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과 사는 남자' 천만의 비밀, 최애 장면 4개를 선정했다!

현재 누적 관객 977만 8,000명으로 이번 주말 내 1천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된다. 25번째 천만 한국영화다.

〈왕과 사는 남자〉의 천만 관객 돌파가 눈앞에 왔다. 〈범죄도시4〉(2024) 이후 어느덧 25번째 천만 한국영화가 되는 셈이다. 3월 6일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에 따르면, 〈왕과 사는 남자〉는 지난 5일 18만 548명을 동원하며 전체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현재 누적 관객 977만 8,000명이다. 빠르면 오늘, 늦어도 이번 주말 내 1천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된다. 삼일절인 3월 1일 일일 관객수가 무려 81만 7,000명이었고 개봉 27일만인 3월 2일 9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사이 ‘단종’을 키워드로 한 조선왕실사 관련 역사 도서 판매량이 전년 대비 무려 2,565% 상승했고,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도 영월 청령포 관광객 수는 5배 이상 폭증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흥행 감사 이벤트로 3월 12일 낮 12시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광장에서, 장항준 감독이 직접 현장을 찾아 커피차 이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단종 열풍’이라 해도 좋을 현상이다. 〈왕과 사는 남자〉 흥행의 비결은 관객이 가장 사랑한 장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씨네플레이 기자들이 최애 장면을 하나씩 선정했다. 당신의 최애 장면은 무엇인가. 


김지연 기자의 최애 장면 / 노루골 촌장 vs 광천골 촌장의 투닥투닥

장항준의 재치가 집약적으로 드러난 장면이다. 장항준 감독은 '노산군(단종)이 돌아가시자 엄흥도가 슬퍼하며 곡을 하고 시신을 수습한 뒤 장례를 치렀다'라는 한 줄의 기록 뒤를 특유의 유머와 온기로 가득 채웠다. 〈왕과 사는 남자〉는 코미디와 감동 서사를 배합해 관객을 웃기고 또 울렸는데, 그로 인해 전반부의 코미디와 후반부의 드라마가 확연히 분절된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 점이 영화의 흥행을 견인했다. 감독이 전반부에 배치한 다수의 소박하고 투박한 유머는 광천골 사람들의 ‘인간성’을 강조하는 장치로 작용했고, 그들의 ‘인간성’은 결국 후반부의 드라마가 폭발적으로 관객들과 공명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예컨대 노루골 촌장(안재홍)과 광천골 촌장(유해진)이 유배지 선정을 두고 다투는 장면은 광천골 촌장 엄흥도의 인간성을 쌓아 올린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 장면에서 엄흥도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홍위(박지훈)를 마을에 두고자 한 ‘보통 사람’으로 그려진다. 장항준 감독이 상상한 엄흥도는 마냥 이타적이고 정의롭기만 한 인물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처음부터 고결한 인물의 이야기였다면 결코 가질 수 없었을 파괴력을 얻게 되었다. 엄흥도가 자신의 이익을 뒤로하고 이홍위와 유대를 맺으며 끝내 그의 마지막 부탁까지 들어주는 후반부의 드라마는, 앞에 설계해 놓은 인간적인 유머와 사람 냄새로 인해 더욱 큰 울림을 선사할 수 있었다.


성찬얼 기자의 최애 장면 / 내가 왕이로소이다, 호랑이조차 움찔하는 사자후


〈왕과 사는 남자〉를 본 관객 중 단 한 명도 빼놓지 않고 말하는 ‘호랑이’. 아무래도 영화 속 CG 퀄리티가 아쉬운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그 퀄리티마저 그렇게 신경이 거슬리지 않은 필자는 이홍위(박지훈)가 호랑이를 마주하는 장면을 무척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장면을 시작으로 이 연약한 이홍위가, 진짜 ‘왕’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비록 첫 등장부터 곤룡포를 입고 있지만 홍위는  나약하기 짝이 없다. 하기사 이미 권력을 잃은 왕이, 그리고 수많은 충신의 죽음을 목도한 왕이 어떻게 권위를 보여줄 수 있겠는가. 그러다 홍위의 눈앞에서 백성이 목숨이 날아갈 순간, 홍위는 그의 삶 전체를 대변하듯 왕으로서의 품위를 올곧게 드러낸다. 호랑이에게 기백을 드러내는 이 장면 하나로 관객은 홍위가 그저 좌절하는 인간이 아님을, 백성을 귀히 여기는 지도자임을, 그가 평생을 왕족으로 산 왕임을 단번에 깨닫는다. 물론 아주 과한 판타지인 건 맞다. 이홍위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장면이란 지적이 나와도 아니라 할 수 없다. 그러나 영화지 않은가. 하물며 그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가 폐위됐다가 권력의 손아귀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단종에게 이 정도 기개를 주는 건 미화보다는 한풀이처럼 느껴진다. 이 장면이야말로 관객이 바라는 것을 정확히 보여줬다고 본다.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지도자상. 비록 판타지로나마 우리는 그같은 인물이 있었음을, 어쩌면 우리의 역사를 바꿀 순간이었다는 그 희망을 보여준 것이 관객들이 〈왕과 사는 남자〉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것이다.


