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플레이 이화정 객원기자

때로 어떤 찰나는 영원으로 박제된다. 〈너와 나의 5분〉은 사춘기 고등학생 소년 둘 사이에 일어나는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만들어 낸 그 ‘순간’을 포착한 솜씨 좋은 장편이다. 단편 〈찾을 수 없습니다〉(2018) 〈피터팬의 꿈〉(2020)등으로 이미 독립영화계에서 주목받아 온 엄하늘 감독이 기대를 거스르지 않고 첫 장편으로 특유의 감각을 입증한 셈이다.
〈너와 나의 5분〉은 2001년, 시골 영천에서 큰 도시 대구로 전학 온 고등학생 경환(심현서)이 통과하는 자아찾기 여정이다. 그룹 신화에 열광하는 아이들 틈에서 혼자 일본음악을 듣던 감수성 예민한 소년은 자신과는 정반대로 활발한 성격의 짝 재민(현우석)을 알게 되고, 서로 음악을, 취향을, 감정을 교류하는 단짝이 된다.
하굣길 242번 버스 뒷좌석, 함께 나눠 낀 이어폰으로 그들을 연결해 주는 건 J-POP을 대표하는 그룹 ‘글로브’의 노래다. 거기엔 2000년대 초반을 상기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와레즈, MP3 같은 소도구들이다. 이들을 주재료로 하여 감독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립해 가는 십 대와 그를 둘러싼 환경을 세밀하게 묘사해 나간다.
퀴어물로 볼 때 박상영 작가 원작 「대도시의 사랑법」이 영화와 드라마로서 각자 먼저 개척한 바 있는 리얼리티가 다분히 바탕이 되면서도, 〈너와 나의 5분〉은 순정 멜로의 지분을 더 많이 가진 영화다. 겨울의 계절감, 차창 밖 풍경과 서로를 향한 제스처들이 매 장면 빼곡히 들어 차 관객을 설레게 한다. 마치 2000년대 초반에 즐겨 봤던, 지금은 잃어버린 멜로의 세계로의 초대장 같은 장면이다. 곽지균, 곽재용 감독의 영화를 즐겨 보며 자랐다는 2025년의 신인감독 엄하늘 감독의 인터뷰에서 그가 어떻게 장르의 클리셰를 지금의 감각으로 해석해 내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공개되어 화제가 된 작품인데요. 개봉을 앞둔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영화제 상영 반응을 접하면서 퀴어물이 가지고 있는 장르적 호불호가 있는 작품일 수 있다 생각했거든요. 물론 그런 반응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했고요. 앞서 단편 〈피터팬의 꿈〉을 만들고 느낀 점들이 있어서 사실 ‘어떡하지’ 하는 속수무책 같은 두려움은 없었어요. 오히려 제가 당황할 정도로 “내가 뻔뻔하게 연출했구나. 좋아하는 걸 다 표현했구나.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그냥 대놓고 보여주네?” 이런 생각이 들어서 그게 좀 스스로 놀러왔어요.
성소수자를 향한 시선으로 이별을 앞둔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 〈피터팬의 꿈〉이 많은 부분 첫 장편인 〈너와 나의 5분〉의 씨앗 같은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피터팬의 꿈〉보다 앞서서 이미 〈너와 나의 5분〉의 주요 소재인 J-POP적인 것, 지역 배경 등을 요소로 한 장편을 만들려고 했었는데, 작품 개발할 때 ‘너무 마이너하다’는 평을 들었어요. 그래서 설정을 K-POP이 아니라 한국 음악으로, 장소도 시골에서 도시로 오는 이야기가 아닌, 도시에서 시골로 가는 걸로 다 바꿔 단편으로 만들었어요. 영화제 수상도 많이 했는데 저로서는 뭔가 해결이 안 된 기분이 들었어요. 그래서 절치부심 만든 작품이 〈피터팬의 꿈〉이었어요. 그때는 진짜 제가 정체돼 있다는 느낌을 확실히 받았었고, 결국 이후에 〈너와 나의 5분〉을 찍게 됐습니다.

