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다 자란 성인이 되고도 당신이 성장영화에 지속적으로 매혹된다면, <여름이 지나가면>은 정확히 그 요소들을 탑재한 영화다. 농어촌특별전형 혜택을 받으러 서울을 떠나 도착한 지방 소도시, 13살 소년 기준(이재준)은 그곳에서 부모의 보호 없이 무법자처럼 행동하는 소년 영문(최현진)을 만나고 영문이 지배하는 폭력의 세계에 가담한다. 입시, 성공, 출세, 아파트 같은 어른들의 ‘기준’에 맞춰 착실하게 성장하던 기준에게 영문은 보자마자 자꾸만 궁금한 존재다, 자신만의 법칙으로 살아가는, 어른보다 더 어른 같은 또래의 소년은 기준에게 ‘영문’도 모른 채 한없이 빠져들게 된 매혹이자 경외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여름이 지나가면>에서 영문은 극의 서사이자, 장르가 된다. 영문을 둘러싼 세계가 사춘기 소년들의 폭력의 세계를 그린 <파수꾼>과 닮았다면, 그가 처한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세계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에 맞닿아 있다. 지지부진한 재개발로 몸살을 앓는 폐허에서 누구도 영문을 구해주지 않는 비정한 현실. “그 나이였을 때 내가 기준이였다”는 장병기 감독은 기준의 시선으로 바라본 영문에게서 곧장 ‘불편함’이라는 단어를 꺼내든다. 영문은 “우리가 불편하게 한때 외면했던 아이들”이자 영화는 그 상태로 보호받지 못하고 어른이 된 아이들의 지난여름을 조명한다. 그렇게 성장영화의 요소를 불러와, 이 영화는 성장영화의 모든 걸 거부하는 영화가 된다. 감독은 호락호락하게 이 아이들의 미래를 제시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씁쓸하고 비정한 누아르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상을 뚫고 자란 아이들에게 마치 미하엘 하네케처럼 인물들을 날카롭게 헤집고자 한다.

단편 <맥북이면 다 되지요>(2017)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대상 수상, <할머니의 외출>(2019) <미스터 장>(2021)등의 단편을 연출해 온 장병기 감독은 꾸준히 독립영화의 현장에 스태프로 참여하며 장편영화를 준비 해왔고, 이 작품으로 첫 장편을 완성했다. 대학에서는 철학을 공부했고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열심히 하면 길은 열린다’는 낙관으로 버텨왔다. “영화로는 생계가 안되니 반도체 공장에서 배관일을 하며 영화가 있으면 나왔다가 다시 들어갔다를 반복했죠”. 제법 기술자가 되어 이제는 수익이 꽤 되지만, 거기 안주하면 영화는 못 찍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장편 작업에 매달렸다고 한다. 개봉을 앞둔 지금, 그는 대구예술지역사업으로 월 120만 원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현실은 쉽지 않았지만, 아직은 ‘이거 안 되면 그만둘까?’ 이런 마음까진 들지 않아요. 한 편만 더 만들어보고 나서, 그다음 길을 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첫 장편으로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초청으로 화제를 모은 그가 이제 관객과의 만남을 앞두고 있다. 성장이 아닌 붕괴에 가까운 정서적 충격을 선사하는, 이 씁쓸한 여름의 기억으로 신예 장병기 감독이 벼리는 칼이 만만치 않다는 것, 낯설지만 매혹적인 톤을 가진 감독의 등장에 반가움을 더하며, 시사가 끝난 후 장병기 감독과 인터뷰를 가졌다.

7월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요. 첫 장편 개봉을 앞둔 기분이 어떠신가요.
실감이 잘 안 나요. 영화제에서 상영한 적은 있었지만 정식 개봉은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선배 감독님들이 ‘개봉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라고 겁을 주셨거든요. “벌거벗은 기분이다” “첫아이 낳는 느낌이다” 그런 말들이 다 겁으로 다가왔고,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얼떨떨합니다.
