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과 폭우로 존재감을 드러내던 여름이 주춤했다. 늦은 여름 밤에 불어오는 꽤나 선선한 바람은 곧 가을이 다가옴을 실감케 한다. 쌀쌀해지기 전에 바다에 발 한 번 담가 보는 건 어떨까. 혹시 바다에 가지 못한다면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며 영화로라도 바다 여행을 떠나보자. 그림처럼 펼쳐지는 푸른색 바다를 보며 2023년 여름엔 꼭 바다에 발 담글 여유를 누릴 수 있길 바라본다.
모아나(2017)
감독 론 클레멘츠, 존 머스커
출연 아우이 크라발호, 드웨인 존슨, 레이첼 하우스, 테무에라 모리슨, 저메인 클레멘트, 니콜 셰르징거, 알란 터딕
여름 애니메이션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모아나>가 아닐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흥얼거렸을 ‘How Far I’ll Go’는 영화 내내 귓가에 맴돌며 청량함을 더한다. 모아나(아우이 크라발호)는 남태평양 모투누이 섬에 사는 16살 소녀로 개봉 전엔 ‘바다에게 선택 받은 공주’처럼 보였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그냥 ‘모아나’였다. 디즈니가 으레 그려왔던 여타 공주들처럼 비정상적으로 마른 체격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지지 않았다. 모아나는 디즈니의 전형성을 깨고 폴리네시아인 특징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제3국의 시선에서 왜곡하거나 과장하지도 않았다.
<모아나>를 보면 떠나고 싶어진다. 당연한 마음이다. 아름다운 남태평양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모아나는 주어진 운명과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귀기울일 줄 아는 인물이다. 바다로 나가는 여정이 쉽지 만은 않지만 그는 반신반인 마우이(드웨인 존슨)과 함께 암초 너머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내가 속한 세계 너머의 것을 궁금해하는 인물이 몇이나 될까. 당장 지금의 자리를 보존하는 데 모든 신경이 곤두선 현대인들에게 모아나는 ‘모험’이라는 잊혀진 가치를 일깨워준다.
- 모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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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론 클레멘츠, 존 머스커
출연 드웨인 존슨, 알란 터딕, 아우이 크라발호, 저메인 클레멘트, 니콜 셰르징거, 테무에라 모리슨, 레이첼 하우스
개봉 2017.01.12.
루카(2021)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
출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잭 딜런 그레이저, 엠마 버만
21세기 동화를 만들어내는 디즈니·픽사에서 만든 <루카>는 사랑스럽다. 여름의 한가운데서 보기 좋은 <루카>는 우정과 도전이 편견과 혐오를 깨는 과정을 디즈니·픽사가 할 수 있는 가장 최대한의 사랑스러운 언어로 이야기했다. 깊은 바다 속에 살지만 늘 바다 밖 세상을 궁금해하는 루카(제이콥 트렘블레이)는 어느 날 자칭 인간세상 전문가 알베르토(잭 딜런 그레이저)와 함께 바다 밖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게 된다. 새로운 친구인 줄리아(엠마 버만)와 함께 마을 전통 대회 철인 3종 경기를 준비하기도 하며 인간 세상에 녹아들지만 물에 닿으면 괴물로 변하는 모습 때문에 언제 비밀이 들킬지 조마조마하다. 영화는 루카와 알베르토, 줄리아의 관계성을 통해 각자의 성장 방식을 보여준다. 서로의 결핍을 이해하고, 편견을 함께 뛰어넘고, 꿈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여름 날의 우정을 가장 생생하게 그려낸다.
영화의 배경이 된 이탈리아 북서부에 위치한 리비에라 지역의 친퀘테레는 엔리코 카사로사 감독이 유년 시절을 보낸 해변 마을이다. 흔히들 ‘추억 보정’이라고 하지 않나.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영화의 근간이다보니 영화 속 마을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그시절 고향을 영원히 아름답게 떠올리듯이. 제작자 안드레아 워런은 “이 영화의 궁극적 목표는 이탈리아 한가운데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루카>를 보면 안다. 그의 말이 성공했음을.
- 루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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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엔리코 카사로사
출연 제이콥 트렘블레이, 잭 딜런 그레이저, 엠마 버만
개봉 2021.06.17.
