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폴 토마스 앤더슨의 신작 <리코리쉬 피자>가 절찬 상영 중이다. 26세 나이에 데뷔해 독보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한 폴 토마스 앤더슨에 관한 사실들을 모았다.


클리블랜드에서 알아주는 방송인이었던 아버지와 1970년대에 활동한 무명 배우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화감독이 되길 북돋아준 부친 어니 앤더슨이 진행했던 호러 영화 프로그램의 이름을 딴 제작사 구울라디(Ghoulardi) 필름 컴퍼니를 세워, 어린 시절을 보낸 캘리포니아 샌퍼낸도밸리를 배경 삼은 여러 영화를 만들었다.

어니 앤더슨

폴 토마스 앤더슨의 꿈은 한결같았다. 영화감독.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사준 카메라로 영화를 찍기 시작한 그는 고등학생 때 펫샵에서 일해서 모은 돈으로 (훗날 <부기 나이트>의 모체가 될) 30분짜리 페이크 다큐멘터리 <더크 디글러 스토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고등교육 과정에서 영화를 배우진 않았다. 영문학을 공부했던 에머슨 대학에서 만난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는 대학 시절 그가 사랑한 유일한 은사였다. 월리스가 학교를 떠나자 앤더슨 역시 곧 자퇴했고, 뉴욕대학교 필름 스쿨에 입학했지만 이틀 만에 학교에서 영화를 배울 수 없다고 판단해 학비에 여기저기서 모은 자금으로 단편영화 <담배와 커피>(1993)를 만들었다.

<담배와 커피> 촬영 현장의 폴 토마스 앤더슨

로버트 드니로 주연의 <미드나잇 런>(1988)에서 딱 네 장면 등장하는 단역 시드니 역의 배우 필립 베이커 홀을 발견해 <담배와 커피>에 그를 캐스팅 했고, 이 단편을 장편으로 개발해 60대 중반의 필립 베이커 홀이 주인공 시드니(!)를 연기한 <리노의 도박사>를 데뷔작으로 발표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여섯. 본래 제목은 주인공 이름인 ‘신드니’(Sydney)였지만, 호주 수도와 헛갈릴 것을 염려한 제작사는 ‘하드 에잇’(Hard Eight)으로 제목을 바꾸고 멋대로 재편집 했다. 배우들로부터 제작비를 지원 받은 앤더슨은 본인이 원했던 버전을 완성해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출품했다.

<리노의 도박사>

제작사가 영화 제목을 바꿔버리는 수모를 경험한 앤더슨은 영화 제목을 네온사인으로 만들어 두 번째 영화 <부기 나이트>(1997)의 첫 장면을 그걸 큼직하게 보여주는 걸로 시작했다.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가 중년배우 필립 베이커 홀을 위한 영화라면, <부기 나이트>는 또 다른 중년배우 버트 레이놀즈에 대한 편애가 담긴 작품이다. 레이놀즈는 <부기 나이트>가 포르노 산업을 미화시킬 거라고 생각해 7번이나 캐스팅을 거절한 바 있지만, 시장과 비평 면에서 두루 성공을 거둔 <부기 나이트>는 상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레이놀즈가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회를 안겼다. 하지만 필립 베이커 홀과 달리, 레이놀즈와 앤더슨의 관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영화 홍보 중 앤더슨과 다퉈 차기작 <매그놀리아>(1999) 출연 제안마저 거절하면서 그들의 연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부기 나이트>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와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에디(마크 월버그)가 어머니와 싸우는 신을 찍고 난 후 어머니 역의 배우 조애나 글리슨은 앤더슨에게 혹시 이 신이 당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투영한 것이냐고 물었다. 앤더슨은 대답하지 못했고, 글리슨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머니를 용서하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해주었다.

<부기 나이트>

폴 토마스 앤더슨(왼쪽)과 톰 크루즈

<부기 나이트>의 팬이었던 톰 크루즈는 직접 폴 토마스 앤더슨에게 다음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고 제안해 <매그놀리아>(1999)의 주연을 맡게 됐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즈 와이드 셧>(1999) 속 억압된 캐릭터와는 전혀 달랐기에 더욱 <매그놀리아>의 프랭크 역을 즐길 수 있게 됐다. 크루즈는 앤더슨을 <아이즈 와이드 셧> 현장에 초대해 앤더슨이 큐브릭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기도 했다.


