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삶까지 바쳐" '하얀거탑' 故 안판석 감독 별세… 김혜수 등 거대한 애도의 물결

12일 뇌출혈 투병 중 영면… '밀회'·'봄밤' 등 세태 꼬집은 명작 남겨

'하얀거탑' 안판석 감독, 12일 별세… 38년 거장이 남긴 진짜 유산

1987년 데뷔 후 '밀회' 등 명작 배출, 뇌출혈 투병 끝 영면

드라마 '하얀거탑'(2007),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2018) 등을 통해 한국 방송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안판석' 감독이 지난 12일 뇌출혈 투병 끝에 별세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특유의 서정적 연출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거장의 비보에 방송가 전역이 깊은 슬픔에 잠겼다.

안판석 감독 _ 지난해 3월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 제작발표회
안판석 감독 _ 지난해 3월 JTBC 드라마 '협상의 기술' 제작발표회

'하얀거탑'부터 '밀회'까지, 세태 꼬집은 극사실주의 거장

1987년 MBC에 입사하며 메가폰을 잡은 '안판석' 감독은 "모든 드라마는 리얼해야 한다"는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그의 대표작 '하얀거탑'은 병원을 단순한 로맨스나 휴머니즘의 배경으로 소비하던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권력을 향한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과 정치적 역학 관계를 밀도 있게 그려내며 한국형 의학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후에도 가부장제의 모순을 짚은 '장미와 콩나물'(1999), 지식인의 위선을 폭로한 '아줌마'(2000), 상류층의 민낯을 파헤친 '밀회'(2014)와 '풍문으로 들었소'(2015) 등 세태를 향한 예리한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봄밤'(2019), '졸업'(2024) 등 감성적인 멜로물 안에서도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하며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지침서 삼아 롱테이크와 풀샷을 적극 활용한 극사실주의 기법은 '안판석 드라마'라는 독보적인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안판석 감독 [S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안판석 감독 [S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배우와 스태프가 증언한 '인권 현장', 참된 어른의 품격

'안판석' 감독은 카메라 뒤에서도 혁신을 이끈 리더였다. 쪽대본과 밤샘 촬영이 만연했던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도 철저한 사전 준비를 통해 배우와 스태프의 휴식권을 철저히 보장했다. 현장에서는 일방적인 지시 대신 끊임없는 대화로 장면을 완성해 나갔다.

배우 손예진은 과거 제작발표회에서 그의 현장을 가리켜 "인권이 있는 현장"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인의 드라마 '짝'(1994~1998)에 출연했던 배우 김혜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연출자로서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본인의 삶 자체를 연출에 바친 것에 깊은 존경심을 표한다"고 애도했다. '밀회'를 함께한 배우 김혜은 역시 "제 마음의 키를 키워주신 분"이라며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 유작이 된 '협상의 기술'(2025)과 '연애박사'를 함께한 김영노 촬영감독은 "작업자가 가져야 할 태도를 몸소 일깨워 주신 참으로 귀한 어른"이라며 고인의 뜨거운 열정을 회고했다.

안판석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안판석 감독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38년 드라마 외길, 영상 예술로 승화시킨 '풍속화'의 기록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고인을 '덕장'이라 칭하며, 비보를 접한 배우들이 슬픔에 빠져 촬영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라고 업계의 침통한 분위기를 전했다.

윤석진 충남대학교 국문학과 교수는 '안판석' 감독에 대해 "사회 변동기 속 환경과 충돌하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섬세하게 직조해 낸 연출가"라며, "대중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묵직한 화두를 끊임없이 던졌다"고 평가했다. 이어 "시대의 풍속을 영상으로 기록한 일종의 '풍속화'를 남겼으며, 텔레비전 드라마를 독립된 영상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주역"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뇌출혈로 쓰러져 투병하던 '안판석' 감독은 12일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됐으며, 그가 남긴 수많은 명장면과 철학은 대중과 동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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