새천년이 시작되는 2001년, 대구 지역이 배경인데요. 장소와 시간성을 설정한 배경은 무엇인가요.
2001년에 제가 일본 콘텐츠를 인터넷으로 보는 방법을 알게 됐거든요. 그게 출발이었어요. 대구로 한 건 제가 대구에 살아서였어요. 제가 서울말로 2001년 고등학생이 뭐라고 말하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대구 사투리밖에 자연스럽게 대사를 쓸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냥 제가 자연스럽게 쓸 수 있는 말을 택해서 시작을 했어요. 그 당시를 떠올려보면, “제이팝을 듣는다고 막 엄청 큰일 나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대신에 빈정거림은 감수해야 했죠. 차별까지는 아니지만 무시나 비웃음, 그런 모습은 제가 많이 본 모습이었어요. .
경환과 재민은 시기적으로 각각 다르지만 학교라는 집단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요. 결국 같은 아픔을 가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민이는 알고 있으면서도 외면하는 용기를 내지 못했던 아이. 경환이는 계속 용기를 내는 아이로 설정했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경환 중심으로 이야기가 갔고요. 둘이 고통을 당한 시기도 좀 달라요. 재민이 왕따를 당한 건 전학 오기 전이라고 하니 중3 때였고, 경환이는 더 자라서 일을 겪었죠. 재민이가 오히려 더 먼저 상처를 많이 받고 “나는 더는 용기를 못 내”로 되었고 경환이는 아직 그 지점까지는 안 간 아이인 거죠. 캐릭터를 보여주는 데 집안 분위기도 중요했는데요. 경환이는 엄마랑 사는 환경이 그래도 나름 따뜻하잖아요. 엄마가 겉으로는 퉁명해도 사랑이 느껴지죠. 그런데 재민이는 새엄마와 겪는 갈등이 더 삐뚤어지게 했을 것 같다고 설정했어요.

내향적인 경환이 결국 부당함에 매번 맞선다면, 외향적이고 자신만만한 재민은 오히려 반대인데요. 말씀하신 대로 재민은 앞서 겪은 상처로 빨리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 걸 수 있죠. 굉장한 자기방어의 표현일 수 있죠.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재민의 마음에 대해서는 관객분들이 가끔 물어보세요. “재민이는 그럼 헤테로인가요? 아니면 그쪽인가요?” 저는 영화로 다 얘기했다고 생각해서 굳이 규정을 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이 영화의 멜로 장치는 두 사람이 가까워지는 걸 보면서 경환이의 마음에 공감해주면 좋겠다는 의도가 컸어요.
그럼에도 경환을 설레게 한 재민의 제스처, 이를테면 갑자기 손잡고 시장 거리를 뛴다던가, 얼굴을 가까이 들이민다던가, 어깨를 부여잡는 동작들은 다분히 의도적인 설렘 유발 장치이자 멜로 영화의 클리셰잖아요. 〈피터팬의 꿈〉의 레퍼런스로 언급하신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2003)이나, 이번 작품에 삽입된 〈엽기적인 그녀〉 같은 곳에서 한국 대중 멜로영화에 대한 탐구와 활용이 엿보였어요.
네, 그건 의도했어요. 제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들과 극장 가서 본 작품이 〈엽기적인 그녀〉(2001)였어요. 곽재용 감독님은 〈비 오는 날의 수채화〉(1989)부터 멜로를 해오셨죠. 뿐만 아니라 거슬러 올라가면 〈겨울 나그네〉(1986)의 곽지균 감독님도 있고요. 1990년대~2000년대 초 한국 멜로들도 좋아해요. 그래서 “이건 내가 좋아해서 넣은 거다”라는 깃발 같기도 하고요. (웃음) 뻔뻔하게 넣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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