구상 단계의 <매그놀리아>는 아주 작은 규모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점점 아이디어가 모이면서 많은 배우들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러닝타임 188분으로 완성됐다. 배급사 뉴 라인 시네마는 톰 크루즈의 영화라는 걸 강조하려고 했으나, <매그놀리아>가 앙상블의 중요한 작품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었던 앤더슨은 직접 목련 잎사귀에 캐릭터들의 얼굴이 새겨진 포스터를 디자인 하고, 예고편도 직접 편집했다.

<매그놀리아> 포스터

C. 라일리는 필립 베이커 홀, 필립 시모어 호프먼과 함께 앤더슨의 초기작 <리노의 도박사>, <부기 나이트>, <매그놀리아> 세 작품에 연달아 출연한 배우다. 무거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에 질린 라일리는 앤더슨에게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캐릭터를 써달라고 청했지만, 이후 앤더슨은 라일리를 캐스팅 하지 않았다.

(왼쪽부터) <리노의 도박사> 촬영 당시 존 C 라일리, 폴 토마스 앤더슨, 필립 베이커 홀.

앤더슨이 유일하게 자기 영화에 얼굴을 비춘 사례. 퀴즈쇼가 시작할 때 출애굽기 82이라는 문구를 들고 있던 이가 바로 앤더슨이다. 출애굽기 82절은 바로 네가 만일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가 개구리로 너의 온 땅을 치리라.” <매그놀리아>는 샌 퍼낸도 밸리에 개구리가 하늘에서 쏟아지는 걸 보여주면서 끝맺는다.


뮤지션 피오나 애플과 몇 년간 연애했던 앤더슨은 2000년 결별하고, 이듬해 배우 마야 루돌프와 만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서로 부부라 칭하며 슬하에 딸 셋 아들 하나 4남매를 두고 있다.


<매그놀리아> 홍보 당시 앤더슨은 작업하고 싶은 배우를 묻는 질문에 애덤 샌들러와 다니엘 데이 루이스라고 대답했다. 너무나 상반된 두 배우라 그걸 농담이라고 여겼지만, 앤더슨은 <펀치 드렁크 러브>(2002)<데어 윌 비 블러드>(2007)를 정말 그 두 배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완성했다. 앤더슨은 현재까지도 샌들러와 데이 루이스 모두 작업한 유일한 감독이다.

<매그놀리아> 촬영현장

<매그놀리아>를 발표한 후 앤더슨은 다중 캐릭터 영화를 연출하는 데 한계에 다다랐다고 느끼면서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내놓은 작품이 바로 <펀치 드렁크 러브>. 애덤 샌들러의 원맨쇼와도 같은 <펀치 드렁크 러브>는 러닝타임까지 <매그놀리아>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95분이다.

<펀치 드렁크 러브>

<펀치 드렁크 러브>2002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처음 공개됐고, 앤더슨에게 감독상을 안겼다. 당시 앤더슨과 감독상을 공동수상한 이는 <취화선>(2002)의 임권택 감독이었다. 당시 두 감독의 나이는 32세, 68세였다.

폴 토마스 앤더슨(왼쪽)과 임권택

초창기 폴 토마스 앤더슨은 탄탄한 스토리텔링 아래 여러 캐릭터들의 앙상블이 돋보이는 스타일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적자라는 평을 받았다.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알트만이 80세에 찍은 영화 <프레리 홈 컴패니언>(2006)의 대타 감독으로 앤더슨이 내정돼 있기도 했다. 결국 알트만은 <프레리 홈 컴패니언>을 유작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났고, 앤더슨은 <데어 윌 비 블러드>를 알트만에게 바쳤다.

<프레리 홈 컴패니언> 촬영현장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전작 <펀치 드렁크 러브>의 팬이라 <데어 윌 비 블러드>의 다니엘 플레인뷰 역을 수락했다. 그가 거절했다면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제작되지 못했을 거라고. 캐스팅을 받아들인 데이 루이스는 역할을 위한 준비에만 꼬박 1년을 매달렸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촬영현장

촬영을 편집하던 시기, 앤더슨은 다니엘 플레인뷰의 정신 상태에 몰입하기 위해 매주 수요일 밤 스테이크와 함께 보드카를 스트레이트로 마셨다.


<부기 나이트>

<데어 윌 비 블러드>는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20142월 세상을 떠나기 전 유일하게 그가 참여하지 않은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다. 본래 앤더슨은 H.M. 틸포드 역을 호프만에게 청할 생각이었지만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이전에 작업해보지 않은 배우들만 캐스팅 하기로 결정했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촬영 기간에 호프만 역시 <시네도키, 뉴욕>(2008)을 찍느라 바쁜 상태였다. 호프만과 앤더슨은 <마스터>까지 총 다섯 작품을 함께 했다.

