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 단어를 보고 연상할 수 있는 것들이 천편일률적이지 않고 의외로 다양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곤 한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그만큼 다른 것이고 그래서 사람이라는 존재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거겠지.
 
예를 들어볼까, 경제 위기라는 단어를 신문에서 보면 사람들은 기사 말대로 위기를 느끼지만 소위 투자자라는 족속들은 기회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아메리카노라는 단어를 보면 바리스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커피를 떠올리겠지만 바텐더나 칵테일 덕후들은 캄파리 베이스의 칵테일을 떠 올릴 것이다. 최근엔 오래간만에 예전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카우보이라는 단어를 보고도 사람들마다 다른 이미지를 떠올리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카우보이야 당연히 서부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일 텐데 헤비메탈 팬들은 지금은 없어진 밴드 판테라(Pantera)의 명곡 ‘카우보이 프롬 헬’(Cowboys from hell)의 리프를 떠올릴 것 같고 애니메이션 팬들은 아마도 이 애니메이션을 떠올리지 않을까. 바로 <카우보이 비밥>.

<카우보이 비밥>은 와타나베 신이치로가 감독을 맡아 선라이즈에서 1998~99년에 방송된 TV애니메이션 시리즈를 기본으로 하며 200191일에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이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영화 속에선 21세기 후반 달이 파괴되면서 지구가 완전히 망가진 후 태양계 전체를 무대로 범죄조직과 정부 조직, 그 가운데 범죄자들과 또 이를 쫓는 현상금 사냥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른 등장인물들도 그렇지만 특히 주인공 스파이크를 보면서 예전 영화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듯.
 
당장 스파이크가 쓰는 무술은 얼핏 봐도 이소룡의 절권도고 <영웅본색>이나 <첩혈쌍웅>같은 홍콩 누아르 영화에서 차용한 듯한 장면들이 정말 많다
  
카우보이(영화에선 현상금 사냥꾼이란 의미로 쓰인다)인 주인공 스파이크와 제트, 페이, 에드 그리고 정말 귀여운 웰시코기 강아지 아인이 조화를 이뤄 만들어내는 탄탄한 스토리가 그야말로 여러 연주자들이 합을 이뤄 만들어내는 재즈의 장르 비밥과 흡사하다.

이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칸노 요코 역시 정말 유명한데 제목대로 비밥과 그 모태인 재즈를 중심으로 어마어마한 퀄리티의 O.S.T.를 뽑아냈다. 심지어 감독인 와타나베 신이치로조차 작품의 인기는 전적으로 O.S.T. 덕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을 정도. 작품만큼의 인기로 일본에서만 10개의 O.S.T. 앨범이 발매되었다.

영화를 몰라도 음악은 다 아는 카우보이 비밥의 주제가 ‘탱크’(Tank)

글의 서두를 보고도 필자가 왜 한 단어의 여러 가지 의미를 이야기했는지 어떤 분들은 눈치채셨을 듯. 아메리카노가 그랬듯 카우보이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다른 의미가 또 있다. 바로 칵테일. 미국을 대표하는 위스키 버번에 우유를 넣은 칵테일을 카우보이라고 부른다.

스카치위스키에 우유를 섞은 칵테일은 그냥 스카치 밀크라고 부르지만 버번위스키에 우유를 섞은 것은 버번 밀크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도 재미있다. 카우보이라는 어원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면 소 치는 목동, 그리고 그 사람들이 즐겨 마셨을 술 버번, 이 둘의 의미가 합쳐지니 이 칵테일을 카우보이라고 이름 지은 것도 꽤나 좋은 아이디어인 듯. 

카우보이. 비싼 버번은 필요 없고 짐빔이나 달달한 잭다니엘도 좋다.

딱히 정확한 레시피는 없어서 버번과 우유를 1:1로 섞기도 하고 우유를 더 많이 섞기도 한다. 우유 대신 생크림을 쓸 때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차게 마실 때는 연유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요새같이 쌀쌀한 날씨에는 뜨겁게 마셔도 좋은데 버번에 설탕이나 시럽을 넣고 카푸치노를 만들 듯 스팀한 우유와 계핏가루를 넣어도 기분 좋게 마실 수 있다. 뭐 차갑던 따뜻하던 간에 설탕이나 시럽은 어느 정도 들어가는 것이 균형감이 좋은 편이다.
 
카우보이 비밥도 그렇지만 근미래의 소위 사이버펑크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나 예술작품 등이 정말 많고 또 그런 것들이 대중의 인기를 끌곤 한다. 그건 아마도 확정되지 않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또 그런 영화들을 보면 하나같이 다치는 것이 무서워 어느 정도 이상 접근하지 못하면서도 또 사람의 온기가 그리워 사람 옆으로 다가서는 등장인물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사람이 원하는 것은 다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에어컨 사랑해’를 되뇌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아침저녁으론 많이 쌀쌀해졌다. 가족이 있으신 분들은 가족과 함께, 싱글이더라도 오늘 밤 따끈한 카우보이 한잔 만들어 드시면 어떨까. 가슴속까지 따뜻해지는 느낌에 내일 하루를 더 살아갈 힘을 얻으실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카우보이 비밥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

출연 스티븐 브럼, 야마데라 코이치, 이시즈카 운쇼, 하야시바라 메구미

개봉 199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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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우보이 비밥 - 천국의 문

감독 와타나베 신이치로

출연 야마데라 코이치, 이시즈카 운쇼, 하야시바라 메구미, 타다 아오이, 이소베 츠토무

개봉 2003.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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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렉 / 술 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