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로맨스가 다른 장르와 결합한 드라마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정통 멜로의 본질을 고수한 작품이 등장했다. 영화 〈봄날은 간다〉의 공동 각본가, 드라마 〈공항 가는 길〉의 이숙연 작가와 〈그 해 우리는〉의 김윤진 감독이 의기투합한 드라마 〈샤이닝〉은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두 청춘 남녀의 멜로를 그려낸다. 이처럼 첫사랑 멜로의 고전적 감수성을 계승한 〈샤이닝〉의 장면과 두 주인공의 관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을 정리해 보았다.
연태서와 모은아의 도서관 공부 장면(1화)


태서(박진영)와 은아(김민주)는 시골 연우리의 작은 학교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며 미래를 준비한다. 첫사랑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샤이닝〉의 무공해 멜로는 이 도서관 장면에서 시작된다. 3, 6월 모의고사 전 과목 1등급을 받은 모범생 태서는 공부에 열중하고, 시간이 생긴 김에 공부하기로 결심한 은아는 산만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인다. 두 인물의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도서관 장면은 소소한 재미를 불러일으키며, 드라마의 시작점에 위치해 두 인물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또 도서관 장면은 아직 사랑이 시작되지 않은 두 남녀의 희미한 감정적 전조를 보여주며 설렘을 유발한다. 아침에는 은은하게 비추며 도서관을 감싸안고, 정오에는 무자비하게 내리쬐며 시시각각 변하는 여름날의 햇빛은 도서관의 낭만적인 정조를 형성한다. 그렇게 빛이 깃든 도서관에서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조금씩 빛처럼 스며든다.
‘Facilitate’ 가능하게 하다

은아에게 태서는 마음속 불안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우울증을 앓는 아빠를 혼자 두지 못하는, 그래서 연우리를 벗어날 수 없는 은아의 깊은 불안은 태서 옆에서 조금이나마 진정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태서에게 은아는 묻는다. “넌 나한테 뭘까?”. 태서는 은아가 소리 내어 외우던 영어 단어로 답한다. “facilitate”. 각본을 쓴 이숙연 작가는 〈샤이닝〉 집필의 출발점이 이 단어라고 말했다. ‘가능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출발해 “서로를 가능하게 해주는 관계는 뭘까” 고민했다고 밝혔다. 태서에게도 은아는 누군가를 좋아할 감정이 들어설 틈이 없는 상황에서도 마음을 열게 한 사람이다. 두 인물은 각자 지켜야 할 누군가가 있었고, 그들과 멀어지는 자신만의 삶은 생각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태서와 은아는 서로를 만나면서 각자의 삶이 다른 방향으로 열릴 수 있음을 상상하게 된다. 그들은 서로에게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게 도와주는 힘이 되어준다.
감정의 교차를 표현한 지하철역 장면


서울과 강릉의 대학으로 떨어진 두 사람은 시간의 엇나감과 멀어진 거리에도 굴하지 않고 만남을 이어간다. 아빠의 결혼 발표에 마음이 혼란스러워진 은아는 태서를 보고 싶은 마음에 그를 만나러 서울에 간다. 하지만 바쁜 태서의 시간을 뺏을까 봐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다시 연우리로 돌아가려 한다. 은아의 모호한 대답에서 그녀의 방황을 읽은 태서는 그녀에게 간다. 은아가 강변역에서 태서를 기다릴 때, 지하철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은아의 보이스오버, “들려, 연태서 오는 소리”. 이 장면은 태서를 향한 은아의 그리움과 그를 기다리는 은아의 설레는 마음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한다. 또 이 장면은 두 인물의 멜로 감정선의 구심점이 되는 공간인 동작역에서 변주된다. 지하철 기관사가 된 태서는 은아와의 추억이 서린 동작역에서 운행할 지하철을 기다린다. 이때 태서는 말한다. “은아다”. 태서의 한마디는 이별한 지 1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는 은아의 흔적을 보여준다. 〈샤이닝〉에서 지하철은 단순한 공간적 배경이 아니라 두 사람의 운명과 감정선이 교차하는 공간으로 존재한다.
10년 후, 동작역 재회



이 장면은 10년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마주한 태서와 은아의 첫 재회 장면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온전히 마주한 진정한 재회 장면이다. 은아는 잠깐의 마주침 이후 그저 지나쳐 버린 태서를 다시 만나기 위해 동작역에서 그를 기다린다. 태서는 창가에 선 은아의 뒷모습을 알아채지만, 다가가지 못하고 뒤돌아선다. 이후 태서는 은아를 외면한 채 승강장을 빠져나가고, 은아는 그런 태서를 보고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린다. 작가는 이 장면에서 인물의 행동 비트(장면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 요소)를 정교하게 설교해 애달픈 감정을 자아낸다. 은아의 눈물은 한순간의 외면이 아닌 10년의 시간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이 멘 가방과 그의 뒷모습은 여전한데, 낯설게 자신을 외면하는 것에서 오는 슬픔이다. 작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비튼다. 승강장에서 눈물을 쏟아내고 내려온 은아를 태서가 기다리고 있었고, 그제서야 두 사람의 재회가 이루어진다. 이 장면은 은아의 방황에도 늘 묵묵하게 그녀를 떠나지 않고 기다린 태서와 은아의 관계를 효과적으로 압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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