사회적 병폐 안에 처한 소년들을 통해 성장 스토리를 풀어냈는데요. 영화의 출발점은 어디였나요.
저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겠다는 사명감보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 과정에서 내가 자라온 환경이나 겪었던 경험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요. <여름이 지나가면>은 2019년 한국영상위원회에서 진행한 지역 영화 기획개발 사업을 계기로 시작됐어요. 그때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의 이미지는 떠올리고 있었어요. 축구를 더는 하지 않기로 한 아이들. 공설운동장에서 군 체육대회가 열리는 와중에, 입구에서 두 아이가 경기장을 바라보다가 돌아서는 이미지였어요. 이 장면을 엔딩으로 놓고, 거기까지 가는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이었죠. 어른들이 보면 "그래서 축구 안 한다는 거지?" 싶겠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들한테는 세계가 무너지는 일이에요. 그 감정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사건의 발단이 리얼한 현실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농어촌 특별전형’ 제도로 입시의 편의를 보고자, 기준 엄마가 기준을 데리고 소도시로 전학을 오는데요. 실제로 입시에 악용된 사례이기도 한대요.
네, 그건 제가 중고등학생일 때 굉장히 큰 이슈였어요. 성적이 안 좋아도 읍이나 면 단위로 전학만 가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고, 농어촌 특별전형도 비슷했죠. 행정구역 경계를 교묘하게 활용하면 입시에 유리한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어요. 돈과 정보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악용할 수 있는 구조였죠. 저는 이 제도 속에서 벌어졌던 편법과 그 안에서 생긴 위화감, 계급 감각 같은 게 영문과 기준이라는 두 인물 사이의 균열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결과 낯선 환경에 처한 기준의 혼란한 시선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데요. 기준의 시선으로 아파트 개발을 둘러싼 이권으로 몸살을 앓는 어른들의 세상, 불안정한 공간이 묘사됩니다. 촬영은 어디서 진행됐나요? 공간의 리얼함이 인상 깊었어요.
주로 울산 울주에서 촬영했어요. 우리가 마음속에 그리는 예쁜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애매한 중간 지대를 찾고 싶었어요. KTX 울산역 근처에 내리면 ‘뭐지 이 동네?’ 싶은 기분이 들거든요. 너무 낙후되지도 않고, 도시라기엔 뭔가 어긋난 느낌. 그런 애매한 공간이 이 이야기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촬영은 울산 외에도 밀양 쪽에서도 했어요.
기준이 도착한 그곳에는 영문이라는 인물이 있는데요. 부모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기준과 달리, 영문은 부모 없이 방치된 인물이에요. 영문은 어떤 배경에서 탄생한 캐릭터인가요.
어릴 적에 제가 무서워하던 동네 형, 혹은 친구를 떠올리면서 만들었어요. 그 친구가 갑자기 확 화를 낼 때,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겁만 났던 기억이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친구도 뭔가를 잃고 있었거나, 계속 참아온 게 있었을 거예요. 지금 성인이 된 내가 그때의 영문이를 다시 바라보면, “아, 저건 사랑을 배워본 적 없는 사람의 반응이구나” 같은 식으로 이해가 되거든요.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 인물의 결핍을 감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외적인 폭력성에서 한 꺼풀 나아가면 영문의 거친 행동이 단순히 폭력이 아니라 생존 방식, 방어 기제처럼 보이는데요.
맞아요. 영문이는 ‘무엇이 괜찮고, 무엇이 나쁘다’는 걸 명확히 배우지 못했어요.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였다면 부모에게 묻고, 혼나기도 하면서 윤리와 도덕을 배웠겠죠. 그런데 영문이는 스스로 체득한 삶의 습관 같은 게 존재하는 거죠. 비행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또래 아이들에게 으스대는 데서 재미도 느껴요. 제대로 배우지 못하다 보니 뭐가 되고 안되고가 애매하죠. 세상과의 경계가 흐릿하고, 생존과 재미, 방어 본능이 모호하게 겹쳐 있는 인물이에요. 누군가를 위협할 때도, 돈을 훔칠 때도 나름의 논리가 있죠. 예를 들어 돈을 가져갈 때 “나중에 갚는다”고 말하는 식이에요. 그는 그게 도둑질이라는 걸 명확히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거예요.

