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이번이 여섯 번째 터미네이터다. 조금 앞서 개봉한 다섯 번째 람보와 함께 80년대 쌍두마차였던 액션 프랜차이즈의 화려한 귀환을 알린다. 하지만 그 의미는 이전 작들과 사뭇 다르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시리즈의 창시자 제임스 카메론이 28년 만에 전격적으로 제작자로 합류한 두 번째 속편이며, 그간 만들어진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이나 4편 <미래 전쟁의 시작>, 5편 <제니시스>와 TV시리즈인 <사라 코너 연대기>의 설정을 모두 무시하고 제임스 카메론이 만든 2편에서 바로 이어지는 진짜 속편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놀드 슈왈제네거뿐만 아니라 그간 속편들에선 등장하지 않았던 원조 '사라 코너' 린다 해밀턴까지 출연해 정통성을 보장하고 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카메론이 제작에 참여했지만 연출은 직접 맡지 않았다. <데드 풀>로 인정받은 팀 밀러가 진두지휘한다. 올 초 개봉한 카메론의 꿈의 프로젝트였던 <알리타: 배틀 엔젤>과 비슷한 경우다. 이 때문에 새로운 터미네이터에 대한 기대보단 우려가 앞섰다. 실제로 할리우드에서 흥행에 대한 전망치는 그리 높지 않다. 그간 시리즈가 이어지며 실망감을 안겨주었던 탓도 있다. 하지만 카메론이 시나리오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사라 코너 연대기>로 이 세계관에 색다른 지점을 포착한 각본가 조쉬 필드만의 참여와 여러 슈퍼 히어로물로 이골이 난 데이빗 S. 고이어가 각본을 맡아 개봉 전 시사 반응에서 T2 이후 최고의 속편을 완성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개봉 뒤 관객들의 분위기는 호불호가 갈리고 있다.

기계의 심장박동을 형상화한 음악가 브래드 피델

<터미네이터> 사운드트랙 표지

카메론과 린다 해밀톤 외에도 터미네이터를 터미네이터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바로 음악이다. 브래드 피델이 들려줬던 다섯 노트의 강력한 타악 리듬과 차갑고도 암울한 신디사이저 터치는 터미네이터만의 상징이자 정체성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원조 영화음악가 브래드 피델은 이번에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사실 1999년 <Y2K>라는 TV영화 작업을 끝으로 할리우드에서 은퇴했다. 세계 멸망의 어두운 디스토피아를 그려내는 데 있어, 또 잔혹하기 이를 데 짝이 없는 기계 암살자의 위협을 담아내는 데 있어 누구보다 탁월한 금속성의 음악을 구현했던 그의 사운드를 더 이상 접할 수 없다는 건 이 시리즈에 있어 크나큰 손실이다. 스탠 윈스턴의 아날로그 효과가 CG로 대체되며 그 무게감을 실감할 수 없듯 피델의 부재는 서늘한 공포와도 같던 기계의 심장박동을 절감할 수 없게 됐다.

브래드 피델

하지만 은퇴한 이후에도 브래드 피델은 지속적으로 각종 행사나 인터뷰에서 터미네이터 음악에 대한 애정을 피력해왔고, 만약 제임스 카메론이 이번 작품의 음악을 요청했다면 심각하게 복귀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팀 밀러 감독과 제작자 제임스 카메론의 최종 선택은 <데드풀>과 <알리타: 배틀 엔젤>을 함께 한 정키 XL(톰 홀컨보르흐)이었다. 홀 앤 오츠의 라이브 키보드 주자로 경력을 시작한 브래드 피델은 영화음악을 맡기 시작한 70년대 말부터 전성기였던 8-90년대 신서사이저를 활용해 팝적이면서도 동시에 실험적인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구사하던 작곡가였다. <터미네이터>를 비롯해 <후라이트 나이트>와 <블루 스틸>, <피고인>, <트루 라이즈>, <코드명 J>, <브링크> 등에서 특유의 도시감각 넘치는 스릴과 박력의 스코어를 들려주었다.

피델의 부재로 우여곡절을 겪은 속편의 음악들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 사운드트랙 표지

피델의 이른 은퇴로 인해 후속작들에선 그의 솜씨를 두 번 다시 맛볼 수 없었다. 조나단 모스토우가 연출을 맡은 3편 <라이즈 오브 더 머신>에서 그 대타로 점찍은 건 이런 디스토피아 류 영화들에서 솜씨를 발휘한 마르코 벨트라미였고, 그는 <레지던트 이블>과 <아이 로봇>, <리포맨>, <노잉>, <설국열차> 등에서 발휘한 솜씨 그대로 암울한 미래관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들려줬다. 브래드 피델의 원 테마를 고스란히 활용한 건 물론, 그 리듬과 분위기를 100인조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에 처음 접목해 자신의 독창적인 테마와 함께 스케일을 키웠다. 하지만 금속성 소리가 약해지자 매력도 줄어들었다. 4편 <미래 전쟁의 시작>의 음악은 조금 더 복잡했다. 사실 맥G 감독은 애초에 인간 쪽 테마는 오스카 음악상을 2번이나 수상한 구스타보 산타올라야가, 스카이넷 쪽 테마는 ‘라디오 헤드’의 톰 요크나 조니 그린우드가 맡아주길 기대했다.

