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베스트 오브 맨>은 12월 24일(목) 올레TV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극장에 걸리진 않았지만 이대로 놓치기 아쉬운 영화들을 한 주에 한 편씩 소개합니다.


환자를 ‘사람’으로 대한 의사

<더 베스트 오브 맨>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4년의 영국. 지방에 위치한 스토크 맨더빌 병원에선 신체 마비 판정을 받은 군인 환자들이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천장만 바라보고 있다. 마취에 취해 행복했던 과거와 전쟁의 트라우마를 오가며 괴로워하는 윌리엄 히스(조지 맥케이) 병사도 그중 하나. 살아있는 사람을 반 송장으로 만든 병원 측의 치료 방법에 두 팔을 걷어붙인 이가 있었으니, 독일에서 망명한 의사 루드윅 구트만 박사(에디 마산)다.

<더 베스트 오브 맨>

구트만 박사는 마비된 병사들의 신체를 고정하고 있던 석고 깁스를 떼어내고, 소변줄을 끊어 환자들이 다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뿐만 아니라 전쟁 이전 환자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피폐해진 그들의 정신도 매만지기 시작한다. 군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자신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환자들은 구트만 박사의 극진한 진료를 통해 다시 노래를 부르고, 농담을 하고, 병원 밖에서의 삶을 꿈꾸며 활력을 되찾아간다. 하지만 여기서 만족할 구트만 박사가 아니었으니. 환자들의 삶에 더한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던 그는 휠체어를 타고 즐기는 스포츠 활동을 제안한다. 이어 그는 각국의 환자들을 모아 국제 스포츠 대회를 개최할 계획을 세운다.


환자들의 아버지이자 패럴림픽의 아버지, 루드윅 구트만

<더 베스트 오브 맨>

신체 마비 환자들의 올림픽을 개최한다는 이야기에 비아냥거리며 “환자들은 어떤 운동 분야의 최고냐”라고 묻는 질문에 ‘더 베스트 오브 맨’, “최고의 인간들”이라고 답하는 의사 루드윅 구트만이다. 1940년대엔 시한부 선고나 다름없었던 척추 부상을 입은 환자들에게 건강을 선물한 ‘환자들의 아버지’이자, 현재는 장애인들의 올림픽인 ‘패럴림픽의 아버지’로 불리는 인물. <더 베스트 오브 맨>은 의사 루드윅 구트만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겨낸 작품이다.

루드윅 구트만은 1899년 독일의 한 탄광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광부들과 가까이 지냈던 그는 척추 손상을 입었으나, 잘못된 치료 방법으로 죽어간 이들을 여럿 목격했다. 의대를 졸업했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병원에 취직할 수 없었던 구트만 박사는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다. 이후 그는 영국 에일즈베리에 위치한 스토크 맨더빌 병원에 척추 마비 치료 의사로 초청받는다. 영화는 이 지점부터 시작된다. 어린 시절 목격한 탄광촌 광부 환자들과 다를 바 없이 방치된 영국의 젊은이들을 보고 충격을 받은 구트만 박사. 그는 간호사와 환자들에게 원성을 들으면서까지 진료에 신경 쓰며, 환자의 멈춘 삶을 재가동시키기 시작한다. <더 베스트 오브 맨>은 구트만 박사가 환자들의 삶을 바꾸는 과정을 유쾌하고 따스한 시선으로 조명하며 온기를 더한다.


뻔한 스포츠 감동 드라마와 다른 이유

<더 베스트 오브 맨>

장애인과 스포츠, 전쟁, 실화라는 키워드만 놓고 보면 감정 그래프가 요동치는 감동 드라마를 떠올릴 이들이 많을 것. <더 베스트 오브 맨>은 과도하게 극적인 장치나 감정의 과잉 없이, 병사 한 명 한 명의 캐릭터의 사연을 선명히 살리며 관객의 자연스러운 감정 이입을 돕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감동 스포츠 드라마와 차별화를 둔다. 누군가의 아버지, 아들이자 남편, 약혼자였을 이들이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장막을 거두고 빛을 향해 스스로 휠체어를 굴려 나아가는 과정은 그들과 같이 절망의 위치에 서본 적 있는 모든 관객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한국과 유독 연이 깊다?