관객에게는 영문을 위한 변명의 시선일 수도 있는데요. 감독님은 영문의 폭력적인 언사의 수위가 꽤 높아 영문을 향한 관객의 감정적 동화를 자주 막아서는데요.
이런 작품을 찍으면서 폭력을 미화하지 않을까, 그게 제일 경계했던 부분이에요. 영문이는 쉽게 동정받을 수 있는 캐릭터예요. 제 스스로 영문이와 일정 거리를 두려고 엄청 노력했어요. 욕설을 조금 순화하면 영문이에게 진짜 빨리 마음이 가 버려요. 그래서 일부러 욕설도 더 넣었고, 거칠고 불편한 존재로 끝까지 남겨두고 싶었어요. 현장에서는 배우가 아직 어리다 보니 연출을 할 때 표현이 조심스러웠어요. 워낙 욕도 많고, 폭력적인 장면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영문을 연기한 (최)현진이에게 물어봤어요. “이런 연기 괜찮겠니?” 했더니, 정말 어른처럼 대답하더라고요. “감독님, 저는 이보다 더한 역할도 해봤어요. 이건 연기인 걸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요”. 그 말을 듣고 많이 고마웠고, 믿음도 생겼어요. 물론 저는 끝까지 영문이라는 인물이 불편한 존재로 남기를 바랐어요. 그게 이 이야기의 중심이고, 현실의 어떤 단면이니까요.
기준은 영문이 지배하는 다크한 세계에 금세 빠져드는데요. 영문에 대한 기준의 감정은 또래 소년이 가지는 두려움과 동경이 혼재되어 있어요. 기준은 어떤 인물이라고 보셨나요.
기준이는 전형적인 중산층 아이예요. 평범한 윤리 교육을 받고,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자라온 아이죠. 그런데 어느 날 영문이라는 인물에게 끌리죠. 그건 동경이기도 하고, 우월감이나 죄책감이기도 할 수 있어요. 저는 기준이가 자기 인생을 마치 누아르의 주인공처럼 자신을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영문이라는 친구를 만나며 “내가 뭔가를 쥐게 됐다”고 착각하는 거죠. 영문이라는 보스를 만나서 자신이 강해지고 있다고 믿죠. 어떤 서부극의 총잡이처럼. 영문의 폭력적인 방법을 습득해서 아이들에게 써먹기도 하고요. 그런데 결국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아무것도 책임지지 못한 채 비겁하게 도망치죠. 그 순간, 그 착각은 깨지고 그의 누아르는 끝나요. 전 그 장면이 좋아요. 영화의 무드도, 캐릭터의 인생도 거기서 단절되니까요. 그게 제가 의도한 ‘반(反)성장 영화’의 핵심이에요. 기준이의 누아르는 너무 보잘것없고, 기준이가 무너지면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던 성장 이야기라는 껍데기도 없어지는 거죠.
그렇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기준과 영문의 관계가 흥미로운데요. 둘 사이의 감정을 조금 더 파고들면 서로에게 끌리는 멜로적인 정서도 다분히 존재한다고 느꼈어요.
네. 저도 멜로적 정서가 있다고 생각해요. 인간 사이의 감정을 표현하는 넓은 의미의 멜로로 보면요. 다만, 이성적 호기심 같은 걸 명확히 염두에 두진 않았어요. 기준은 영문을 단순히 ‘다른 아이들보다 더 똑똑하고, 자신을 잘 따라다니는 아이’ 정도로 생각하다가, 기준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돈을 주는 장면에서 처음으로 ‘환경의 차이’라는 걸 느끼게 되는 거죠. 그 장면이 두 사람 사이에서 어떤 균열의 시작이에요.