대니 엘프만

하지만 시나리오 사전 유출과 주연인 크리스찬 베일과 불화설들이 터지며 프로덕션 상의 문제들이 불거졌고, 한스 짐머와의 토의도 어그러지며 최종적으로 음악을 맡게 된 건 팀 버튼의 음악적 파트너로 잘 알려진 대니 엘프만이었다. 그는 파격적으로 시리즈에서 최초로 상징과도 같던 브래드 피델의 테마를 쓰지 않았고, 대신 유사한 분위기가 나게끔 타악과 엠비언트가 브라스와 어우러진 여섯 노트의 새로운 테마를 작곡했다. 시리즈 중 가장 좋은 출연진을 자랑하지만 주지사 역임으로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출연하지 않았고, 현재 배경으로 펼쳐지던 기존 작품들과 달리 유일하게 핵 전쟁이 펼쳐진 후의 상황을 다루고 있어 터미네이터의 색채가 옅었다는 점도 엘프만이 새로운 사운드를 시도한 이유였다. 하지만 좋은 평가에 비해 임팩트는 약했다. 무엇보다 기존의 터미네이터 같지 않다는 게 약점이었다.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결국 프리퀄도 아니면서 시퀄도 아닌 방식으로 시리즈를 리부트 하는 개념으로 5편 <제니시스>가 제작됐을 때 브래드 피델의 테마는 다시 살아남았다. 애초 음악으로 결정된 건 크리스토퍼 벡이었지만, 그가 <앤트맨>으로 넘어가자 제작진은 전작에 참여하지 못했던 한스 짐머를 음악 프로듀서로 끌어들여 그의 사단에서 밀어주던 신예 론 발페에게 음악을 맡기게 된다. 발페는 피델의 암울하면서도 익숙한 테마를 활용하는 동시에 금속성 타격 음에 짐머레스크 스타일을 접목해 웅장하고 박진감 넘치는 액션 스코어링을 만들어냈다. 원곡자 브래드 피델도 만족했지만 문제는 피델의 테마가 포함되지 않은 대다수의 곡들은 스티브 자블론스키나 라민 자와디, 그 외 짐머 사단이 음악을 맡은 <트랜스포머> 시리즈나 DCEU 작품들 혹은 <퍼시픽 림> 등과 별다른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피델의 적자를 자처한 정키 XL의 터미네이터

정키 XL

비록 이번 <다크 페이트>에 브래드 피델이 돌아오진 못했지만 그를 대신한 정키 XL은 현재 가장 주목받는 액션 스코어 장인이라 할 수 있다. 한스 짐머와 함께 작업한 <맨 오브 스틸>을 시작으로,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을 비롯해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300: 제국의 부활>, <툼 레이더>, <모털 엔진>과 <다크 타워> 그리고 올 초의 <알리타: 배틀 엔젤>까지 화려하고 스피디하며 파워풀한 사운드는 그만의 전매특허가 되었다. 브래드 피델이 없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메탈릭한(쇳소리에 가까운) 분위기를 구현할 수 있는 작곡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단연 그를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정키 XL이 최근 5년간 들려준 사운드는 압도적인 박력을 선사했다. 피델의 복귀 무산은 아쉽지만, 대안으로 정키 XL은 그리 나쁜 답안이 아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그는 이런 기대에 걸맞게, 혹은 정통 속편이라는 의무감 때문인지, 지금까지 제작된 후속편들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브래드 피델의 테마를 차용한다. 그간 잊고 있던 공포의 감성마저 일깨우는 정키 XL의 날카롭고 묵중한 사운드스케이프는 브래드 피델이 구사했던 원초적인 금속성의 질감까지 다가가진 않지만, 새로운 터미네이터 Rev-9으로 등장하는 가브리엘 루나나 강화 인간 멕켄지 데이비스의 순둥순둥한 인상보다 매섭고 효과적이다. 여기에 멕시코와 텍사스가 주된 배경으로 등장하기에 라틴풍의 애수 어린 기타 사운드를 도입했고, 여성 유대 서사를 위해 휴머니즘을 물씬 풍겨주는 스트링과 감성적인 코러스로 일말의 감정 하나 느껴지지 않았던 1-2편의 신디 사운드와 차별점을 주었다. 종종 규격화된 오스티나토 사운드로 짐머 스타일을 연상시키지만, 그래도 론 발페의 무개성적인 스타일보단 좀 더 자신의 장기를 부각시킨다.

정키 XL

브래드 피델처럼 보다 심플하고 직관적인 액션 스코어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정키 XL은 그래도 기존의 속편들 작곡가들이 바라보지 않았던, 혹은 놓치고 있었던 브래드 피델의 근원적인 색채를 파악하고 유사하게 접근하되, 자신의 색채감을 잃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적어도 영화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지 몰라도 음악에 있어선 큰 아쉬움은 들지 않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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