올림픽 시즌마다 생각날 영화

<더 베스트 오브 맨>

단지 신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방치되고, 인생의 패자로 여겨진 이들을 다시 삶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사람. 구트만 박사에 더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가 현재까지 개최되고 있는 장애인 올림픽, 패럴림픽의 시작에 선 인물이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직접 침대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그들의 삶에 역동적인 즐거움을 부여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고민하던 구트만 박사는 몇몇 환자들이 지팡이를 이용해 하키를 즐기는 모습을 보고 스포츠 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1948년 런던 올림픽이 열릴 당시, 구트만 박사와 환자들은 스토크 맨더빌 병원에서 척추환자 양궁 대회를 개최했다. 이들의 이야기는 ‘타임’에도 실렸다. 1952년엔 타국의 선수들이 경기에 참가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이 개최될 당시엔 런던에서 로마로 대회 장소를 옮겼다. 이가 바로 후대에 기록된 첫 번째 국제 장애인 올림픽 경기다.

<더 베스트 오브 맨>

패럴림픽은 유독 한국과 연이 깊기도 하다. 이를 알아보려면 패럴림픽의 어원부터 따져야 한다. 휠체어를 탄 선수들의 경기를 일컫던 패럴림픽은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영어 단어 ‘패러플리직’(paraplegic)과 ‘올림픽’(Olympic)의 합성어였다. 단어의 뜻이 바뀐 건 휠체어를 탄 선수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애를 지닌 선수들이 패럴림픽의 참가 자격을 얻고서부터. 이후 패럴림픽은 ‘나란히’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의 전치사 ‘파라’(para)와 ‘올림픽’을 합쳐 ‘장애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경쟁하는 경기’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더 베스트 오브 맨>

패럴림픽의 또 다른 의미가 있다면, 올림픽과 나란히 개최되는 행사. 올림픽과 패럴림픽이 같은 연도, 같은 시설에서 개최된 첫 도시가 바로 서울이다. 1988년 서울 하계 올림픽 이후부터 올림픽과 패럴림픽은 같은 연도, 같은 도시에서 개최되기 시작했고, 이는 세계 장애인 협회와 세계 올림픽 협회가 협정을 맺는 발판이 됐다. <더 베스트 오브 맨>이 다루는 스포츠 대회가 더 굳건히 자리를 잡은 곳이 서울이라는 것. 영화를 관람한 국내 관객에겐 꽤나 인상 깊은 연결 고리임이 틀림없다.


스무 살의 조지 맥케이!

<더 베스트 오브 맨>

<더 베스트 오브 맨>을 놓쳐선 안 될 또 다른 이유. 2019년 할리우드의 가장 뜨거운 라이징 스타로 급부상한 조지 맥케이의 신인 시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초 북미 시상식 레이스에서 <기생충>의 강력한 라이벌로 떠올랐던 <1917>. 조지 맥케이는 <1917>에서 전장을 뚫고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해 모두의 목숨을 살려야 하는 영국군 병사 스코필드를 연기하며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국내 관객에겐 다소 생경한 얼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16년간 20편의 장편 영화에 출연한 탄탄한 이력이 드러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더 베스트 오브 맨>

<더 베스트 오브 맨>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왔던 조지 맥케이의 지난 한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조지 맥케이는 자신의 신체적 결함을 외면하는 영국군 병사 윌리엄 히스를 연기했다. 죽음보다 미래를 더 두려워하던 청년이 현재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한 단계 성장하기까지, 캐릭터의 내면 변화를 섬세히 짚어내며 입체성을 불어넣은 조지 맥케이의 성숙한 연기력이 돋보이는 작품. 세계대전의 혼란에 휩쓸린 영국군 캐릭터와 유독 연이 깊다는 점도 인상 깊으니, <1917>을 재미있게 본 관객이라면 <더 베스트 오브 맨> 속 그의 캐릭터가 더 반갑게 와닿을지도 모르겠다.


씨네플레이 유은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