기준뿐만 아니라 기준을 향한 영문의 감정의 혼란을 묘사한 장면이 인상적인데요. 기준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기준이 자신을 인지하자 되려 그를 위협하고 이내 ‘장난이었다’고 감정을 번복하죠.
그 장면에서 영문을 연기한 최현진 배우가 “어떻게 쳐다봐야 돼요?”라고 물어봤을 때 저는 이렇게 말했어요. “영문이라면, 지금 상황은 진짜 이해가 안 될 거야”. 친구의 아버지가 상대 아이에게 돈을 주는 장면은, 영문에겐 생소한 감정이거든요. 설명할 수 없는 자존심이 상한 상태인데, 그걸 정리할 수 있는 언어는 그에게 없어요. 그래서 그다음 장면에서 기준을 장난처럼 위협해보지만, 결국 본인도 혼란스럽고, 관계는 예전 같지 않다는 걸 깨닫는 거죠.
기준의 부모, 선생, 동네 어른들 등을 통해 어른의 역할, 어른의 행동을 주시해 본다면 이 영화의 모든 어른들은 불완전하죠. 온정의 시선이 전부이자, 결국 기준에게 ‘네가 저 애들하고 같은 줄 알아?”라며 계급과 환경의 차이를 주지시키는 건데요. 이 차별의 시선이 통속극의 형태를 제공해 주기도 하는데요. 가령 기준의 엄마는 영문을 기준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었어요.
기준의 엄마는 자신이 영문을 도와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위치예요. 맛있는 것도 사주고 타이르면 된다는 생각을 하죠. 그러면서 기준이와 조금 거리를 두고 싶게 하는 정도의 좋은 마음 정도로 갔지만, 기준의 경험치는 이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은 거죠.
성장 영화의 요소들을 모두 차용하고 있지만 결국 말씀하신 회의적인 시선이 이들의 성장을 끝까지 가로막는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전 이 작품이 성장 영화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성장을 가장한 무너짐’의 이야기죠. 성장이라는 말로 마무리되기엔 이 이야기는 불편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준이는 어른이 되면 잘해야 자기 엄마 정도의 삶을 살겠죠. 영문이나 영문의 동생 영준이는 사회의 시스템에서 완전히 밀려난 아이들이에요. 그 현실 자체가 이미 파괴되어 있는데, 위로조차 안 되는 구조인 거예요. 그래서 이 영화는 ‘이 세상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영화예요. 모든 인물들이 다 결함 있고, 위선적이고, 누군가를 온전히 구해낼 수도 없어요. 기준이도 영문이도, 그냥 그렇게 지나가는 여름의 일부일 뿐이죠. 이 영화를 성장 드라마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영문의 캐릭터가 이 영화의 정서를 대변한다면,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아무도 모른다>와 윤성현 감독의 <파수꾼>의 정서와 장르적 장치가 결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 영화들을 다 좋아해요. 직접적으로 참고한 건 아니지만, 무의식중에 영향을 받았을 수 있죠. 그런데 사실 저는 (미하엘) 하네케 같은 영화 스타일을 정말 좋아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물론 좋아하지만, 제 취향은 좀 더 건조하고 고약한 쪽이에요. 영화 찍을 때 촬영감독이 레퍼런스를 요구해서 하네케의 <해피엔드>(2017)를 보여주기도 했고요.
