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지구' 심층 리뷰 ② : 장국영과 매염방이 '양산백과 축영태'를 연기하던 찰나의 감동

〈양산백과 축영태〉는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도 불리지만, 장국영과 원영의의 〈금지옥엽〉(1994)의 원형이기도 하다.

※ 〈연지구〉 심층 리뷰는 첫 번째 글에서 이어집니다.

마지막 세 번째 무대는, 여화가 거리에서 관람하는 월극 〈양산백과 축영태〉다. 이한상 감독이 1962년 동명 영화로도 만들어 엄청나게 흥행한 이 이야기는 중국의 민간 설화에서 유래했으며, 서극 감독이 오기륭과 양채니를 캐스팅해 〈양축〉(1994)으로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양산백과 축영태〉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라는 측면에서 흔히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도 불리지만, 장국영과 원영의가 출연한 〈금지옥엽〉(1994)의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야기는 이렇다. 여자들이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던 시절, 소녀 축영태는 남자로 변장해 서원에 입학한다. 거기서 양산백을 만나 함께 공부하며 우정을 다진다. 축영태는 양산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만, 축영태가 여자인 줄 모르는 양산백은 친구로만 대할 뿐이다. 그러다 딸을 보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재촉으로 축영태는 갑작스럽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고, 양산백은 축영태가 떠난 후에야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양산백은 자신이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지 알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아버지가 축영태를 다른 곳으로 시집보낼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헤어질 운명이다.

 

이한상 감독 〈양산백과 축영태〉(1962)
이한상 감독 〈양산백과 축영태〉(1962)

〈연지구〉에서 무대의 월극 배우는 양산백을 연기하며 “인연이 아닌 채로 늙어가네. 망루에서 헤어진 우리는 울음을 삼켰네. 비처럼 내리는 눈물은 날이 밝도록 그칠 줄 모르고, 얼음장 같은 빈방에는 산백 홀로 외로이 남아있네. 가슴앓이에 몸져누웠고 풀 수 없는 한이 서렸네”라고, 돌이킬 수 없는 슬픈 이별의 감정을 노래한다. 그러다 컷이 바뀌면, 진방이 양산백을 연기하며 여화를 향해 “축영태야, 절대 부름에 응하지 말아라”라고 말한다. 부모가 정해준 결혼에 응하지 말고 마치 〈해피 투게더〉(1997)에서 장국영이 했던 대사처럼 ‘우리 다시 시작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어쩌면 과거의 진방이 월극 배우로 쭉 성장하여 성공했다면 언젠가 양산백을 연기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무대 밖 여화를 향해 축영태라 부르는 순간만큼은 장국영이 양산백, 매염방이 축영태가 된다. 이후 〈패왕별희〉(1993)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지만 장국영은 워낙 월극을 좋아했다. 특히 〈양산백과 축영태〉는 두 주인공을 여성이 도맡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한상 감독의 〈양산백과 축영태〉에서도 두 여성배우 능파와 낙체가 각각 양산백과 축영태를 연기했다. 그렇게 장국영은 잠깐이나마 대배우 능파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 테니 얼마나 좋았을까. 말하자면 〈연지구〉는 장국영과 매염방이 연기하는 고전 〈양산백과 축영태〉의 다른 모습이다. 〈연지구〉가 지닌 깊은 함의가 여기 숨어있다.

 

〈연지구〉를 통해 장국영을 떠올리게 해준 사람은 한 명 더 있다. 〈연지구〉 후반부, 영화 촬영 현장 장면에 함께 우정출연한 유가영 감독과 함께 〈장배〉(1981), 〈오랑팔괘곤〉(1983〉 등 당시 무수히 많은 쇼브라더스 무협영화에서 맹활약하던 액션스타 혜영홍이다. 당시 귀신 혹은 유령이 등장하는 사극 장르 영화들이 홍콩영화계에 만연한 현실을 비유하는데, 진짜 귀신 여화가 힘없이 걸어 다니고 가짜 귀신 혜영홍이 도포 자락을 날리며 하늘을 나는 모습의 대비는 영화와 현실,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연지구〉가 보여주는 압도적인 포스트모던 풍경화다.

 

〈무협〉 혜영홍
〈무협〉 혜영홍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을 떠난 장국영과 매염방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이어갈 수 없다면, 〈연지구〉에 출연한 배우들 중 지금까지 계속 잘 나가고 있는 배우가 바로 혜영홍이다. 무협영화의 쇠퇴와 함께 기나긴 침체기를 보내던 혜영홍이 2010년대가 되어 50대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이어간 것. 혜영홍은 엽위신 감독이 리메이크한 〈천녀유혼〉(2011)에서 나무 요괴를 연기했고, 견자단과 탕웨이가 주연을 맡은 진가신 감독 〈무협〉(2011)에서도 견자단을 추격하며 모처럼 액션 연기를 선보이더니, 오래전 〈장배〉(1982)에 이어 〈새벽의 끝〉(2009)과 〈행운시아〉(2016)를 통해 홍콩을 대표하는 금상장영화제에서 무려 3번이나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 사이 〈강시〉(2013)와 〈트레이시〉(2018)로는 여우조연상도 받았으니 현재 홍콩을 대표하는 여성배우 중 하나라 해도 틀리지 않다.

 

오래전 〈새벽의 끝〉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 혜영홍을 인터뷰하며 장국영에 대해 물은 적 있다. “그때는 홍콩영화의 전성기여서 큰 세트장 안에서 1세트, 2세트를 나눠 여러 편의 서로 다른 영화를 찍는 일이 흔했고, 촬영이 겹치면 중간에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일도 많았다. 워낙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질 때라 굳이 같은 영화에 출연하지 않아도 늘 마주쳤다. 나를 볼 때마다 ‘누나’라고 반갑게 부르며 명랑하고 쾌활한 모습만 보여주던 동생이 바로 장국영이었다. 그의 이른 죽음이 지금도 너무 마음을 아프게 한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렇게 올해 4월 1일은 장국영의 23주기다. 바꿔 얘기하면, 장국영의 탄생 70주년이 되는 해다. 그래, 그가 살았다면 어느덧 일흔의 나이다. 세월은 정말 빠르다. 그래서 〈연지구〉는 더 애틋하다. 장국영은 47살에 세상을 떠나서, 〈연지구〉에서 연기한 그 노년의 나이에 결국 다다르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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