<맘마미아!>(2008)
감독 필리다 로이드
출연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스텔란 스카스가드, 아만다 사이프리드
<맘마미아!>의 세계관을 거부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한여름 그리스 섬의 풍광과 아바(ABBA)의 히트곡, 그리고 늘 나를 사랑하는 소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세계. 그야말로 유토피아다. 영화 속 칼로카이 섬은 유토피아처럼 실재하지 않지만, 영화의 촬영지는 존재한다. 그리스의 스코펠로스 섬에서 촬영된 이곳은 엄마 도나(메릴 스트립)가 스카프를 휘날리며 아바의 노래를 불렀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제는 스코펠로스 섬보다 칼로카이 섬으로 더 많이 불린다고 하니, 언젠가 유토피아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는 딸 소피(아만다 사이프리드)가 결혼을 앞두고 우연히 엄마 도나(메릴 스트립)의 일기장 안에서 아빠 후보 세 명을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자신의 결혼식에서 엄마의 손을 잡고 입장할 아빠를 찾기 위해 소피는 세 사람을 결혼식에 초대하고 도나는 의도치않게 사자대면을 하게 된다. 사실, 아바의 노래를 기반으로 한 뮤지컬이 원작인 영화라 스토리는 크게 중요치 않다. <맘마미아!>를 볼 때 필요한 것은 단 한가지, ‘흥’ 뿐이다. 그저 즐기면 된다. 어떠한 고민도, 걱정도 없는 그곳이 바로 유토피아니까.
- 맘마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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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필리다 로이드
출연 메릴 스트립, 피어스 브로스넌, 콜린 퍼스, 스텔란 스카스가드, 아만다 사이프리드
개봉 2008.09.03.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2014)
감독 가와세 나오미
출연 무라카미 니지로, 아베 준코
‘자기 치유의 영화’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감독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그린 바다,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다. 영화는 아마미 군도를 배경으로 해변에서 떠오른 시체를 발견한 소년, 소녀가 삶과 죽음의 과정을 겪으며 인생의 의미를 깨달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소년 소녀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라 생각하고 쉽게 접근하면 내용의 깊이에 놀랄 수도 있다. 영화에서 나오는 대사 중 “생명은 쭉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죽는 것이 무섭지 않다”는 거대한 자연 속 생의 순환을 뜻한다. 그리고 주인공 카이토(무라카미 니지로)와 쿄코(아베 준코) 역시 자연의 일부로 그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간다.
영화의 배경이 된 아마미 군도는 오키나와 현 근처에 있는 작은 섬들로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아 자연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다. 군도인 만큼 여러 해변이 있지만 그중 가장 추천하는 곳은 역시 오하마 해변. 일본 최대 규모의 산호초 군락이 형성되어 있어 ‘산호초들의 마지막 안식처’라고도 불린다.
-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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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가와세 나오미
출연 무라카미 니지로, 아베 준코
개봉 2014.10.09.
<그랑블루>(1993)
감독 뤽 베송
출연 장 르노, 쟝 마르 바, 로잔나 아퀘트
너무 뻔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그럼에도 바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영화, 뤽 베송 감독의 <그랑블루>다. 영화는 그리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자크(쟝 마르 바)와 그의 유일한 친구 엔조(장 르노)의 우정, 그리고 바다를 그리고 있다. 자크와 엔조는 바다에서 잠수 실력을 겨루며 서로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프리다이빙 챔피언인 엔조의 초대로 두 사람은 재회하게 되고 자크는 그곳에서 운명의 상대 조안나(로잔나 아퀘트)를 만나게된다. 대회에서 엔조는 자크에게 패배하고, 그의 승리를 인정하면서도 무리한 잠수를 시도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고 만다.
바다는 시치미를 곧잘 뗀다. 거칠땐 그 누구보다 흉폭해지다가도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모습으로 돌아선다. 바다는 두 얼굴을 갖고 있고, <그랑블루> 속 인물들은 그런 바다를 닮아있다. 자크는 바다에서 아버지를 잃고 커다란 상실을 경험하지만 결국 바다 안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엔조 역시 자크에게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의 상실에 공감하며 우정을 다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양면성을 영화는 바다를 통해 보여준다. 양면 중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알 수 없다. 바다는 결코 정답을 알려주지 않으니까. 때로는 지평선의 고요함이 안식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거친 파도가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 그랑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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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뤽 베송
출연 로잔나 아퀘트, 쟝 마르 바, 장 르노
개봉 1993.05.15. 2013.07.25. 재개봉
씨네플레이 객원기자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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