캐릭터들의 외적 표현도 중요한 지점인데요. 기준이 영문에게 매혹되듯, 관객도 사춘기 소년인 영문에게 신비하거나 절대적인 매혹이 필요했다고 생각하는데요. 가녀린 몸, 날선 눈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헤어스타일이 영문의 캐릭터를 완성하는데요. 눈을 덮어 감정을 차단하는 영문의 긴 머리는 반항과 자유의 상징처럼 활용돼요. 영문을 따라하고 싶은 기준 역시 앞머리를 길러 아버지의 핀잔을 듣죠. 캐릭터 디자인은 어떻게 해 나갔나요.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영문이를 더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으로 설정했어요. 거칠고 리얼하게요. 그런데 막상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가고, 스태프들과 상의하다 보니 ‘멋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결국 저도 그 방향을 수용했고,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된 현진이가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어요. 원래는 짧은 머리였는데, 캐릭터를 위해 기르자고 한 거죠. 반면, 기준이의 헤어스타일은 더 드라마틱하게 변화하고 싶었어요. 영화 중후반, 기준이 머리를 확 밀고 나오는 장면에서 이미지의 변화, 계절의 흐름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배우가 다른 작품에 출연하고 있어 스타일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앞머리를 최대한 내리게 하고, 영문이를 따라하려는 느낌을 최대한 살렸죠.
영문과 기준을 중심으로 어린 배우들 간의 케미스트리가 중요한 작품이었는데요. 자연스럽고 디테일한 연기가 돋보이는데요. 연기 디렉팅은 어떻게 하셨어요?
미성년 배우들과 작업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열세, 열넷, 열다섯 살이었는데, 오디션과 리딩을 하면서 이미 이 친구들은 성인 못지않은 프로라는 걸 느꼈어요. 익숙해지기까지 사실 처음엔 실수도 있었어요. 첫 촬영 때 제가 최현진 배우에게 “OK!”를 크게 외쳤더니 옆에서 다른 배우들이 다 듣고 있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비교가 될 수밖에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 이후로는 더 조심스럽게 신호를 주고받았어요. 특히, ‘이 장면이 좋았어, 다시 그렇게 해봐’ 같은 디렉션은 오히려 배우가 의식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좋은데 한 번만 더 가자” 같은 방식으로 유도했어요. 나중엔 배우들끼리 ‘좋은데 다시 간다는 말은 감독님이 마음에 안 드신다, 아직 만족하지 못했다는 뜻’이라고 통역(?)도 하더라고요. (웃음) 그게 이후에 제 시그니처처럼 됐나 봐요. 현진이 어머니께서 마지막 촬영 날, 깜짝 선물을 준비해 오셨는데 리본에 “좋아요. 한 번 더 갈게요”라고 쓰여있었어요. 선물이 웃기기도 하면서, 감동적이었어요. 아역 배우들과는 그런 식으로 마음이 오가니까, 더 잘 찍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제목에 명시된 ‘여름’을 어떤 의미로 정의하고 싶으신가요. 즐거운 여름이 아니라 볕이 상처가 날 정도로 따가울 수 있겠다 싶은데요.
영화에서 말하는 여름은 영문이 형제의 여름이에요. 기준이에게는 ‘여름’이 또다시 찾아올 수 있죠. 서울로 돌아가서 리셋하고, 다른 이름으로 시작하면 새로운 여름을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영문이는 이 여름이 마지막이에요. 학교도, 밥을 공짜로 얻어먹을 수 있는 집도, 이제는 더 이상 없어요. 축구도 하지 않고,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아이. 그래서 ‘여름이 지나가면’이라는 제목은 이 아이에게 해당되는 말이에요. 영문이의 여름이 끝나버렸다는 의미죠. 그 뜨거움 속에서 뭔가를 잃는 시간이기도 하죠. 성장과 함께 오는 아픔, 혹은 되돌릴 수 없는 무언가가 여름에 녹아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그럼에도 기준이의 비겁함에 대한 변명을 해주신다면요?
그 나이의 제가 어린 시절의 기준이였기 때문에 기준이를 더 가혹하게 묘사할 수 있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른이 된 지금은 제가 영문이에게 더 가까운 쪽이었죠. 그때의 기준이를 변명한다면 그 나이에, 그 환경에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엄마는 몰아세우고, 학교도 차갑고, 영문과의 관계는 복잡하고. 기준이도 선택지가 많지 않았어요. 기준이는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을 뿐이에요. 그것도 결국은 현실이 주는 구조적인 비겁함이죠. 그래서 기준이의 행동을 나쁘다고만 말하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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