<펀치 드렁크 러브>

그런데, 앤더슨의 전작에 출연했던 배우들 중 <데어 윌 비 블러드>에도 캐스팅 된 배우가 딱 하나 있다. 프레스콧 역의 폴 F. 톰프킨스다. <매그놀리아>에서 단역을 맡았지만 영화 최종본에선 편집됐다.

폴 F. 톰프킨스

다니엘 플레인뷰의 목소리는 앤더슨이 평소 존경하는 감독 존 휴스턴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앤더슨은 준비 중인 데이 루이스에게 휴스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냈고, 촬영하기 전 매일 밤 휴스턴의 <시에라 마드레의 보석>(1948)을 보았다.

<시에라 마드레의 보석>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업튼 싱클레어의 소설 <오일!>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앤더슨이 가져온 내용은 528 페이지 중 초반 150 페이지에 해당하는 분량이 전부였다.

<데어 윌 비 블러드> 원작 포스터

2000년대 가장 위대한 영화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앤더슨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많은 수익을 거둔 작품이기도 하다. 2500만 달러 제작비로 762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마스터>의 티저 예고편은 앤더슨이 직접 편집했다. 이 예고편이 인상적이었던 건 대부분 영화 최종본에 포함되지 않은 장면들을 조합한 것이기 때문. <인히어런트 바이스><팬텀 스레드> 역시 이와 같은 방식의 예고편을 공개했다.

<마스터>

<마스터>

영화 초반 전역 후 백화점 내 사진사로 일하던 프레디(호아킨 피닉스)가 사진을 찍어주는 세 아이를 실제 제 아이들을 데리고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그 시기엔 혼혈인 아이들이 나란히 모여 사진 찍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었기에 계획을 접어야 만했다


<마스터>에서도 존 휴스턴 감독의 영향이 묻어 있다. 앤더슨은 휴스턴이 1946년 완성하고 1980년에야 공개된 다큐멘터리 <빛이 있으라>에 크게 영향 받았다. 2차 세계대전의 참전용사들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치료하는 과정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는 <마스터>DVD와 블루레이에 부록 영상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마스터>

한편, 랭카스터(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이 벌판에서 오토바이를 타는 신은 조나단 드미 감독의 <멜빈과 하워드>의 오마주다.

<멜빈과 하워드>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부터 2.39:1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를 고집하던 앤더슨은 <마스터>의 화면비를 1.85:1(비스타 비전)로 채택하기 시작해 <인히어런트 바이스><팬텀 스레드> 역시 비스타로 촬영했다. 최신작 <리코리쉬 피자>는 다시 시네마스코프.

2012년 베니스영화제의 폴 토마스 앤더슨

2002년 칸의 <펀치 드렁크> 2007년 베를린의 <데어 윌 비 블러드>에 이어, <마스터> 2012년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유럽 3대 영화제에서 모두 감독상을 받은 유일한 감독이 됐다. 영화가 개봉한 지 6년이 지난 2018년, <인히어런트 바이스> <팬텀 스레드>를 발표한 후에도, 폴 토마스 앤더슨은 <마스터>가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이라고 밝힌 바 있다.


조니 그린우드(왼쪽)와 폴 토마스 앤더슨

데뷔작 <리노의 도박사>부터 <펀치 드렁크 러브>까지 함께한 음악감독 존 브라이언 대신, <데어 윌 비 블러드>부터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 조니 그린우드에게 영화음악을 청했다. 앤더슨과 그린우드의 협업 체제는 최신작 <리코리쉬 피자>까지 15년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로버트 엘스윗 촬영감독

촬영감독 로버트 엘스윗 역시 폴 토마스 앤더슨과 오랫동안 파트너십을 유지한 멤버다. 첫 영화 <리노의 도박사>부터 <데어 윌 비 블러드>(이 작품으로 오스카 촬영상을 받았다)까지 연이어 카메라를 관장해오다, <마스터><본 레거시>(2012) 스케줄로 참여하지 못해 미하이 말라이마레 주니어가 그 자리를 대신했고, 다시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촬영감독을 맡았다. 하지만 <인히어런트 바이스> 작업 중 생긴 불화로 인해 그들의 콜라보는 거기서 멈췄다. <팬텀 스레드>는 앤더슨이 직접 촬영 파트 스텝들과 촬영감독을 대신했고, <리코리쉬 피자>는 앤더슨과 마이클 바우만이 공동 촬영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팬텀 스레드> 촬영현장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미국의 현대 소설을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핀천의 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첫 번째 작품이다. 앤더슨은 이전에 핀천의 또 다른 소설 <바인랜드><메이슨과 딕슨>의 영화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포기한 바 있다. <데어 윌 비 블러드>는 원작의 초반부만 빌려온 것과 달리,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플롯과 대사를 최대한 원작과 가깝게 구현하고자 했다.


