람들은 기타노 다케시를 걱정하면서도, 동시에 불륜과 음주운전이라는 그의 대책 없음을 비난했다. 오와라이 게닌(코미디언) ‘비트 다케시’로 사랑받고, 세계적인 감독 ‘기타노 다케시’로 존경받던 그의 삶은, 그렇게 산산조각이 났다.
그렇게 더 망할 것도 없어 보이던 상황에, 기타노 다케시는 일그러진 얼굴을 거울에 비춰보며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와, 씨. 내 인생도 70% 정도는 끝장 났구만. 뒤집어 말하면, 얼굴 반쪽이 마비되고 나머지 반쪽도 경련으로 뒤틀리는 상황 속에서도 아직 30% 정도의 삶은 끝나지 않고 남아있노라 생각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기타노 다케시는 퇴원 기자회견에서 망가진 자기 얼굴을 소재로 농담을 던지고, 다음 해 여름에 TV 프로그램에 복귀했으며, 다시 그다음 해에는 뜬금없이 다 망한 것 같은 자리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어 감독으로도 복귀한다. 끈 떨어진 전직 야쿠자 마사루와 실패한 복서 신지라는 한심한 조합의 청춘들을 내세워서, 그 한심한 놈들의 입을 빌어 ‘그럼에도 희망’을 이야기하는 영화 <키즈 리턴>으로.
선배 야쿠자들에게 한쪽 팔을 베이고 백수건달이 된 마사루는, 고등학교 시절 늘 그랬던 것처럼 신지가 모는 자전거 뒷자리에 타서 신지의 등에 기댄다. 실패한 복서인 신지는 언제나 그랬듯 열심히 페달질을 한다. 두 사람이 대책 없는 멍청이 시절을 보냈던 모교의 운동장을 달리며, 두 사람은 말한다. “세상에 우리 같은 바보들이 또 있을까?” “없지 않겠어요?” 마사루의 질문에 허탈하게 답한 신지는, 한참 공부하고 있을 후배들의 교실을 향해 큰소리로 외친다. “바보들아!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냐?” 그래, 그때 공부라도 했으면, 그때 다른 선택들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후회가 소용없다는 걸 신지도 잘 안다. 그래서 신지는 제 등에 기댄 마사루에게 묻는다. “마사루 형, 우린 이제 끝장난 거겠죠?” 그러자 힘없이 웃던 마사루가 고개를 들고는 힘주어 말한다.
“바보야.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그리고는 놀랍게도, 이 답 없는 패배자들이 서로에게 키득키득 웃어 보이며 열심히 페달을 밟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에는 혐한 혐중 연예인으로 알려진 기타노 다케시지만,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기타노 다케시는 자기 자신을 포함한 온 세상 만물을 혐오하는 사람에 가깝다. 그는 쉬운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엔 취미가 없고, 무엇 하나 애틋한 마음으로 포장해주지 않으며, 심지어 “당신은 감독으로도 코미디언으로도 성공한 사람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뭐가 성공이라는 거냐. 애인은 도망갔고 마누라는 차갑다.”라고 잘라 말하며 제 삶까지 전심전력으로 모멸한다. 자신이 창조한 인물들인 마사루와 신지에 대한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결말부의 마사루와 신지에 대해서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두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한 70%는 끝난 거다.” 마치, 만취 상태로 불륜 파트너한테 가다가 얼굴의 절반이 함몰되는 사고를 당하고는 세간의 비난과 끔찍한 고통 속에 잠겨 있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인생의 7할이나 박살이 났음에도, 마사루는 “아직 시작도 안 했어!”라고 호기로운 허장성세를 부리며 맥 빠진 신지의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남은 30을 가지고도, 여기서 뭔가 새롭게 시작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희망으로. 어쩌면 그건 병상에서 남은 30의 삶을 손에 쥐고 새로 일어날 용기를 내려고 안간힘을 쓰던 기타노 다케시 본인의 다짐이었는지도 모른다.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를 예전처럼 사랑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 무릎이 꺾이고 인생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된 건가 싶을 땐, 그 대책 없는 머저리 마사루와 신지를 생각한다. 저렇게 누가 봐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망해버린 순간에도, 아직 뭐 제대로 시작도 안 했으니 다시 해볼 수 있다고 외치는 근거 없는 희망의 힘을 생각한다. 그래, 어쩌면 우리도 아직 시작도 안 한 건지 모른다. 이 희망에도 딱히 근거는 없지만, 근거가 있었으면 전망이겠지. 희망이라 부를 이유가 어디 있겠나?
이승한 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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