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와 이순신: 〈성웅 충무공〉부터 〈노량〉까지

지난 한국영화에서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그가 지휘했던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많은 작품들이 존재했다. 이 영화들은 같은 인물과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만 이순신의 이미지, 인물을 바라보는 관점, 전투를 그리는 방법 등에 있어 시대별로 다양한 접근과 영화적 특징을 보여준다. 이순신 삼부작의 종지부 <노량>의 개봉을 맞아 이번 글에서는 역대 한국영화에서 이순신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그의 전투를 영화화 한 작품들을 선정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성웅 충무공> (이용민, 1955)

​기록에 의하면 <성웅 충무공>은 34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이다. 많은 기록이 존재하진 않지만 놀라운 사실은 휴전 직후에 극영화도 아닌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 작품의 감독이 이용민이라는 사실이다. 이용민 감독은 <목 없는 미녀>(1966), <살인마>(1965) 등의 영화사에 길이 남을 만한 괴기 영화를 연출했고, 이후로도 공포물에 집중하여 한국영화로서는 드물게 한 장르에 특화한 ‘대가’로 인정을 받았다. 영화의 형태가 단편이자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그리고 문교부의 추천을 받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영화는 상업적인 목적이 아닌 교육용으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쉽게 찾아보기 힘든 작품이나, 한국영상자료원 영상도서관에 방문하면 VOD 관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2. <성웅 이순신> (유현목, 1962)
 


<성웅 이순신>은 유현목 감독의 (1961년에 연출한 <임꺽정>에 이은) 두 번째 역사 영화다. 영화는 위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기 영화의 관습을 그대로 따른다. 이순신의 거북선 제작부터 시작해 투옥을 거쳐 노량해전에서의 승리와 전사까지 잘 알려진 역사적인 사실을 시간 순서대로 기록한다. 1961년에 연출한 <오발탄>으로 유현목 감독은 박정희 정권의 영화 검열로 수난을 당해야 했다. 영화가 그리는 가난의 묘사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할머니의 대사 “가자, 가자”라는 대목 때문이었다. 정권은 이 대사가 ‘북으로 가자’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영화는 상영 보류 처리되었다. <오발탄>이 비로소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은 2년 후에 영화가 샌프란시스코 영화제에 출품 결정되면서였다.


유현목 감독에게 있어 <오발탄> 사건(?)은 검열의 패악질을 몸소 경험한 초기 단계였을 것이고, 그에게는 작지 않은 트라우마를 남겼을 것이다. 이후 그의 행보를 보면, <임꺽정> 그리고 지금 언급하는 작품, <성웅 이순신>과 같은 역사물, 즉 당시 정권이 선호했던 영웅 영화에 할애된다(그 사이에 연출했던 멜로 영화 <아낌없이 주련다> 역시 유현목 감독이 선호했던 사회적 리얼리스트 영화와는 거리가 먼 최루성 멜로영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성웅 이순신>은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기보다 정치적 상황이 만든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이 영화가 외화쿼터의 특전을 받은 최초의 영화라는 점, 그리고 대한영화사의 정부 보조 원조금을 받은 최초의 영화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유현목 감독의 생존지책이었다는 것이 더욱더 명백해 보인다.

 

3. <난중일기> (장일호, 1977)
 


앞서 언급한 유현목 감독의 <성웅 이순신>과 거의 같은 이야기 구조(거북선 제작으로 시작해 노량해전에서의 전사로 끝맺음을 하는)를 가지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1974년 제4차 영화법 개정(유신 직후에 공표되었다고 해서 ‘유신영화법’으로도 불린다) 이후로 한국영화는 더 극심한 영화 검열에 시달려야 했고, 그 결과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 사극영화가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사극영화는 일반적으로 영웅을 중심으로 하는 ‘계몽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보여 검열에 비교적 안전한 분야였고, 또한 박정희 정권이 검열의 반대 노선으로 만든 ‘우수영화’ 선정 정책에도 유리한 장르였다. 이순신을 예로 들면, 1970년대만 해도 <성웅 이순신>(이규웅, 1971), <난중일기>(장일호, 1977) 등의 이순신 영화가 개봉했다. 물론 극장 관객들은 교육 영상에 가까운 사극영화보다는 1974년 <별들의 고향>으로 포문을 연 ‘호스티스 멜로드라마’에 더 열광하는 듯 보였다.


그럼에도 <난중일기>의 감독, 장일호만큼은 흥미로운 인물이다. 1961년에 데뷔한 그는 1980년대 중반까지 꾸준히 작품을 남겼으나 동시대 다른 감독들만큼 조명을 받지 못했다. 예컨대 유현목, 신상옥 감독이 주로 60년대를, 이장호, 김호선, 하길종 감독이 70년대를, 이두용, 임권택 감독이 80년대를 대표한다면, 장일호는 이 모든 시대에서 꾸준히 주류 상업 영화를 만들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의 대표작은 <사랑하는 사람아>로 명시되지만 이 지면을 통해 (그의 필모그래피에 빠져 있는) <정형미인>이라는 작품만큼은 꼭 언급하고 싶다. 성형수술로 얼굴을 바꿔 고양이가 되는 여자(유지인)를 그린 매력적인 괴작이다. 아마도 유현목 감독과 비슷한 이유로 <난중일기>를 연출했을 (외화 쿼터 혹은 우수영화 정부 보상) 장일호 감독의 대표작으로는 손색이 없는 컬트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 이순신 트릴로지 (trilogy):
<명량>(2014), <한산>(2022), <노량>(2023)

 


이순신 삼부작의 첫 번째 파트, <명량>이 관객 수 1700만 명이라는 경이로운 숫자를 기록했을 때도, 김한민 감독이 삼부작으로 이순신 유니버스를 완성하겠다고 언급을 했을 때도, 실제로 이 10년에 걸친 프로젝트가 실제로 완성될 것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앞선 <명량>보다는 다소 흥행이 부진했던 <한산: 용의 출현>(그럼에도 700만 이상을 동원했다)의 기록, 그리고 현재 기준 개봉 3일차에 100만을 넘긴 스코어를 고려하건대, 김한민 감독의 이순신 삼부작은 이미 한국영화 사상 최고 흥행 ‘이순신 영화’로 남을 것이다. 또한 이용민, 유현목, 장일호를 포함한 앞선 감독들의 이순신 영화가 그들의 선택이 아닌, 정권의 선택에 가까웠다면 김한민의 ‘이순신 삼부작’은 한국영화 최초로 감독의 예술적인 의지로 관객의 자발적인 사랑을 받은 가장 이상적인 이순신 영화다. 특히 트릴로지의 종지부인 <노량: 죽음의 바다>(이하 <노량>)는 이미 메인 캐릭터, 즉 이순신의 죽음이 전제되어 있는 파트이기에 창작자에게는 분명 부담과 고민이 많이 되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량>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바로 그 죽음과 사건을 가장 시적이고 아름다우며 웅장하게 재현해 냈다. 영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해상 전투 씬과는 별개로 이순신의 죽음과 그의 투혼을 다룬 20분여 간의 마지막 시퀀스는 <명량>과 <한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감동적이고 우아한, 실로 이십 년 프로젝트에 걸맞은 기품 있는 종지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노량>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연상시키는 오프닝, 그리고 하나의 사건을 3국의 시점에서 범아시아적으로 그려낸 구도, 그리고 이 놀라운 엔딩 만으로도 그 10년의 영광을 모두 받아 마땅한, 수작이자 명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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