호아킨 피닉스 / 닐 영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주인공 닥의 외모는 뮤지션 닐 영이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배경인 1970년에 찍은 사진에서 영감을 얻었다. 또한 닐 영이 감독한 실험영화 <과거로의 여행>(1973)에서 받았던 영감 받아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연출했고, 영화 속에 닐 영의 노래 ‘하베스트(’Harvest) ‘저니 스루 더 패스트’(Journey Through the Past)를 사용했다.


조애나 뉴섬

원작 소설 속 캐릭터 소틸레지는 닥(호아킨 피닉스)에게 중요한 조언을 건네는 조연이었는데, 앤더슨은 시나리오를 쓰던 중 영화에 여자 목소리의 내레이션이 필요하겠다고 판단해 친구인 싱어송라이터 조애나 뉴섬에게 소틸레지는 물론 내레이터 역할까지 청했다. <인히어런트 바이스>가 개봉한 그 이듬해인 2015년 앤더슨은 뉴섬의 뮤직비디오 두 편을 연출했다.


아내 마야 루돌프가 처음 앤더슨과 작업한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촬영 당시 루돌프가 임신하고 있었던 딸 아이다 앤더슨에게 바쳐졌다.


<팬텀 스레드>

폴 토마스 앤더슨은 병 져 누워 있던 어느 날 아내 마야 루돌프가 자신을 보살피면서도 다정함과 사랑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처음 <팬텀 스레드>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비키 크리엡스가 연기한 캐릭터 이름은 원래 아녜스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로 그 이름을 쓸 수 없었고, 크리엡스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아내 알마 레빌의 이름을 따서 알마가 어떻겠냐고 제안해 알마로 정해졌다.



<팬텀 스레드>에서 앤더슨이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레이놀즈가 재단할 때 차를 가지고 온 알마를 내쫓으며 내뱉는 차를 갖고 나가도, 방해는 내 옆에 꼭 붙어 있어. 그의 깐깐함과 집요함이 돋보이는 말.

주인공 레이놀즈 우드콕을 연기한 다니엘 데이 루이스와 시나리오를 함께 쓴 앤더슨은 데이 루이스는 공동각본 크레딧을 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데이 루이스는 <팬텀 스레드>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팬텀 스레드>의 촬영은 2017426일에 끝났다. 그 날은 앤더슨의 친구이자 멘토인 조나단 드미 감독이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앤더슨은 <팬텀 스레드>를 드미에게 바쳤다.


<리코리쉬 피자>는 앤더슨이 가장 사랑하는 배우였던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의 아들 쿠퍼 호프만이 주인공에 캐스팅 됐다는 사실로 큰 화제를 모았다. 생전 호프만의 곁에 어린 쿠퍼 호프만이 있는 사진이 찍히곤 했지만, <리코리쉬 피자>가 생애 첫 연기다. 한편, 영화 후반부 정치인 조엘 왝스(베니 사프디)를 인터뷰 하는 여자 리포터는 쿠퍼의 어머니이자 호프만의 아내 미미 오도넬이 연기했다.

<리코리쉬 피자>에 출연한 쿠퍼 호프만.

알라나 케인 역의 알라나 하임은 세 자매로 이뤄진 밴드 하임의 멤버다. 하임의 멤버인 두 언니 에스티와 대니얼뿐만 아니라 부모 역시 실제 알라나 하임의 가족이 연기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은 지난 5년간 하임의 수많은 뮤직비디오를 연출한 바 있는데, 그들의 연은 하임 자매의 어머니 도나 하임이 앤더슨의 초등학생 시절 미술 교사였던 것에서 비롯됐다.

알라나 하임

폴 토마스 앤더슨은 1997<리노의 도박사>의 음악감독 마이클 펜의 노래 ‘트라이’(Try) 뮤직비디오를 작업한 이래 피오나 애플, 에이미 만, 존 브라이언, 조애나 뉴섬, 라디오헤드, 그리고 하임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왔다. 특히 2016년부터 작업한 라디오헤드와 하임의 뮤직비디오는 촬영감독의 역할을 연마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라디오헤드 '데이드리밍’(Daydreaming) 뮤직비디오

씨네플레이 문동명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