주성철 편집장의 최애 장면 / 단종과 광천골 사람들의 겸상의 판타지

〈왕과 사는 남자〉에서 빌런 한명회(유지태)가 없는 순간들은 더없이 평화롭다. 오래전 정진이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설중매〉(1984)에서 한명회를 연기한 뒤, KBS 드라마 〈한명회〉(1994)에서 이덕화가 〈스타트렉〉 시리즈의 스팍(레너드 니모이)처럼 귀를 만들어 한명회를 연기하고, 영화 〈관상〉(2013)에서 한명회로 분한 김의성이 탈을 쓰고 등장하면서 왜소함과 음험함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는데, 〈왕과 사는 남자〉의 한명회는 실제 유지태의 피지컬에 힘입어 ‘기골이 장대하고 풍채가 당당한’ 빌런으로 등장한다. 정진은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1986)에서 못생김의 대명사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출연하기도 했으니, 그 이미지가 달라져도 확 달라졌다. 유지태가 연기하는 한명회의 위압감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러다 보니, 그와 정반대의 정서를 보여주는 장면이 바로 단종(박지훈)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밥 먹는 장면들이다.

장항준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는, 봉준호 감독 〈살인의 추억〉(2003)에도 등장하는 대사처럼 “밥은 먹고 다니냐?”는 상대의 안부를 묻고 상태를 확인하는 가장 한국적인 대사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식구(食口)도 그렇다. 조금씩 기운을 차리기 시작한 단종이 엄흥도(유해진)를 시작으로 상대를 바꿔가며 광천골 사람들 모두와 밥을 먹는데, 그 순간만큼은 마을 사람들도 따뜻한 흰 쌀밥을 배불리 먹고, 민원이라면 민원까지 얘기하며 왕과 ‘겸상’하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광천골 사람들에게 찾아온 최초이자 최고의 ‘복지’랄까. 장항준 감독은 매 식사 장면을 특별히 힘주어 처리하지 않고, 특별한 대사 없이 밥 먹는 상대가 계속 바뀌어나가는 몽타주 시퀀스로 처리했다. 간결해서 더 애틋하고 정감있게 다가온다고나 할까. 〈왕과 사는 남자〉 천만 관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면, 아마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 1위로 꼽힐 순간일 것이다. 


추아영 기자의 최애 장면 / 막아서는 엄흥도와 떠나려는 단종, 브로맨스의 절정

이홍위(박지훈)는 궁에서 자신을 지켜주던 충신들의 비명을 들으며 괴로워한다. 내 곁의 사람들을 지켜줄 수 없다는 무력감, 자신 또한 그들처럼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수시로 그를 엄습하고, 그는 그러한 감정들에 점점 자신을 잃어간다. 영화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이 장면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완벽하게 뒤집힌다. 홍위는 자신을 다독이는 보수주인 엄흥도(유해진)와 청령포 마을 사람들 그리고 백성들을 위해 두려움을 벗어 던지고 금성대군(이준혁)에게 가려 한다. 엄흥도는 끝내 위험을 감수하려는 그의 앞을 막아서고, 홍위는 흥도를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한다. “더 이상 나로 인해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다”. 그의 말을 들은 엄흥도는 자신이 그를 막아설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말한다. “저도 그 안에 있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그들의 말들. “그대는 아닌가?”, “왜 아니겠습니까”. 이 장면은 영화가 점층적으로 쌓아 온 홍위와 흥도의 애절한 감정선, 두 사람의 브로맨스의 절정을 보여준다. 되돌릴 수 없는 비운의 역사가 그들의 앞에 드리워져 있기에 이 장면은 더욱 절절하게 다가온다. 또 연약한 소년 왕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그 다운 기백을 되찾는 홍위의 캐릭터 아크를 성공적으로 완성한다. 

단종과 엄흥도의 브로맨스는 비운의 역사를 아는 우리에게 남아 있는 비애, 해소되지 못한 집단적 죄책감을 어루만져주면서 작품 흥행의 핵심적인 요인으로 기여한다. 단종의 비극적인 생애는 역사 교육과 미디어, 작품 등을 통해 이미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단종은 한국인에게 비운의 아이콘으로 각인되어 있고, 이는 한국의 민족성을 건드린다. 우리의 뇌리에는 억울하게 희생당한 단종에 대한 측은지심, 부당한 것을 바로잡지 못했다는 죄책감, “지켜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한국인의 집단적 죄책감은 엄흥도라는 평범한 민중을 대변하는 인물에 의해 조금이나마 해소된다. 관객은 엄흥도의 자리에서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왕 단종의 마지막을 평온하고 따듯하게 보내게 해줌으로써 그의 빼앗긴 행복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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