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미국 시위가 날로 격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시위는 평화롭게 진행되지만 언제나 그렇듯 과격파도 있는 법. 그들은 억눌려 압축돼있던 욕망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최근에는 광기 어린 약탈과 방화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타인의 재산과 생명을 위협하는 표현의 방식은 결코 용납될 수 없지만, 미국 건국 후 250년간 곪아 터지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몇 마디 구호로 점잖게 따지는 것 또한 어려운 일. 그래서 일부 현명한 시민은 캐릭터를 일종의 페르소나로 삼고 코스프레를 하며 평화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캐릭터 안에는 백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함축적인 메시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엘모(Elmo)
<세서미 스트리트>
어린이 TV 쇼 <세서미 스트리트>의 캐릭터 엘모. 어린이들을 위한 캐릭터여서 그런지 어른들에겐 매운맛이 다소 부족했었나 보다. 미국에서는 엘모를 패러디한 헬모(Hellmo) 밈으로 많이 쓰이는 중.
이름처럼 마치 지옥불에 타는듯한 모습이다. 최근의 미국 시위에서 한 시민이 헬모 코스프레를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금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이 지옥이라고 외치는 듯하다. 이런 과격한 인증샷에 시민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나쁘지 않다. ‘언젠가 엘모의 시대가 올 줄 알았다’는 댓글을 남기며 절망적인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중.
V
<브이 포 벤데타>
시위계의 아이돌 V. 사실 이 가면은 영화 고유의 창작물이 아닌, 17세기 영국의 실존 인물 ‘가이 포크스’의 얼굴을 본떠 만든 작품이다. <왓치맨>, <프롬 헬>등으로도 유명한 엘런 무어는, 1605년 영국 국회의사당 폭파미수사건으로 처형당한 가이 포크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30여 년 전 <브이 포 벤데타>를 집필했다. 2006년에는 워쇼스키 형제가 무어의 원작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를 내놓아 전 세계에 V의 이름을 알렸다.
20세기 이전, 가이 포크스의 이미지는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영국 정부가 포크스에게 반역자 프레임을 뒤집어씌우고 처형일을 기념일로 지정했기 때문. 하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성숙도가 높아지고 대중문화계에서 포크스를 주목하며 지금의 ‘저항의 아이콘’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영화 속 V도 그렇고, 가이 포크스의 실제 삶도 그렇고, 이 가면에 담긴 컨텍스트는 시위대가 사용하기에 완벽해 보인다. 강직한 신념이 있었기에 총탄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았던 V. 시민들은 그의 가면을 쓰고 부당함에 물러서지 않겠다며 스스로 다짐하는 것이 아닐까.
조커
<조커>
작년,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가 영화판을 휩쓸고 난 뒤 시위 현장에서 조커를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히스 레저의 조커가 혼돈의 상징이었다면,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잔인한 세상의 피해자. 사회의 잔인함을 견디다 못해 살인마가 돼버린 조커이기에, 그의 등장만으로 평화롭던 도시는 고담 시티가 되고 현실은 판타지로 바뀐다. 중무장한 군경들 앞에 무릎 꿇은 시민의 표정에서 피닉스의 가늘게 떨리지만 결의에 찬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나의 죽음이 삶보다 가치 있기를
페페
<페페 더 프로그>
어딘가 억울해 보이는 페페. 우리에겐 짤로 유명한 슬픈 개구리가 홍콩에서는 자유의 아이콘이라면 믿겠는가. 2019년 홍콩을 뒤덮었던 민주화 시위 때, 페페는 홍콩 시민들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사실 페페는 사연 있는 개구리다. 자유의 아이콘이 되기엔 과거가 좋지 못했다. 인터넷상에서 미국 극우세력들이 우파의 마스코트로 페페를 사용한 것. 이 때문에 2016년 대선 시즌, 힐러리 클린턴 측에서 페페를 네오 나치의 상징이라고 낙인찍기도 했다. 이에 발끈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페페 짤을 오히려 더 애용하며 페페의 이미지는 점차 자유주의보다는 파시즘 쪽으로 기울게 된다.
미국과 달리 홍콩 시민들은 페페의 저 순수한 눈망울을 알아본 것일까. 송환법 반대 시위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홍콩에서 페페는 이모티콘으로 인기몰이 중이었다. 시위가 시작되자 홍콩의 젊은이들은 페페를 마스코트로 적극 활용하며 평화와 자유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제는 홍콩 시민들의 친구로 완전히 자리 잡은 모습.
씨네플레이 인턴기자 이태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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