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진건의 소설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B사감 같았다. 앞뒤가 꽉 막혀 융통성 없고 이보다 더 보수적일 수 없을 것 같은 여자, 주인공 윌리엄 밀러(패트릭 후지트)의 어머니다. 윌리엄의 누나 애니타 밀러(주디 디샤넬)는 그런 어머니를 참지 못하고 결국 공개적인 가출을 선언한다. 집을 떠나기 전 애니타는 윌리엄에게 침대 밑을 살펴보라며 자신이 듣던 바이닐(LP)을 주고 집을 떠난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음악까지도 마약과 난교에 대한 시를 담고 있다 믿는 어머니 몰래 윌리엄은 누나의 선물을 꺼내든다. 비치 보이스의 <Pet Sound>가 맨 앞에 있었고, 롤링 스톤즈, 레드 제플린, 닐 영, 크로스비 스틸스 앤 내쉬의 바이닐이 차례로 보인다. 윌리엄은 지미 헨드릭스와 크림, 조니 미첼의 커버를 손으로 만지며 음악을 느껴보려 한다. 더 후의 <Tommy> 앨범에는 누나가 쓴 짧은 메모가 있다. "촛불을 켜고 토미를 들어보렴. 네 미래를 볼 수 있을 거야." 촛불을 켜고 바이닐을 턴테이블에 걸고 바늘을 올리는 의식과도 같은 그 두근거리는 순간. 'Sparks'를 들으며 윌리엄은 웃음 짓는다. 누나의 말처럼 최연소 변호사가 되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과 달리 록 저널리스트를 꿈꾸게 되는, 미래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학교에서 윌리엄은 인기가 없다. 어머니의 욕심으로 잔뜩 월반한 그는 동급생들보다 나이가 어려 놀림을 당하지만 그에겐 음악이 있다. 누나가 주고 간 바이닐을 자양분으로 더 많은 음악을 흡수해갔다. 많은 음악을 듣고 글을 썼다. <크림>의 편집장이었던 레스터 뱅스나 <롤링 스톤>의 편집장 벤 퐁 토레스를 실명으로 등장시키며 젊은(어린) 록 저널리스트 윌리엄 밀러를 소개한다.

거짓말처럼 벤 퐁 토레스에게 전화가 왔다. 특집 기사를 의뢰받아 유명해지기 일보직전(almost famous)의 밴드 '스틸워터(Stillwater)'의 투어를 따라나설 수 있게 된다. 꿈같은 일이었지만 윌리엄이 투어에서 마주하는 건 현실이다. 윌리엄이 좋아하게 되는 페니 레인(케이트 허드슨)은 밴드의 리드 기타리스트 러셀 하몬드(빌리 크루덥)를 따라다니는 그루피이고, 무대 뒤에서의 밴드는 주도권을 놓고 갈등을 빚는다. 자신이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윌리엄의 고민과 생각은 깊어진다.

말하자면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윌리엄의 성장영화다. 동시에 영화를 연출한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자전영화이기도 하다. 실제 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도 했던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윌리엄을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그래서 블랙 사바스나 올맨 브라더스 같은 팀들의 실명이 등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래스터 뱅스나 벤 퐁 토레스 같은 저명한 저널리스트의 이름까지도 그대로 등장한다. 스틸워터만이 영화가 만들어낸 가상의 밴드다.

영화에서 레스터 뱅스는 로큰롤이 죽음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며 로큰롤의 사망을 예견하지만 이후 위대한 록의 시대가 열린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그 위대한 시대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사이키델릭 록, 프로그레시브 록, 글램 록, 포크 록 등 세상의 모든 록을 짧게나마 삽입 음악으로라도 소개하고, 레드 제플린, 데이빗 보위가 실제로 등장한 것 같은 상황을 만들며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작은 재미를 준다.

카메론 크로우는 영화 연출에 그치지 않고 음악 작업까지 관여했다. 사운드트랙에서 그는 직접 선곡과 곡의 배치까지 맡았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이 <올모스트 페이머스> 이전 만들었던 <클럽 싱글즈><제리 맥과이어>의 사운드트랙을 생각한다면 그의 안목이나 선택은 충분히 믿음직하다. '마약과 난교에 대한 시'를 노래한다는 사이먼 앤 가펑클의 'America'를 시작으로 더 후, 토드 룬드그렌, 예스, 비치 보이스, 올맨 브라더스, 레너드 스키너드, 레드 제플린, 엘튼 존, 캣 스티븐스 등의 노래가 담겨 있다. 또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동반자이자 록 밴드 하트의 멤버인 낸시 윌슨도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스틸워터는 가상의 밴드지만 마치 원래 그 시절에 활동한 듯한 분위기의 노래 'Fever Dog'를 들려준다. 1970년대 록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이 이 한 장의 사운드트랙에 담겨 있다.

<올모스트 페이머스>로 2001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 카메론 크로우와 낸시 윌슨

윌리엄 밀러, 아니 카메론 크로우는 십대 때부터 이미 최고의 음악 잡지 <롤링 스톤>에 음악 글을 기고했다. 원고료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하니 그 재능도 대단했던 것 같다. 음악에 대한 애정은 영화계로 옮긴 뒤에도 영화음악 작업을 통해 드러났다. 그는 수많은 멋진 사운드트랙을 만들어냈지만 <올모스트 페이머스>는 그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처음 바이닐을 턴테이블에 걸고 바늘을 올리는 순간의 카메론 크로우가, 처음 <롤링 스톤>의 기사 의뢰를 받고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타자기를 쳐나갔을 카메론 크로우의 모습이 <올모스트 페이머스> 안에 담겨있다.


김학선 / 대중음악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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